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국민의당은 호남당? 아이고, 몰라야~"
입력: 2016.01.29 05:00 / 수정: 2016.01.29 08:15

26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라북도당 창당대회에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천정배, 권은희 의원을 비롯한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고 있다./전주=남윤호 기자
26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라북도당 창당대회에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천정배, 권은희 의원을 비롯한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고 있다./전주=남윤호 기자

[더팩트 | 전주=서민지 기자] "이제 야당은 똥 돼 부렀어."

지난 26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 전북도당 창당대회 직후 무작정 전주 시내로 나섰다. 이날 창당대회에선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까지 합류해 "사랑하는 전북 동지 여러분"과 "뉴DJ"를 연신 외치며 호남 민심을 '집중 공략'한 터라, 전주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전주시청에서 한옥마을로 내려가는 큰 길가에서 만난 타이어 대리점 사장 양민섭(67) 씨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다 똑같은 사람들이여. 저거들 '밥그릇 싸움'하다가 찢어져 부렸제? 인자 또다시 저거들 입맛에 맞게 다 합당했잖여. 우리가 또 들러리 설 일 있는가. 30년 넘게 우려먹었는디 선거철에만 바짝 들이댄다고? 그것은 이제 안 통해. 호남 사람들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야~"

대형마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 김해문(54) 씨는 안철수 의원은 확실하게 (국민의당) 체제에 대해 제시를 못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전주=서민지 기자
대형마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 김해문(54) 씨는 "안철수 의원은 확실하게 (국민의당) 체제에 대해 제시를 못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전주=서민지 기자

양 씨의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만난 안미경(49) 씨도, 택시기사 김해문(54) 씨도 국민의당을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듯했다. 김 씨는 "안철수는 확실하게 지금 체제에 대해 제시를 못 하고 있잖여. 그러니까 더불어민주당 전북 의원들이 나와야 하나, 들어가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안 나오기로 한 것 아니여"라고 꼬집었다.

전주 주민들은 국민의당의 모호한 노선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동안 국민의당은 인재영입 취소, 한상진 창준위원장 '이승만 국부론' 논란 등을 비롯해 '정체성 모호'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 모호성은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제1야당을 목표로 한 국민의당으로선 악재였다. 호남은 야권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조사(22일)에 따르면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26%로 바로 전주(30%)에 비해 4%포인트 더 떨어졌다. 2주 전인 5∼7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은 지지율 41%를 기록해 더민주(19%)를 크게 앞섰으나, 불과 일주일 만에 더민주에 역전을 허용한 데 이어 점점 그 격차는 벌어졌다.

전주 시청 큰 길가에서 만난 양 씨는 야권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또 들러리 설 일 있는가. 30년 넘게 우려먹었는데, 선거철에만 바짝 들이대는 건 이제 안 통해. 호남 사람들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말했다./전주=서민지 기자
전주 시청 큰 길가에서 만난 양 씨는 야권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또 들러리 설 일 있는가. 30년 넘게 우려먹었는데, 선거철에만 바짝 들이대는 건 이제 안 통해. 호남 사람들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말했다./전주=서민지 기자

국민의당도 위기를 감지했다. 통합에 박차를 가했다. 국민의당은 호남 민심을 돌리기 위해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 통합하고,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선 것이다.

천정배 의원은 이날 전북도당 창당 대회에서 '호남 홀대론'을 외치며 전북 지지자들의 마음을 저격했다. 그는 "전북 도민 여러분 우리가 오랫동안 밀어왔던 야당은 어떤 모습을 보여왔나. 우리 호남을 하청 동원 기지 취급해왔다. 우리 호남사람들은 표만 주고 무시당해왔다. 더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호남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 호남을 단순한 들러리로 만들지 못하게 하는 당을 만들자. 여러분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게다가 이날 대회엔 한상진 공동 창준위원장,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 천정배·김한길·주승용·문병호·권은희·김관영·장병완·김승남·김동철·황주홍·임내현·유성엽 의원 등 '호남 정치인'이 대거 참석해 이구동성으로 "힘을 실어달라"고 읍소했다.

같은 날 오후 부산시당 창당대회와는 사뭇 대조됐다. 안 의원과 한 위원장은 부산으로 이동해 연이어 행사에 참석했지만, 나머지 동행한 의원들은 전주 때와 달리 주승용, 문병호, 임내현 의원뿐이었다. 국민의당이 얼마나 호남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6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라북도당 창당대회에 안철수 의원, 김한길 의원, 천정배 의원, 한상진 공동창당위원장(왼쪽부터)이 손을 들고 있다./남윤호 기자
26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라북도당 창당대회에 안철수 의원, 김한길 의원, 천정배 의원, 한상진 공동창당위원장(왼쪽부터)이 손을 들고 있다./남윤호 기자

국민의당은 일단 '호남 집중 공략'에 나서긴 했다. 문제는 정작 국민의당 내부에선 '당의 기조'에 대한 교통정리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얼굴인 안 의원은 지속적으로 '중도층을 흡수할 전국정당'을 표방하면서, '호남당'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은 고스란히 호남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호남 민심도, 그렇다고 중도층도 잡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다. 한쪽에선 '전국정당'을 외치면서, 다른 쪽에선 '호남당'을 외치니 국민의당을 향한 호남 민심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당내 상황을 지켜보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19일 "국민의당은 호남 탈당파의 육체에 새누리의 정신이 빙의된 상태"라고 비유했다. 그는 "'허구'로만 존재하는 중도층에 어필하려고 우클릭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이 경우 호남 민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한상진 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정치라고 하는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다. 바다는 민심이고 배는 정치다. 배가 요동치면 성난 파도는 배를 삼켜버릴 것"이라고 했다. 민심의 바다에 배는 띄워졌다. '호남 사공'을 잔뜩 태운 '국민의당'호는 신당 창당이라는 깃발 아래 목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바다는 국민의당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출렁인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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