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부 수장자리를 두고 '원내 1당이 맡을지, 집권 여당이 맡을지'에 대해 여야의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역대 국회의장 선출 사례들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3월 19대 국회 후반기 정의화 국회의장과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배정한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국회 입법부 수장자리를 두고 '원내 1당이냐, 집권 여당이냐'를 놓고 여야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여야 모두 역대 국회의장 선출 사례를 들며 각 당의 입장에 맞게 끼어 맞추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여야는 저마다 유리한 '선례'를 들어 '국회의장은 우리 몫'이라고 주장하면서 20대 국회 원내 구성 협상 주도권을 위한 수 싸움을 벌인다.

기존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국회의장 자리는 원내 1당인 여당이 내부 경선을 통해 의장 후보자를 최다선 의원으로 추천하고, 이를 본회의에서 의결해 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은 122석을 확보해 어느 당도 단독으로 국회의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국회법상 국회의장은 의원들의 자유 표결로 국회의장이 결정된다. 그 때문에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힘을 합칠 경우 과반이 넘어 야당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편을 들 경우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제3당 체재 출현과 '여소야대'로 국면이 재편된 20대 국회에선 기존 관례가 깨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 "1당 무조건 의장 NO!…15대 이만섭 의장"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이만섭 국회의장 국회장 영결식에 참석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고인 영전에 올린 후 내려오고 있다. 고 이만섭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전반기 의장직을 역임했다./임영무 기자

일단 여당은 집권여당에서 국회의장이 나와야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본회의에서 '직권상정' 카드를 꺼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회의장마저 내주면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동안 영향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합작하면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데다가 '탄핵소추안' '해임건의안' 등도 두 야당이 자유자재로 통과시킬 수 있다.

이를 두고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15일 "1당이 무조건 국회의장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지난 16대 초반, 이만섭 의장님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6대 국회에서 1당은 한나라당, 2당은 새천년민주당, 3당은 자민련이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이 합작해 이만섭 새천년민주당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새천년민주당은 당시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해 자기 당 소속 의원 3명을 자민련에 '빌려주는' 무리수를 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홍사덕 국회부의장을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의장은 더민주, 16대 제1당 박관용 의장"

지난 2011년 한나라당(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박관용 국회의장. 박관용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직을 역임했다./더팩트DB

1당을 더민주에 빼앗긴 새누리당은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당선인들의 복당 움직임이 분주해지자, 박지원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DJ정부 제1당 박관용 의장' 예를 들었다.

그는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민의대로 원 구성을 하면 된다. 의장은 더민주, 부의장은 새누리 국민의당이 각각. 만약 새누리에서 무소속 영입하여 1당이라 우기면 이것은 제2의 3당 합당이다. 관례는 DJ정부 때 제1당의 박관용 의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16대 국회 후반에 들어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가 깨지면서 국회의장에 박관용 한나라당 의원이 선출됐다. '야당 의장'이었던 박관용 의장 임기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는 정치적 격변이 벌어지는 등 '식물 정부'라는 오명을 빚었다.

◆ "국정운영 위해…DJ, 김재순에 의장 양보"

박 의원은 원내대표로 임명된 지난달 27일부터는 돌연 "박 대통령이 실정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협력하겠다"면서 28년 전 DJ가 김재순 의원에게 의장을 양보했던 사례를 들고 나섰다./배정한 기자

박 의원은 원내대표로 임명된 지난달 27일부터는 돌연 "박 대통령이 실정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협력하겠다"면서 28년 전 DJ가 김재순 의원에게 의장을 양보했던 사례를 들고 나섰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 시절 당시 제1야당인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재순 민정당 의원에게 국회의장직을 양보한 뒤 지방자치법과 5공 청문회 합의를 끌어냈다는 이야기다.

그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살고,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1988년 여소야대 국회 시절 제1야당인 평민당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 개원 협상에서 '국회의장은 국정 안정을 위해 집권당이 맡아야 한다'면서 김재순 민정당 의원에게 국회의장을 양보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원내대표는 앞서 제시한 '박관용 의장' 사례를 두고 또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집권할 때 자기들이 제1당이기 때문에 의장을 했다. 당시 내가 한남동 의장 본관을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나. 손이 발 되도록 빌고 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대통령을 탄핵해서 국정이 중단되는 사태도 있지 않았나"라고 밝혔다.

◆ "상황에 맞게 가져가는 것…"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은 2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원래 상황에 맞게 여당이 가져가는 게 원칙"이라고 반박했다./문병희 기자

반면 새누리당에선 박 원내대표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대통령이 변하면 국회의장을 새누리당에 줄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은 2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원래 상황에 맞게 여당이 가져가는 게 원칙"이라고 반박했다.

나 의원은 "우리 역대 역사를 보면 국회의장이라는 것이 여소야대가 되더라도, 국정 운영을 위해서 사실은 제1당이 꼭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국회의장직을 여당이 해왔던 경우가 오히려 원칙이었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국회의장은 저희가 2000년에 치러진 16대 국회 구성을 보면 DJ 정권 말기에 치러졌다"면서 "그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돼 과반수를 훌쩍 넘었다. 그때도 DJ 정권의 국정운영 안정을 위해서 처음 전반기에는 양보를 해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후반기 때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실질적으로 2002년에 새로운 대선이 치러지니까 그때는 한나라당이 의장을 가져갔던 것"이라면서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여당이 국회의장직을 가져가는 게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나 의원은 박 원내대표를 '올드 스타일'이라 지칭하며 "국민은 정치인들끼리 나눠 먹고 정치인들끼리 거래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20대 국회는 새로운 정치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mj7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