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분당 위기에 놓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신당을 추진 중인 안철수 무소속 의원, 탈당한 김한길 의원과 천정배 의원 등 야권 재편 추진 세력 등이 'DJ(김대중)-호남'에 구애를 펼치고 있다. 위 김대중, 아래 왼쪽부터 문재인, 안철수, 김한길, 천정배./더팩트DB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최근 야권 재편 세력이 'DJ(김대중) 정신 계승'을 내걸며 '호남'에 너도나도 구애를 펼치고 있다. 선도 탈당 후 각자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에 '안철수 탈당'에 따른 후속 탈당으로 야권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이합집산' 과정에서 현 문재인 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각 신당 추진 세력마다 야권 지지기반인 '호남'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할 '핵심 타깃'이다.
안철수 의원과 결별 후 정면돌파를 선택한 문재인(62, 부산 사상구)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동교동 사저를 찾아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문 대표는 이 여사에게 "올해 우리가 총선에서 이겨야만, 국민에게 희망을 드릴 수가 있다"며 "그러려면 우리당이 단단하게 단합되고 또 더 크게 통합되고 그래야 한다. 여사님께서 많이 도와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문재인(왼쪽)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동교동 사저를 찾아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찾아 "여사님께서 많이 도와달라"고 말했다./더팩트DB |
그간 친노(친노무현)계 좌장 격인 문 대표는 '호남홀대론'을 잠재우고자 '호남 민심 달래기'에 주력해왔다. 호남 민심은 소외와 홀대, 비주류의 대명사였던 영남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나, 참여정부 말기 DJ정부시절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형사적 칼을 들이댄 게 호남민과 노무현간 갈등의 골을 깊게 했고, 2012년 대선 당시 참여정부 주요 요직 인선에 호남 인사가 소외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13일 탈당 후 '독자신당' 창당을 본격화한 안철수(53, 서울 노원구병) 의원도 4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이 여사 앞에서 안 의원은 "DJ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안 의원은 "저희가 새로 시작하게 됐다. 새로 만든 정당에선 김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그리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열심히해서 꼭 이루겠다"고 말했다. 20분간의 독대도 있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호남 지역에서 안철수 신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광주·전남은 물론 전북에서도 안철수 신당이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4일 서울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고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
비노(비노무현)계 비주류 좌장 격인 김한길(62, 서울 광진구갑) 전 공동대표도 3일 탈당 후 첫 행보로 아버지인 고 김철 의원의 묘소와 DJ 묘역을 찾았다. 4일 김 전 대표는 "DJ는 정치적 아버지"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조만간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뉴DJ'론으로 호남 민심을 겨냥한 천정배(61, 광주서구을) 의원도 같은 날 DJ 묘역 참배 및 이 여사를 예방했다.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지난 4·29 광주 서구을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호남정치를 살리겠다"고 강조해 왔다.
천청배 의원은 지난해 9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다시 '호남'을 꺼내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당 이른바 '김대중당' 정당정치에 '개혁적 국민정당'이라는 말을 대체로 썼다. 저의 신당은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국사회 고통스러운 현실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개혁적 의지가 있는 정당, 소수 계층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한국사회 다수의 국민이 함께하는 정당이라는 의미에서 성격을 규정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한길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문병희 기자 |
호남은 DJ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야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1980년대 5·18광주민중항쟁과 6월 항쟁 등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은 호남민과 함께 군부독재와 맞섰다.
김 전 대통령은 1963년 제6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잇따라 당선된 뒤 1971년 3선에 도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겨루게된다. 김 전 대통령이 호남 출신 대통령 후보로 첫 발을 내딪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DJ는 대권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2년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한 김 전 대통령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영국으로 출국했으나 3년 만에 돌아왔다.
천청배 의원은 지난해 9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당 이른바 '김대중당' 정당정치에 '개혁적 국민정당'이라는 말을 대체로 썼다. 한국사회 다수의 국민이 함께하는 정당이라는 의미에서 성격을 규정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더팩트DB |
1995년 지방선거 직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한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2년 후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호남민은 김 전 대통령에게 '미워도 다시 한번'의 심정으로 몰표를 던졌고, 그는 호남민의 한을 풀어줄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