[이철영의 정사신] 정치권의 '입버릇' 협치(協治), 협치(脅治) 변질은 안 됩니다
입력: 2016.05.10 05:00 / 수정: 2016.05.09 23:06

협치를 강조하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임영무, 배정한 기자
협치를 강조하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임영무,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정치권이 제20대 국회 개원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 4월 13일 총선으로 여소야대로 재편된 것은 물론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의 등장으로 복잡해졌다면 복잡해졌고, 새롭다면 새로운 20대 국회를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각 당은 먼저 원내대표 선출도 마무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운동권 출신 3선 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의원을 원내대표로 뽑았고, 새누리당은 계파색이 옅은 4선 정진석(충남 부여청양) 의원, 국민의당은 '정치 9단' 4선의 박지원(목포) 의원을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했다.

3당 원내대표는 선출과 동시에 상견례를 하며 외견상 훈훈한 모습을 보이며 같은 출발선에 섰다. 상견례 때는 각 당과 관련 있는 넥타이를 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너나 할 것 없이 '협치(協治)'를 언급했다. 각 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협치는 그동안 정치권이 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만 벌이는 모습에 국민이 투표로서 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한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최근 3당 원내대표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협치'는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각 당 원내대표가 협치를 이야기하는 데는 이른바 '정치적 스승'들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지난 5일 처음 만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DJP 연합을 예로 들며 소통과 협치를 하자고 다짐했다. /임영무, 배정한 기자
지난 5일 처음 만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DJP 연합'을 예로 들며 "소통과 협치를 하자"고 다짐했다. /임영무, 배정한 기자

우상호·박지원·정진석 원내대표는 'DJP(고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우상호·박지원 원내대표는 DJ의 문하생으로 정치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JP의 정치 문하생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만날 때마다 협치와 함께 'DJP 연합' 정신을 내세운다.

이들이 말하는 DJP 연합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와 JP가 연합한 것을 말한다. DJP 연합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15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런 결과 때문으로 보이지만 정 원내대표는 "보수의 상징 JP와 진보의 상징 DJ가 DJP연합을 한 것이 바로 협치의 효시"라며 야당과의 협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난 5일 처음 만난 우 원내대표와 정 원내대표는 'DJP 연합'을 예로 들며 "소통과 협치를 하자"고 다짐했다.

각 당 원내대표들의 정치적 스승이자 협치의 효시라는 'DJP 연합'은 사실 정치 성향이 다름에도 정권 창출을 위해 손을 잡아 '야합'이었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또, DJ와 JP가 손을 잡으며 약속했던 것도 끝내 지키지 못했다. DJP 연합은 분열의 과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 미완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정치적 스승들이 미완으로 끝낸 DJP연합 혹은 협치가 이번 20대 국회에서 완성될 수 있을까. 그 첫 시험대는 20대 국회 원(院) 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당 원내대표가 웃으며 손을 잡았지만 이들의 최종 지향점이 내년 대통령선거임을 고려할 때, 대선 전략상 당장 국회의장 선출이나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협치의 첫 무대가 파열음을 낼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이후 정의화 국회의장과 노회찬 정의당 신임 원내대표를 잇따라 예방해 20대 국회에서 소통과 협치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새롬 기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이후 정의화 국회의장과 노회찬 정의당 신임 원내대표를 잇따라 예방해 20대 국회에서 소통과 협치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새롬 기자

박 원내대표는 9일 원 구성과 관련한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나눠서 맡아야 한다"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가지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정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법사위를 다 야당이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반발했다.

협치를 내세웠지만 원 구성을 놓고 벌써 힘 싸움에 나선 느낌이다. 만약 원 구성을 놓고 힘 싸움을 벌이는 양상을 이어간다면 원내대표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협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결국엔 '힘'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 분명하다.

각 당 원내대표가 내세운 '협치(協治)'가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도 지난 국회와 마찬가지로 수적 우위를 내세워 겁을 주며 압력을 가해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협치(脅治)'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정치적 사치일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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