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복흥산방 안방마님' 민혜경 여사의 '정동영 내조'
입력: 2016.01.09 05:00 / 수정: 2016.01.08 22:21

지난 5일 오후, 전북 순창군 복흥면 답동마을 산자락의 복흥산방(福興山房) 별채에서 정동영(62) 전 의원의 아내 민혜경(58) 여사가 주전부리를 꺼내고 있다./순창=서민지 기자
지난 5일 오후, 전북 순창군 복흥면 답동마을 산자락의 '복흥산방(福興山房)' 별채에서 정동영(62) 전 의원의 아내 민혜경(58) 여사가 주전부리를 꺼내고 있다./순창=서민지 기자

[더팩트 | 순창=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 "서울서 왔어? 이리와 앉아, 몇 살이지?"

지난 5일 오후, 전북 순창군 복흥면 답동마을 산자락의 '복흥산방(福興山房)'. 15평 남짓 토담집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안주인'은 불쑥 찾은 손님을 웃으며 맞는다. 하얗고 고운 얼굴에 등산복 차림의 안주인은 겨울 손님이 안쓰러운지 따뜻한 별채(손님맞이방)로 이끈다. 안주인은 지난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후 낙향한 정동영(62) 전 의원의 아내 민혜경(58) 여사다.

별채로 들어서니 장작벽난로의 온기가 훅 끼친다. 민 여사는 "방금 전 마을회관에서 얻어 왔다"면서 유과와 말린 고구마를 주섬주섬 꺼낸다. 그는 집을 비운 정 전 의원을 대신해 취재진을 만났다.

불쑥 찾은 취재진을 웃으며 맞이하는 민 여사./순창=서민지 기자
불쑥 찾은 취재진을 웃으며 맞이하는 민 여사./순창=서민지 기자

"이번엔 의원님께서 순창 산골로 납치하셨네요?

연애 시절 장인의 반대에 부딪히자 MBC 기자였던 정 전 의원은 무작정 사표를 내고 민 여사를 설악산으로 납치해 결혼에 골인했다. 교육자 집안의 민 여사는 숙명여대 음대생이었고, 정 전 의원은 순창 출신의 가난한 시골 출신의 청년이었다.

"갑작스런 산골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기가 이래뵈도 눈 오면 환상이야. 보이지, 기가 막힌 스피커도 있어. 정 전 의원은 여기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셔. TV가 있는데 없애 버렸거든. 이 집이 한 50년 됐나, 새마을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집이야. 사실은 산 속이고 옛날 집이라 많이 습해. 난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계속했으니까 처음엔 나랑 안 맞았지. 거기다 지대가 높아서 오르락 내리락하니 몸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지. 오전 7시쯤 일어나서 인근 산책로를 (정 전 의원과) 같이 운동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복흥산방 바로 앞에 있는 별채(노란색 원)엔 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아래 사진은 복흥산방 별채 내부에서 바라 본 창문./순창=서민지 기자
복흥산방 바로 앞에 있는 별채(노란색 원)엔 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아래 사진은 복흥산방 별채 내부에서 바라 본 창문./순창=서민지 기자

정 전 의원은 아내와 함께 걷는 길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요즘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민 여사는 "정 전 의원의 본래 성품이 말 수가 적은데다 그동안 너무 바빴어. 그런데 아침마다 함께 1시간 30분 남짓 좋은 경치를 보며 걷다보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하게 되더라고. 부부간 언제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해보겠나 싶어. 그렇게 살고 있어요. 둘이 있으니 그것 자체가 좋지 뭐. 아무나 이렇게 살아보겠어, 그치?"라고 미소 짓는다.

취재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을 주민들과 지지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야권 재편 세력의 정 전 의원을 향한 잇따른 러브콜에 이곳은 요즘 문정성시다. 민 여사는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챙겼고, 집 밖까지 배웅했다. '그림자 내조'가 돋보였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들은 "사실 정 전 의원님보다 사모님이 더 좋아. 한결같아. 워메, 얼굴도 고상하니 예쁘잖여~"라고 입을 모았다.

겨울을 나는 토담집 마당엔 장작이 가득 놓여 있었고, 빨랫줄에는 겨우내 먹어도 될 시래기가 걸려 있었다./순창=서민지 기자
겨울을 나는 토담집 마당엔 장작이 가득 놓여 있었고, 빨랫줄에는 겨우내 먹어도 될 시래기가 걸려 있었다./순창=서민지 기자

겨울을 나는 토담집 마당엔 장작이 가득 놓여 있었고, 빨랫줄에는 겨우내 먹어도 될 시래기가 걸려 있었다. "땔감도 이렇게 많은데, 의원님은 언제까지 여기 계실까요?"라고 묻자 민 여사는 "아니, 그러니까~ 왜 이렇게 땔감을 많이 갖다 줘. 우리더러 계속 살으라고 그런건가"라고 웃는다.

1시간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어둠이 내려앉는다. 민 여사는 "오늘은 일단 올라가, 느낌으론 왜 왔는지 알겠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하실 말씀이 별로 없을 것 같아"라며 취재진의 두 손을 잡는다. 커피, 군고구마, 귤 등 주전부리를 바리바리 싸서 쥐어준다. 하릴 없이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 날(6일) 다시 토담집을 찾았다. "정 전 의원의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각오로 내려온 터라 쉽게 물러 설 수 없었다. 기다림 끝에 정 전 의원을 드디어 만났다. 그는 "어제 왔다는 얘기는 들었어요~지인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네요. 여태 기다렸어요? 진짜 열혈 기자입니다. 어디서 잤어요?"라고 웃으며 격려했다. 기자 출신의 대선배로서 후배를 생각해 하는 말처럼 들렸다.

정 전 의원과 은색 패딩 커플룩을 입은 민 여사가 추어탕 회동에서 지지자들을 살뜰이 챙기고 있다./순창=서민지 기자
정 전 의원과 '은색 패딩' 커플룩을 입은 민 여사가 '추어탕 회동'에서 지지자들을 살뜰이 챙기고 있다./순창=서민지 기자

3년 전, 아내와의 연애사를 이야기하던 정 전 의원의 얼굴을 기억한다.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아내에게 첫눈에 푹 빠졌다. 처가댁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아내의 집을 찾아가 딸을 달라고 애원하면서 담벼락 밑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당시 방법이 없으니까 다니던 방송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아내를 설악산으로 납치했다. 아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어서 허락했다. 싫다는 사람 데리고 와서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했다.

그래설까. 재보선에서 낙선한 뒤 길을 잃은 정 전 의원의 곁에 민 여사가 있어 든든해 보였다. 이날 정 전 의원은 향후 행보를 묻는 취재진에게 "운칠기삼, 결심이 서면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조만간 토담집을 떠나 '총선 전쟁터'에서 민 여사의 '그림자 내조'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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