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20대 총선, 흉몽도 길몽도 일장춘몽이려니
입력: 2016.04.18 11:10 / 수정: 2016.04.18 11:10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중구 을지로에 마련된 개표장인 중구구민회관 대강당에서 국회의원선거 및 중구의회의원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중구 을지로에 마련된 개표장인 중구구민회관 대강당에서 국회의원선거 및 중구의회의원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덕인 기자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꿈은 이루어진다." 간절하면서도 벅찬 구호였다. 2002년 월드컵은 대회 전에 치른 평가전 '5-0' 대패란 절망을 딛고 4강의 소망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원망과 책망, 전망과 희망, 갈망과 대망이 뒤범벅돼 존재했다. 소망과 갈망과 희망만으론 꿈을 이룰 수 없다. 이런저런 '망(望)'들이 모여 '꿈(夢)'을 이루는 것이다. 절망도, 책망도, 원망까지도 꿈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한바탕 폭우와 돌풍이 몰아치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날씨 이야기만은 아니다. 세월호 2주기이든, 20대 총선이든 누구에겐 돌이켜보기도 싫은 악몽의 순간, 누구에겐 곱씹을수록 미소를 머금게 되는 길몽이었을 것이다. 악몽이든 길몽이든 어쩌면 모두가 한바탕 '봄 꿈'일 터이다.

원유철(왼쪽)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제20대 총선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출구 초사를 지켜보고 있다. /임영무 기자
원유철(왼쪽)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제20대 총선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출구 초사를 지켜보고 있다. /임영무 기자

적벽부로 유명한 소동파(蘇東坡)가 늘그막에 번잡한 도성을 떠나 전원을 서성인다. 마침 이를 알아본 노파가 탄식조로 한마디 내뱉는다. "지난날 부귀영화는 한바탕 봄날의 꿈과 같구나!" 일필휘지로 자연의 경개와 인간의 기개를 써내려 간 그였지만, 역시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법. 동파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 유유자적한 걸음걸이에서 노파 역시 너나없이 다르지 않은 인생의 본 모습을 느꼈던 것이리라. 송(宋)대의 후청록(侯鯖綠)에서 유래했다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의 한 토막이다.

일장춘몽과 비슷한 이야기기로 당(唐)의 이공좌가 지은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이 있다. 순우분이란 사람이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나른한 봄날 낮술까지 마셨으니 취중(醉中)인지, 몽중(夢中)인지 분별할 수 없다. 또 분별하면 뭐 하랴. 여하튼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에 초대된다. 거기에서 왕녀와 결혼해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돼 호강하다 깨어보니 자기 집이더란 얘기다. 이른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다.

같은 시대 심기제의 '침중기(枕中記)' 역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까지 올라갔다가 깨어난 한단(邯鄲)의 노생(盧生) 이야기를 전한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이다. 이들 모두가 영겁의 시간에 찰나와 같은 세상, 그 안에 의탁해 살아가는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 공통점이다. 장구한 세월이란 것도 알고 보니 선잠 들어 밥이 뜸드는 시간보다도 짧더라는 얘기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20대 총선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출구 초사 결과에 기뻐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20대 총선 투표가 종료된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출구 초사 결과에 기뻐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홍루몽(紅樓夢)은 중국 청(淸)대의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현재 남경을 중심으로 가(賈)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부귀공명이 역시 '일장춘몽'이란 것이다. 이보다 앞서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도 비슷한 맥락의 몽류 소설이다.

이들 '꿈 타령'의 원류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일 터이다. 어느 날 문득 장자 자신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깨어보니 자신이다. 그런데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나비가 장주(莊周)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일까. 장자는 현실과 이상,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를 넘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안철수(가운데)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가 마감된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 국민의당 당사를 찾아 당지도부들과 함께 출구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안철수(가운데)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가 마감된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 국민의당 당사를 찾아 당지도부들과 함께 출구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새롬 기자

꿈도 동양과 서양에 차이가 있다. 동양의 꿈은 '실존 인식'의 경향이 강하다. 꿈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 꿈은 '실존 추구'의 경향을 보인다. 킹 목사가 '나에게 꿈이 있다(I have a dream!)'고 외칠 때, 거기에는 피부 색깔로 차별되지 않는 현실적 희원이 담겨있다. '아메리칸 드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꿈은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분석의 대상이며, 실존적 목표인 것이다.

예컨대 피카소의 걸작 '꿈'은 연인인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했다. 파랑과 연분홍을 반반 사용하면서 주인공 얼굴을 정면과 측면을 합성해 나타냈다. 현실과 꿈, 보고 있는 연인과 보고 싶은 연인의 몰(沒) 경계성을 표현한 것이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 중 '봄날의 꿈'은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다. 활짝 핀 싱그러운 꽃,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들판을 꿈꾸다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니 까마귀가 울고 춥고 어두운 현실이다. 그래도 한 겨울에 꽃을 본, 오직 사랑만을 꿈꾸었던 나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찬란한 봄의 꽃밭을 나는 봤다(…) 겨울에 꽃을 꿈 꾼 나를 비웃으려나."

세월호 참사 2주기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과 참가한 시민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남윤호 기자
세월호 참사 2주기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과 참가한 시민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남윤호 기자

'잔인한 4월'이 한편으론 '꿈의 계절'이란 것도 심상하지 않다. 눈을 감고 꾸는 꿈은 흉몽이거나 길몽이거나, 아니면 개꿈일 것이다. 세상에 항상 좋거나, 항상 나쁜 것은 없다. 상대적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말했다. "좋은 것은 나쁘고, 나쁜 것은 좋다(Fair is Foul, Foul is Fair!)"고.

세상만사 돌고 도니 좋다고 환호했던 일이 나중에 보면 결국 나쁜 일이었고, 반대로 나쁘다고 낙담했던 일이 나중에 보면 보약이더라는 이야기이다. 야구에서 페어 볼이 파울 볼이고, 파울 볼이 페어 볼이란 뜻이 아니다. 선(善)은 악(惡)을 품고 있고, 악(惡)은 선(善)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만물유전(萬物流轉)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 꾸는 꿈은 결연하고, 때론 숭고하다. 흉중에 꿈을 품고 한걸음씩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얼마나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가. 꿈은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붙어있는 글이라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꿈의 요체를 정확하게 짚었다.

나른한 봄날 꿈꾸는 이들이 많다. 대망(大望)이든, 소망(素望)이든 꿈꾸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큰 꿈은 함께 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서 꾸는 꿈은 필경 한낮의 개꿈, 백일몽(白日夢)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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