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지난 18일 경남 사천 자택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농사꾼이 소명"이라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강 전 대표가 자택 앞마당에서 반려견과 활짝 웃고 있다./배정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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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ㅣ 경남 사천=오경희 기자] 난세에 '강달프'는 국회로 돌아올까.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강기갑(62)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의정활동 당시 '강달프'로 불렸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해결사로 등장하는 간달프와 비슷한 외모에 투쟁적 이미지가 강했다.
농사꾼으로 '원대 복귀'한 강 전 대표 역시 지난 시간 자신을 "소아(小我)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내가 이전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참 미안하지만 '막 조져버려야 된다. 니 죽고 아니면 내 죽고다. 다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란 열정과 분노로 정치생활을 했다.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하는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연에서 돌아보니 내가 좀 소아적이었다. 좀 더 군자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성찰의 중심엔 '통진당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땀 흘리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자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분당 사태를 막지 못했고, 진보 정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무너졌다.
"통합진보당 이석기나 김재연, 내가 개개인을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패권성을 얘기한 것이다. 경기 동부파의 패권성. 당이 무너져도 끝까지 패권을 놓지 못하지 않았나. 더 많은 사람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정당마저도 허물라면 허물어야 하는 것이 진보라는 길이다. 보수는 기득권과 패권의 DNA가 좀 같다. 같이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진보는 사약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패권주의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작심했다. 근데 지나고 나서보니까 '내가 아직 철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농사 현장에 와서 느꼈다. 왜 내가 좀 더 부드럽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나."
"우리 몸의 미생물에도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고 강조하는 강 전 대표. 그가 직접 배합한 사료를 손에 들고 설명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
그는 상생과 균형의 원리를 미생물에 비유했다. "우리 몸 안에는 약 1000조만 마리의 미생물이 있다. 그 1000조만 마리의 미생물에는 10%인 100만 조는 유익한 미생물이고, 그다음 10%는 해로운 미생물이다. 이 100만 조와 100만 조가 늘 영혼 속에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하듯이 유혹하고 넘어가고 대결하고 갈등하고, 이런 관계를 늘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머지 800만 조 80% 미생물, 중간미생물인 일명 해바라기성 미생물이라고 하는데, 이 해바라기성 미생물은 두 유익한 유해한 것이 싸워서 이기는 쪽으로 가서 붙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표심과도 같다. 악이 없으면 선이라는 개념도 없는 거잖아요. 그 악을 없애는 게 아니라 100% 선인이고, 100% 악인인 경우가 없거든. 공생 공존하면서 선한 쪽으로 당겨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 설까. 손가락이 잘리고, 축사에서 떨어져 팔뼈가 바스러졌는데도 강 전 대표의 몸과 마음은 평안해 보였다.
"완전한 편안함은 아니지만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이니까 작은 행복이지만 어쨌든 작은 그릇은 채우기가 쉽다. 책임이 크면 그릇이 커지면 그런 걸 다 채우려고 하면 하루 두 시간짜리도 채우기가 힘들다. 이기적인 생각인데 내가 저 판에 있었으면 내가 살아있겠나. 아마 내가 죽었거나 그만두게 됐거나, 나도 그렇게 그만 길들거나 셋 중 하난데 나는 아마 골로 갔을 것 같다."
강 전 대표는 "정치 제안이 강력하게 들어와도 소명이 아닐거라"고 했다. 축사 내부를 안내하는 강 전 대표./배정한 기자 |
강 전 대표는 '농사꾼'이 지금의 소명(召命)이라고 했다. "지금 이런 판에 몇몇 사람이 나가서 그 정치를 한다고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사실 방향이 바뀔 수 있겠느냐. 흙투성이가 돼서 살더라도 평화 순례자의 마음으로 농사짓고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내 삶을 봉헌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위해 기도하는 게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물었다. "소명으로서 정치의 부름을 받아도 거부할 것이냐"고 말이다. "물론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이라고 하면, 그거 내가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죠. 내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닌데. 내가 인생이 그랬다"고 회상했다.
"내가 17대 국회갈 때 정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비례대표로 등록하기 3일 전에 '당신 아니면 할 사람 없다'고 문경식 의장이 찾아와서 우리 마누라가 울고불고 난리 났다. 젖소 키운다고 엄청나게 빚을 져서 사업하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그런데 집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강기갑이라는 작자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리도 없고 적당할 때 답해주는 것이 좋겠다' 싶었는지 마지막 날 답을 해서 그렇게 갑자기 (국회로) 간 거거든. 그뿐만 아니라 내 인생 여정이 그랬다. 지금이라도 어떤 그런 것들이 내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똥지게를 지라고 해도 안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게 내 신앙이고 철학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내가 판단하기에는 아마 정치 제안이 강력하게 들어오고 해도 '이게 내 소명일까?'라고 스스로 물으면 '아닐 거야'하면서 세월을 질질 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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