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천정배·정동영, 언제까지 저울질할 겁니까
입력: 2016.01.21 08:51 / 수정: 2016.01.21 08:51
천정배(왼쪽)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을 향한 야권의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 의원과 정 전 의원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더팩트DB
천정배(왼쪽)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을 향한 야권의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 의원과 정 전 의원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더팩트DB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 촉한의 임금 유비가 와룡강에 숨어 사는 제갈공명(제갈량)을 군사로 맞아들이기 위해 세 번을 찾아간 것에서 유래됐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보면 그가 왜 유비의 손을 잡았는지 알 수 있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신은 본래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로서 몸소 난양에서 밭갈이하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을 보전하려 했을 뿐,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유현덕께서 신의 천한 몸을 천하다 생각지 않으시고, 황공하게도 스스로 몸을 굽히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막(草幕) 속으로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면한 세상일을 물으시는지라, 이로 인해 감격해 선제를 위해 쫓아다닐 것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했다.

만약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로 맞으려 했으면서도 삼고초려와 같은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면, 제갈량도 유비의 삼고초려를 거부했다면 후대에 지금과 같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유비와 제갈량이 이처럼 손을 잡고 '천하삼분'의 결과를 만들고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데는 분명 각자의 결단이 주요했다 할 수 있다.

정동영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29일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고향인 순창에서 칩거 중이다. 야권은 정 전 의원의 자택을 찾아 연일 구애 중이다. 정 전 의원이 자택 근처 공원에서 운동 중이다. /신진환 기자
정동영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29일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고향인 순창에서 칩거 중이다. 야권은 정 전 의원의 자택을 찾아 연일 구애 중이다. 정 전 의원이 자택 근처 공원에서 운동 중이다. /신진환 기자

요즘 정치권도 삼고초려가 한창이다. 선거(4월 13일)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야권은 지금처럼 분열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를 경우 여당에 패할 것이 뻔하니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름값이 오르는 정치인들도 몇 있다.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 박영선 의원, 정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더 민주 상임고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천 의원과 정 전 의원을 향한 구애가 가장 시선을 끌고 있다. 호남을 빼고 총선에서 야권이 의미있는 승리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두 정치인은 협력과 동반의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과 더 민주에게 두 사람은 분명 필요한 존재다. 야권의 손 내밈에 두 사람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장고(長考)를 하고 있다.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한 이유로도 보이고, 결단에 앞선 명분 쌓기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으로도 관측된다. 언젠가는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다.

국민회의(가칭)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최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대 제안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천 의원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팩트DB
국민회의(가칭)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최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대 제안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천 의원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팩트DB

오랫동안 정치를 한 두 사람이니 나가야 할 때와 들어올 때의 타이밍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싶지만,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도 있고 ‘묵히면 똥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기다리는 사람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그 감정은 ‘됐거든’으로 돌아서고 종국엔 무관심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 두 사람의 처지가 꼭 좋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누가 뭐래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결단’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응답하라 1988’에서도 타이밍과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한 장면이 있었다. 극 중에서 정환(류준열)은 첫사랑 덕선(혜리)에게 달려갔지만, 친구 택(박보검)보다 늦게 도착해 되돌아서는 대목이 그 것이다. 만약, 정환이 택보다 먼저 도착했다면, 응팔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했다. 드라마 속 정환(류준열)은 덕선(혜리)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며 시청자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샀다. 정환은 자신이 덕선에게 고백하지 못한 이유로 타이밍이 아니라 수많은 망설임이었다고 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송 화면 갈무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했다. 드라마 속 정환(류준열)은 덕선(혜리)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며 시청자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샀다. 정환은 자신이 덕선에게 고백하지 못한 이유로 타이밍이 아니라 '수많은 망설임'이었다고 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송 화면 갈무리

정환은 자신이 덕선과 맺어지지 못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정환의 독백을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운명은 시시때때로 찾아오지 않는다. 적어도 운명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아주 가끔 우연히 찾아드는 극적인 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운명이다. 그래서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은 타이밍이다.

만일 오늘 그 망할 신호등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면 그 빌어먹을 빨강 신호등이 날 한 번이라도 도와줬다면, 나는 지금 운명처럼 그녀 앞에 서 있을지 모른다. 내 첫사랑은 늘 그 거지 같은 그 거지 같은 타이밍에 발목 잡혔다. 그 빌어먹을 타이밍에….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엔 무엇을 잡을지 알 수가 없다. 쓰디쓴 초콜릿을 집어 든대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내가 선택한 운명이다. 후회할 것도 징징 짤 것도 가슴 아플 것도 없다.

그러나 운명은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간절함을 향한 숱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주저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들이 타이밍을 만든다. 그 녀석이 더 간절했고 난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 들이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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