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사주팔자의 비밀,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입력: 2016.01.25 11:56 / 수정: 2016.01.25 11:56

새해가 되면 점(占)집이 바쁘다. 승진 운이 있는지, 장사는 어떨지, 대학교는 합격할지, 건강은 좋을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더팩트DB
새해가 되면 점(占)집이 바쁘다. 승진 운이 있는지, 장사는 어떨지, 대학교는 합격할지, 건강은 좋을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더팩트DB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예전은 물론 지금도 인생사를 놓고 팔자(八字)타령 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는 팔자가 좋아서, 누구는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다는 식이다. 잘 나가는 사람은 "팔자가 쭉 폈다"고 하고, 반대의 경우는 "팔자가 꼬였다"고 한다. 태어난 생년생월생일생시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도 100퍼센트 확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예컨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는 말이 그렇다. 사주팔자는 분명 좋은데, 행복하지 않은 여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 "여자 팔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달렸다"고 치부해버린다. 사주팔자는 좋은데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남자는 "팔자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석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주팔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새해가 되면 점(占)집이 바쁘다. 승진 운이 있는지, 장사는 어떨지, 대학교는 합격할지, 건강은 좋을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정치지망생들까지 몰렸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옛날에는 손가락을 짚어 10간(干) 12지(支)의 '60갑자(甲子)'를 뽑았다. 줄여서 '육갑'이다. 예컨대 지난 1월15일의 경우 병신년, 병신월, 병신일이었다. 여기에 태어난 시의 간지를 붙이면 그것이 팔자(八字)이다. 요즘엔 이를 계산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어 굳이 손가락을 짚을 필요가 없다. 병신 육갑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주팔자는 과연 근거가 있을까. 먼저 사주팔자의 경우의 수를 보자. 60갑자이므로 각기 다른 간지의 해가 60년이다. 여기에 12월이 있고, 날짜는 60갑자를 따라 매겨진다. 하루는 자시부터 해시까지 12시이다. 그러면 60(년)*12(월)*60(일)*12(시)=51만 8400이다.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살지만 사주팔자의 가짓수는 모두 51만 8400개이므로, 확률적으로 보면 똑 같은 팔자를 가진 사람이 1만 3500명쯤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냥 우리나라만 봐도 같은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이 96명쯤이다.

사주팔자는 과연 근거가 있을까. 먼저 사주팔자의 경우의 수를 보자. 60갑자이므로 각기 다른 간지의 해가 60년이다./더팩트DB
사주팔자는 과연 근거가 있을까. 먼저 사주팔자의 경우의 수를 보자. 60갑자이므로 각기 다른 간지의 해가 60년이다./더팩트DB

그런데 사주팔자를 본다는 사람들은 과연 51만 8400가지의 경우를 모두 알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래서 나온 것이 오행(五行)에 따른 분류법이다. 금수목화토의 오행을 연월일시에 붙여 적절히(!)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마다 풀이가 다른 것이다.

어떤 이는 "귀신같이 잘 맞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글쎄~"라며 기연가미연가 한다. 아마도 유명한 사주쟁이들은 족집게처럼 콕 찍어서 맞췄다기보다 듣는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할 수 있도록 그럴듯하게 풀이한 것은 아닐까.

1948년 미국의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1914~2000)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실시했다. 그는 "각각 학생들의 성격을 정리했는데, 얼마나 수긍할 수 있는지 0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기라"고 했다. 집계 결과 평균 점수는 4.26이었다. 5는 '훌륭하다(Excellent)', 4는 '좋다(Good)'였으니 그야말로 족집게 수준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각각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성격 검사 결과지는 사실 모두가 똑 같은 내용이었다. 포러가 '별자리 점성술' 자료를 짜깁기해 던져준 것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오늘의 운세'나 '올해의 토정비결' 내용을 적절하게 버무려 제시한 것이다. 다음이 대략적인 바로 그 내용이다. 자신의 성격을 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번 읽어보시라.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당신 자신에게는 비판적인 경향이 있으며, 아직 사용되지 못한 상당한 능력과 재주가 있다. 다소 성격적 문제가 있지만,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겉보기에는 절제와 자제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걱정도 많고 불안감도 있다. 가끔은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옳은 일을 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다양성과 변화를 추구하며, 구속과 규제를 싫어한다. 당신은 너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외향적이고 친절하며 사교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향적이고 경계하며 내성적이다. 당신은 주위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여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바라기도 한다."

