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앞 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서로 떨어져 앉아 있다./이새롬 기자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꼼지락, 꼼지락.' 30일, 신당을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이따금 안색이 붉게 달아올랐고, 겉은 태연하려 애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수면 아래 그의 손은 안절부절합니다. 맞잡은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수시로 비빕니다(▼ 영상 참조).
'헤어진 연인'을 코앞에서 마주한 기분은 어떨까요? 더구나 지독한 미움만 남은 채 이별했다면, 누군가는 상상만으로도 치를 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날 안 의원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결별'한 지 17일 만에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해후, 어땠을까요?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4주기 추도식에 나란히 참석했습니다. 추도식 전 두 사람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수많은 카메라가 문 대표와 안 의원을 향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악수했습니다. 플래시도 잇따라 터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취재진을 의식해서인지 잠깐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문 대표는 오른쪽에 앉은 문희상 의원을, 왼쪽에 앉은 안 의원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봤습니다.
서로 다른 곳 바라보는 문 대표(앞)와 안 의원./이새롬 기자 |
정점은 추도식장으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설마설마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 앉았습니다. 안 의원이 먼저 자리에 앉자 그 옆을 문 대표가 지나칩니다. 안 의원과 두 줄 정도를 앞뒤로 앉았다가 문 대표는 대각선으로 옮겨 문희상 의원과 이종걸 원내대표 등과 함께했습니다. 안 의원의 옆에 친정식구들은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이인영 의원이 앞줄로 옮기라고도 했지만 원래 앉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후로 문 대표와 안 의원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탈당 사태로 인한 '앙금'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흔히 정치를 남녀 간의 사랑에 빗대곤 합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갈등 때마다 두 사람을 '연인' 관계에 비유했습니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차기 대권주자로서 늘 함께 거론됐고, 단일화 과정에서 '밀당(밀고당기기)'을 벌인 끝에 안 의원이 문 대표에게 후보직을 양보했습니다.
하지만 문 대표는 대선에서 석패했고, 안 의원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안 의원은 2013년 4·24 재보선으로 여의도 입성 후 독자 신당을 추진하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었고,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며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문 대표가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때 두 사람 사이 불화설이 흘러나왔습니다.
올해 초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안 의원의 측근들은 당대표 후보로 나선 문 대표를 정조준하는 듯한 내용을 담은 '대선 비망록'을 펴내 논란이 일었습니다. 보다 못한 문 대표는 안 의원이 마련한 신년좌담회에 참석해 "저와 안 의원은 동지 관계"라며 갈등설을 잠재웠습니다.
문 대표가 성당에 들어서 안 의원의 반대편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이미 '깨진 독'이었던 것일까요? 결국 두 사람의 '동지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 9월 문 대표가 '당 혁신'을 내걸었고, 암중모색하던 안 의원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 대표의 혁신에 제동을 걸었고, 혁신 방식을 놓고 '제안-역제안'을 반복하다 지난 13일 탈당을 선언하며 결별했습니다. 탈당 결심 전 문 대표는 안 의원의 자택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고,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상에서 '안철수 여친론'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강철수(강한 안철수)'라 별칭이 붙을 정도로 집을 떠난 안 의원은 친정과 문 대표를 향해 작심한듯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강철수'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날(30일) 추도식 직후 안 의원은 "대표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 같아서 사양했다"며 초대받지 못한 손님 마냥 추도사를 제안받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좌불안석', 말 그대로 앉은자리가 참 불편해 보였습니다. 문 대표 또한 편치 않은 듯했습니다. '안 의원과의 어색한 만남'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떡하냐. 앞으로 좋은 경쟁도 해 나가야 하고 길게 보면 같이 갈 사이니까요"라면서도 앞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정색했습니다.
일각에선 문 대표와 안 의원 간 싸움을 '양초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제1야당을 혼돈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두 사람 모두 초선 의원으로서, 정치적 경험 부족이 낳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철천지원수 앞에서도 속내를 감추고 웃으며 협상하는 프로 정치인(?)들에 비해 두 사람은 감정에 너무(?) 솔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헤어진 연인'들의 '뒤끝'처럼 지켜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정치권에 정설(定說)이 있지 않습니까.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