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새누리당 공관위 기준 '정체성'과 유승민의 '헌법 1조1항'
입력: 2016.03.15 05:00 / 수정: 2016.03.14 19:31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14일 당 정체성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유승민(대구 동구을)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DB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14일 "당 정체성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유승민(대구 동구을)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당 정체성과 관련돼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들을 한 사람에 대해선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앞으로 20대 국회에서는 당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19대 국회는 너무 물렁했다고 생각한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한 말이다. 기자회견이 갑자기라는 것이지 "당 정체성"을 꺼낸 것이 갑자기는 아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월 11일 "유승민(대구 동구을) 의원은 무조건 된다고는 말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저성과자는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당 편인지 우리 편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당의 정체성을 위해서 거기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라야 정당에서 추천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이 위원장의 발언은 당시 발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위원장이 '당 정체성'을 다시 꺼낸 타이밍이 여러 상황을 추측하게 한다. 유 의원의 공천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직 유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 등의 공천심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르면 15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위원장이 '당 정체성'과 '응분의 대가'를 거듭 꺼낸 것이 유 의원의 공천배제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당 안팎에선 지배적이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런 시각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은 지난달 26일 유 의원이 20대 국회의원선거 공천관리위원회 면접에서 당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을 받은 바 있어서다. 당시 유 의원은 공관위원인 김회선 의원이 교섭단체 대표연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에 대해 질문하자 "정강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반론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 숙고 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 /임영무 기자
심사 숙고 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 /임영무 기자

문제의 유 의원 발언은 지난해 4월 8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이다.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2조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유 의원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은 박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후 공공연하게 20대 총선에서 유 의원과 그를 따르는 의원들의 공천배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급기야 '친박'을 넘어 '진박(진짜 박근혜 사람)'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하게 됐다.

앞서 지난 2월 이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유 의원은 저성과자는 아니다. 다만, 당 정체성과 관련해 친박계나 이 위원장 기준에서는 '당 정체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 공관위가 유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면 그 이유는 결국 '당 정체성' 부분일 것이다. 이 위원장이 '당 정체성'을 다시 언급한 것도 공천배제와 관련한 잡음을 없애고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는 타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모든 것은 아직 벌어지지 결과에 대한 전망일 뿐이다. CBS·국민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3일 발표한 여론조사(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507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대구 동을 새누리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유 의원은 50.4%,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37.8%의 지지를 각각 받았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7월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7월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유 의원은 상대 후보와 13%p 가까이 후보 적합도에서 앞선다. 주민은 여전히 유 의원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론 조사 결과가 공관위의 기준을 꼭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될 경우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구 동구을 주민들의 반발이 그 첫 번째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박 대통령에게 무한 사랑을 보냈던 대구의 민심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유 의원 역시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천심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유 의원은 다시 한 번 이렇게 되뇌지 않을까.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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