족집게 도사도 조건적이면서 유보적인 표현으로 상대의 긍정을 유도해내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문가들은 사주팔자 풀이의 핵심이 위로라고 한다./이새롬 기자
'족집게 도사'도 조건적이면서 유보적인 표현으로 상대의 긍정을 유도해내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문가들은 사주팔자 풀이의 핵심이 '위로'라고 한다./이새롬 기자

어떤가. 맞는 것 같은가? 실제 독자 여러분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가? 당신이 0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

포러의 실험은 이후로도 계속됐고, 나중에 평균 점수는 4.2에 수렴됐다. 이를 포러 효과(Forer’s Effect)라고 한다. 주어진 문장이 막연할수록 그 효과는 더욱 안정적이 된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모호한 문장에 대해 피실험자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더라는 것이다. 단정적인 표현 대신 '가끔'이라거나 '때로는'이란 조건적 유보적 표현에는 "그래. 나도 그렇지"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족집게 도사'도 조건적이면서 유보적인 표현으로 상대의 긍정을 유도해내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고민이 많아 보여요. 뭔가 불안하고, 확신이 없고, 소화도 잘 안되죠?"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사실 고민도 없고 불안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점집에 오겠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맞아요. 요즘 장사가 잘 안돼(혹은 배우자가 바람 피우는 것 같아서) 잠을 못 자요. 속도 늘 더부룩하고요."라고 대답한다면, 이미 낚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주팔자 풀이의 핵심이 '위로'라고 한다. 세상에 걱정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부처님도 인생이 고해(苦海)라고 짚지 않았나.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들고 죽는 것이 다 고통이다. 이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이 집착을 없애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바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이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고통이 한없이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래서 10년 주기로 '대운(大運)'이 들고나는 것이다. 지금 길운(吉運)이 아니라도 조만간 대운이 온다니 꾹 참고 살아보자 다짐한다. 설령 대운이 끝나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쌓은 운을 잘 갈무리하면서 살면 될 일이다. 좋은 일이 항상 좋지 않고, 나쁜 일이 항상 나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실패는 성공의 첫걸음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결국 모든 게 팔자소관이 아니라 인생팔자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지만, 그것은 복날을 몰랐을 때이다. 정월대보름에는 쫄쫄 굶기기도 한다. 좋은 팔자도 '팔자대로 못 사는' 법이고, 나쁜 팔자도 '팔자를 제대로 고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2000년 1월1일 0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일이 있었다. 같은 사주팔자인데, 과연 사는 것도 같을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이새롬 기자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2000년 1월1일 0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일이 있었다. 같은 사주팔자인데, 과연 사는 것도 같을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이새롬 기자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2000년 1월1일 0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일이 있었다. 같은 사주팔자인데, 과연 사는 것도 같을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결론은 사주팔자는 같아도 사는 양상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물론 더 커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어린 상태에서도 생활상과 질병, 사고, 교육여건들이 다 제각각 달랐다.

그럼에도 팔자를 한번 고쳐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 팔자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담배를 끊으면 건강이 달라지고, 사회생활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애연가가 아니라 '담배의 노예'라면 팔자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한번 끊어볼 만하다. 차제에 담배 끊는 방법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미국의 영화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뉴욕타임스에 쓴 글이다. 움푹 팬 턱으로 유명한 그는 잘 나가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1910년에 러시아에서 이민을 왔다. 농부 출신인데, 눈만 뜨면 담배를 찾아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폐암 진단을 받고 담배를 끊기로 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담배 한 개비를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담배가 피우고 싶어지면 담배를 꺼내 노려보면서 외친다. "누가 강하냐? 너냐? 나다!(Who stronger? You stronger? I stronger!)"고 하며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민자라 영어가 서툴렀는데, 위의 영어 설명은 말한 그대로를 옮긴 것이다.

더글라스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손 처리가 어려운데, 이 어색한 손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려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담배를 톡톡 치거나, 손가락 사이에 끼우곤 하면 연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렇게 담배를 배웠는데, TV에 출연하면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담배를 끊기로 했는데, 방법은 그 아버지를 본떴다는 것이다. "누가 강하냐? 너냐? 나다!(Who stronger? You stronger? I stronger!)"

자, 지금의 인생이 뭔가 부족하다면, 그런데 '담배의 노예'라면 이 참에 팔자를 한번 고쳐보시라.

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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