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필리버스터'는 소통 부재의 산물인가, 선전선동인가
입력: 2016.02.26 05:00 / 수정: 2016.02.25 19:17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10시간 18분의 무제한 토론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10시간 18분의 무제한 토론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여전히 북한과 휴전 중입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북한이 최근처럼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의 도발적 행동은 여전히 국민을 불안하게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우리 국민의 행동이나 생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국민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라면 등과 같은 생필품을 사재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북한의 도발이 잦아지면서 국민에게도 면역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국민은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하면 과거처럼 "큰일 났다. 전쟁 나겠다"는 반응에서 "또, 왜 저러냐?" "지겹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전쟁'을 입에 담는 경우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의식이 변화한 만큼 정치권의 의식도 함께 변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정치권의 '안보' 논란이 바로 그렇습니다. 안보가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있는 국민이 있겠습니까.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말입니다.

일부는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거철 홍보용으로 '안보'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이는 아마도 전쟁을 겪은 노년층의 표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당이나 정부가 안보를 강조하며 '테러방지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용남(오른쪽) 새누리당 의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관련 없는 발언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김용남(오른쪽) 새누리당 의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관련 없는 발언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은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정부와 여당이 통과시키겠다는 테러방지법안을 막아보겠다는 의회 소수파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야권의 필리버스터가 정당하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야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방법이 필리버스터뿐이니 어쩌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야권을 향한 국민의 관심도 조금씩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을 비판하기만 했지 정작 그들의 활동을 칭찬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정치인과 관련한 기사의 댓글들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많은 누리꾼이 응원의 댓글을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댓글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수층 혹은 여당은 야권의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아마 보수 측 프레임으로 본다면 야권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아지테이션 프로파건다(Agitation Propaganda, 선전선동)'로 규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새누리당이 야권의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에 대해 25일 오전 "어제도 오늘도 경쟁이라도 하듯 오로지 총선을 위한 선전선동에 혈안인 모습이다"고 했으니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지테이션 프로파건다' 논리가 힘을 얻지 않을까요.

보수층이 야권의 필리버스터를 총선을 위한 선동선전으로 규정한다면, 반대로 테러방지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에 대해 "지금 국가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괴링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지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괴링은 "국민이 목소리를 내든 말든, 지도자는 언제든 국민을 따라오게 만들 수 있다. 그건 쉬운 일이다. '지금 국가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고 국민에게 얘기하고, 평화를 부르짖는 자들은 애국심이 없고 국가를 위험한 지경에 빠트리고 있는 자들이라고 매도하기만 하면 된다. 어느 나라에서든 이 전략은 통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의화 의장의 직권상정 이유를 두고 비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테러방지법안이 정부와 여당의 목적대로 통과한다면 괴링이 말한 "어느 나라에서든 이 전략은 통하게 되어 있다"가 딱 들어맞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도 24일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 발언에서 야권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여당과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테러방지법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양측은 '국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도 '국민', 법안이 통과되면 안 되는 이유도 '국민'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는 '백성을 두려워하라' '나(수령)라는 사람은 객(客)이요, 저 백성들은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백성 보살피기를 아픈 사람 돌보듯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의 첫 번째를 백성으로 두었다는 점에서 정조(조선 22대 왕)의 통치철학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조와 다산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정조는 백성을 '정치의 주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야가 테러방지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문은 열려 있지만 좀 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얼어 붙은 국회가 되고 말았다. /임영무 기자
여야가 테러방지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문은 열려 있지만 좀 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얼어 붙은 국회가 되고 말았다. /임영무 기자

'정조실록' 신유조에 따르면 "백성들과 더불어 일의 결과를 즐길 수는 있으나,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를 지금 우리 현실과 대비해보면 어떻습니까. 국민이 '주인'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산은 "아래 백성의 뜻이 통달하여 막힘이 없어야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정조와 다산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우리는 여전히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필리버스터도 정부와 여당이 테러방지법안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도 결국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고 그동안 공전을 거듭했던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습니다. 만약 필리버스터가 끝나지 않으면 여야가 협의했던 선거구획정안 통과는 결국 물 건너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의 강 대 강 대결이 정답은 아닙니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모습은 '우리 터놓고 이야기 한 번 해보자' 아닐까요.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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