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방청 Q&A] "중요하다는 테러방지법 토론, 왜 텅 빈 걸까요"
입력: 2016.03.01 00:00 / 수정: 2016.03.01 09:04


지난달 29일 오후 2시 22분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위 사진). 의원석에는 새누리당 의원 1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1명 총 2명이 자리를 지키는 반면 방청석에는 90여 명의 시민들이 필리버스터를 방청하고 있다./국회=서민지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2시 22분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위 사진). 의원석에는 새누리당 의원 1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1명 총 2명이 자리를 지키는 반면 방청석에는 90여 명의 시민들이 필리버스터를 방청하고 있다./국회=서민지 기자

[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테러방지법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왜 텅 빈 걸까요."

일요일과 3·1절(공휴일) 사이 '샌드위치 데이'인 지난달 29일, 쉬는 날을 맞아 데이트에 나선 커플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 출입구에서 갸우뚱하며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의미 있는 데이트를 하고자 '필리버스터 방청'을 데이트 코스로 정했다는 커플은 "실제로 보니까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텅 빈 본회의장을 보니까 씁쓸하네요. 원래 이렇게 많이 비어 있나요? 의원이 일정 정도 있어야 진행될텐데"라고 취재진에게 묻습니다.

오후 2시 22분 막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됐고, 방청석은 시민들과 취재진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정작 의원석은 달랑 두 명의 의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있던 의원들도 자리를 비워 최 의원 혼자 덩그러니 열변을 토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대정부질문이나 본회의를 종종 속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적 인원(293명) 가운데 5분의 1 이상(59명)이 돼야 개의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 때도 약 40여 명의 의원만이 자리를 지켜 대정부 질문이 지연됐고, 오후 2시 25분을 넘어 59명을 겨우 넘겨 속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한 사람이 한 차례에 시간과 의사 정족수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토론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5분의 1 정족수를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때로 의원 전체가 퇴장해도 토론자만 있다면 필리버스터는 계속 진행됩니다.

국회 방청인 준수사항 및 규칙에 따르면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의장의 허가를 받은 후에 방청할 수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12세 이하)은 2~3분가량 본회의장을 구경만 할 수 있다. 2분간 본회의장 탐방을 마친 뒤 휴게실에서 선생님 또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초등학생들./국회=서민지 기자
국회 방청인 준수사항 및 규칙에 따르면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의장의 허가를 받은 후에 방청할 수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12세 이하)은 2~3분가량 본회의장을 '구경'만 할 수 있다. 2분간 본회의장 탐방을 마친 뒤 휴게실에서 선생님 또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초등학생들./국회=서민지 기자

방청석 입구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시민들이 또 있습니다. '현장 교육'을 위해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과 선생님들입니다. 한 부모님은 13세 자녀와 방청을 희망했지만, '만 12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청은 불가했습니다.

국회 방청인 준수사항 및 규칙에 따르면 '초등학생(만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의장의 허가를 받은 후에 방청할 수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들은 2~3분가량 본회의장을 '구경'만 할 수 있습니다. 방청석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방호과 관계자는 "본회의 중에는 만 12세 이상만 가능합니다. 필리버스터는 본회의 회기 중에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때문에 4층 휴게실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과외 선생님의 인솔 아래 중학생 1학년, 2학년 언니와 함께 온 초등학교 4학년 임 양은 "너무 신기해요. 선생님과 언니들은 안에 있고, 돌아가면서 저를 돌보아 주고 있어요. 저도 들어가서 같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의회경호담당관실 관계자는 방청 절차에 대해 개인적으로 방문하실 때는 지역 국회의원에게 신청하시면 된다. 물론 지역 의원 말고 다른 의원도 상관은 없다고 밝혔다. 국회 본청 후문 안내실./국회=서민지 기자
의회경호담당관실 관계자는 방청 절차에 대해 "개인적으로 방문하실 때는 지역 국회의원에게 신청하시면 된다. 물론 지역 의원 말고 다른 의원도 상관은 없다"고 밝혔다. 국회 본청 후문 안내실./국회=서민지 기자

휴일을 맞아 멀리 지방에서 국회를 방문한 부자는 국회 출입부터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도 삼척에서 온 아버지 박 모(68세) 씨는 "처음 왔는데, 국민으로서 '국민의 집' 즉 내 집에 온 건데 왜 후문으로 들어와야 합니까.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그런 의식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방청 신청하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역 의원을 통해서 가능하고, 하루 전날 해야 하고 한참 헤맸어요"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외에도 주말부터 방청 절차를 밟느라 고생했다는 방청객들이 꽤 있었습니다.

'지역 의원을 통해서만'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의회경호담당관실 관계자는 방청 절차에 대해 "개인적으로 방문하실 때는 지역 국회의원에게 신청하시면 된다. 물론 지역 의원 말고 다른 의원도 상관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방청권 교부는 교섭단체별 의석비율에 따라 방청권을 교부합니다.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의원일 경우에는 방청권을 개별적으로 내줍니다. 만약 단체방청을 할 경우에는 공문으로 접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본관 안내실(본관 후문)에서 신체 검색을 한 뒤 4층 방청석 입구에서 방청권을 확인받고 입장 가능합니다.

또한 의회경호담당관실에선 "의원실에서 원내행정국(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에 일괄적으로 취합한 뒤 '총 몇 매가 필요하다'고 하면 발부해 드린다. 보통 전날 저녁 때쯤 요청하면 다음 날 아침 일괄적으로 수령해서 의원실에 방청권을 배부하고, 의원실에서 도장을 찍어서 방청인이 사용하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4층 방청석 입구에 걸린 방청인 준수사항 안내가 표지판./국회=서민지 기자
4층 방청석 입구에 걸린 '방청인 준수사항 안내'가 표지판./국회=서민지 기자

어렵사리 본회의장에 자리 잡은 박 씨의 아들은 방청석에 앉아서도 "내내 불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구경을 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하네요. 국회의원들 간에는 상호 간에 떠들곤 하는데, 우리는 끝나고 좋은 말 나왔을 때 박수도 좀 치고 지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일부 방청인은 박수를 치고 고성을 질렀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국회사무처는 "박수를 쳤다는 이유로 퇴장조치를 한 것이 아니라, 회의장 언론에 대해 가부의 의견을 표시하면 안 된다는 '국회방청규칙'을 준수하지 아니해 불가피하게 퇴장조치가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한 번 일을 치러서(?)인지 국회 사무처 직원들은 방청인들이 본회의장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방청인 준수사항'인 "방청석 내에서 박수를 치거나 소반 행위, 특정 의원의 발언에 대해 지지를 표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면서 재차 신신당부하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까다로운 절차에도 이날 방청석은 끊임없이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의회경호담당관실에 따르면 발행매수(방청권을 배부받고도 안 오는 경우 포함)는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난달 23일 293매, 24일 279매, 25일 225매, 26일 648매, 27일 749매로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사회를 보던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의원실별 방청 인원을 일일이 소개하며 "필리버스터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어 감사하다. 추운 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3·1절엔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이 필리버스터를 방청하러 국회로 발걸음을 옮길까요.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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