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당 지도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더팩트DB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본 관객이 꼽는 명대사다. 최근 정치권을 보면서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인 콜린퍼스(헤리)의 이 대사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총선 후 정가에서 쏟아지는 독한 말들 때문인 것 같다.
먼저 제20대 총선 결과를 보자. 지난 13일 치러진 선거는 16년 만에 여소야대(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로 끝났다. 16년 만의 정계개편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제1당마저 더민주에 내주었다. 국민의당도 제3당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선거였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민의를 다시 돌아보게 했고, 더민주는 호남에서 참패하며 민심의 향방을 알 수 있게 됐다. 국민의당 역시 호남의 확실한 지지를 받았지만 수도권과 기타 지역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면서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는 어느 한 당의 독주보다 대화와 타협으로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정치권이 또 시끄러워졌다. 그렇게 한표를 달라던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결과를 놓고 '네 탓' 공방과 '공치사'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입 싸움을 보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 끝난 지가 언제라고 벌써부터 독한 말을 내뱉는 꼴이 참 보기 민망할 정도다.
정두언(왼쪽)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자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원유철 원내대표를 향해 "한 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더팩트DB |
일부 정치인들이 뱉은 말을 예로 들어보자.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자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원유철 원내대표를 향해 "한 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 의원은 이어 "주변에서 이런다. 당신이 비루한 간신들이라고 이야기한 사람 중에서, 특히 권력을 위해서 가장, 입안의 혀처럼 군 사람이 지금 그 사람인데, 그래가지고 새누리당에 뭘 기대하겠느냐. 도대체가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책임론을 두고 감정이 격해져 그랬나 보다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자당 원내대표에게 '간신'이라고 한 것은 표현도 그렇고 총선 후 비판이라는 시점도 맞지 않아 보인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공천을 앞두고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컷오프 된 정청래 의원도 최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일부를 겨냥해 독한 말을 다시 쏟아냈다.
정 의원은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 대표가 당 대표 추대론에 대한 수용 여지를 남긴 인터뷰 기사를 링크한 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더 큰 욕심은 화를 부른다. 합의추대? 그것은 100% 불가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정청래 의원이 지난 3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13총선 응원가 뮤직 비디오 촬영에 참석해 합창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
이어 "식당에서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말은 많이 봤으나 셀프 공천에 이어 셀프 대표는 처음 들어보는 북한식 용어"라며 "아무튼 합의추대를 해준다면 저도 당대표할 용의가 있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라고 조롱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김종인 더민주 대표를 비판했다. 박 의원은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국민의당에 내분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며 "애들 말 중 '너나 잘해'라는 말이 생각난다. 친문세력과 김종인세력의 알력이 저희들 눈에는 보인다. 더민주나 잘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임내현 국민의당 의원은 김종인 대표를 향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으로 정글에서 못된 짓만 하다가 여우 집에 굴러온 늙은 하이에나처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작태"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쏟아지는 거친 비판에 대해 정가에서는 힘 대결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런데 힘 대결을 꼭 이렇게 품격 낮은 단어들로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또 잘못을 지적하는데 꼭 조롱하는 단어만을 써야만 하는지도 의문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는 정치권이 항상 되새겨야 할 말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더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저열한 단어는 국민의 수준을 정치권 스스로 끌어내리는 꼴이다.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다.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지난 선거 당시 한없이 고개를 숙이던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선거 끝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민의를 받들어모시겠다고 하던 입에서 막 말이 춤을 추는 걸 보니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노이즈 마케팅'과 다름없는 말 한 마디로 주목을 끌고 대중의 일시적 관심을 바로 자신의 정치력이라고 착각하는 정치는 이제는 끝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을 향해야 하고 정치인은 품격을 지키며 정쟁해야 한다. 다가오는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선택이 옳았고, 뽑힌 의원들은 품격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