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뿔이 있으면 이빨이 없다"
입력: 2016.02.01 10:47 / 수정: 2016.02.01 10:47
각 당은 4월 13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신인들을 영입하며 당 안팎 이미지 쇄신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더팩트DB
각 당은 4월 13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신인들을 영입하며 당 안팎 이미지 쇄신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더팩트DB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시인 노천명의 ‘사슴’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시인이 ‘동물의 왕국’을 좀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뿔이 있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사슴이 모가지가 길어 슬프다면, 기린은 얼마나 더 슬프겠는가. 그런데 왜 뿔이 있어서 슬픈가.

우선 각자무치(角者無齒)란 말이 있다. 뿔이 있으면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본디의 뉘앙스는 좀 다르다. 뿔 달린 동물은 예외 없이 초식이며, 송곳니를 가진 동물은 육식이 아니던가. 뿔은 먹히는 쪽이고, 송곳니는 먹는 쪽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정글에서 뿔을 가졌다는 것은, 뿔을 달고 태어난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약자’이자 ‘먹이’라는 의미이다. 뿔 달린 동물들은 대부분 발굽을 가졌다. 발굽은 발가락 끝의 발톱이 넓적하고 단단하게 발달한 형태이다. 정글이든 초원이든 자갈밭이든 포식자들로부터 달아나기 좋도록 진화한 것이다.

반대로 송곳니가 날카로운 동물들은 발굽 대신 발톱을 가졌다. 움켜잡고 물어뜯기 알맞도록. 말하자면, ‘발굽이 있으면 발톱이 없다!’ 여하튼 뿔 달린 짐승의 숙명은 쫓기는 것이다.

서울 마포갑 출마를 선언한 안대희(오른쪽) 전 대법관이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서울 마포갑 출마를 선언한 안대희(오른쪽) 전 대법관이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게다가 사슴의 뿔은 귀한 약재, 바로 녹용(鹿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虎死留皮)’는 말이 있다. 틀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죽 때문에 죽는 것이다. 사슴 역시 죽어서 뿔을 남기는 게 아니라, 뿔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사슴 사냥(Deer Hunting)은 귀족적(?)인 스포츠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나뭇가지 형상의 뿔은 멋진 트로피인 것이다.

유대교에는 식사와 관련한 율법이 있다. 카쉬룻(Kashrut)인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코셔(Kosher), 그렇지 못한 것은 트라이프(Traif)라 한다.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는 성경(창세기 1장 29절)에 근거해 ‘코셔’다.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하고, 육류는 되새김질을 하며 발굽이 갈라져야 한다(레위기 11장2~23절). 그래서 소·양·염소·사슴은 먹기에 ‘합당’하다.

자세히 보면 소·양·염소·사슴은 모두 뿔이 있다. 말과 낙타는 되새김은 하지만 발굽이 갈라지지 않아서, 돼지는 발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아서 ‘부정한 음식’이이라고 한다. 이들 부정한 동물로 분류된 말·낙타·돼지는 뿔이 없다. 따라서 동물의 왕국에서도, 인간세상에서도 뿔 달린 짐승은 ‘먹이’일 뿐이다. 그리하여 ‘뿔이 있어 슬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회 출범식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문재인(가운데) 대표가 파티팅을 외치고 있다. /배정한 기자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회 출범식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문재인(가운데) 대표가 파티팅을 외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정치판에도 ‘각자무치(角者無齒)’의 법칙은 적용될 것이다. 다름 아닌 ‘관(冠)이 향기로운’ 사람들 이야기이다. 이들에게는 누구를 물어뜯을 ‘이빨’도, 뒷다리를 움켜잡을 ‘발톱’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 포식 부류들은 때로는 하이에나처럼 때로는 들개처럼 둘러싸고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밤낮 없이 끈질기게.

이른바 정치판에 영입된 정치 신인들은 ‘이빨’보다는 ‘뿔’일 가능성이 높다. 영입하는 주체들이 자칫 자신을 물어뜯을 수도 있는 ‘맹수’를 들이겠나. 벌써부터 ‘각자(角者)’들을 향한 ‘유치(有齒)’들의 으르렁 소리가 심상치 않다. 물론 하이에나들이나 들개가 항상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뿔’에 받혀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백수의 제왕이라는 사자도 항상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것은 아니다. 수컷의 영역다툼에 새끼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초원에서 사자의 생존율은 의외로 낮다. 늙어서 힘이 빠지면 영역에서 쫓겨나고, 다쳐서 굶어 죽기도 한다. 어쩌겠나.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겠나.

머지않아 정글과 초원에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이빨들끼리도 서로 물고 뜯겠지만, 우선은 ‘뿔’들이 사냥감이 될 것이다. 크고 아름다운 뿔이라면, 아마도 하이에나들이 돌아가며 물고 뜯고 발목 잡고 ‘저격’할 것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뜨거운 태양 아래 다시 황량해진 초원에는 숱한 ‘뿔’들이 뼈다귀와 함께 뒹굴 것이다. 마치 화석처럼. 그렇게 기억되고, 그나마 잊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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