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흡연 천국' 국회 의원회관, 기자에게 '딱 걸렸네'
입력: 2015.12.18 05:00 / 수정: 2015.12.18 16:18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C구역 계단실에 버려진 담배꽁초./국회=신진환 기자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C구역 계단실에 버려진 담배꽁초./국회=신진환 기자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암묵적으로 (담배를) 피워도 되는 줄 알고…."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C구역 4층 계단. A 씨는 다른 직원(비흡연자)과 대화를 나누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가 뿜어내는 담배 냄새가 계단과 계단 사이 통로에 퍼진다. 취재진을 발견한 A 씨는 재빨리 담배를 끄고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끝내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밝히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국회 건물 및 부지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흡연실을 제외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엄연히 위법이다. A 씨가 떠난 자리 옆, 창틀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쌓여 있다. 바닥 곳곳에서도 담뱃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여러 명의 누군가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사라진 흔적이다.

'달칵.' 그 사이 3층에서도 라이터 소리가 들린다. 다가가 신분을 밝히자 A 씨와 똑같이 바로 담배를 끈다. 당황한 표정을 지은 B 씨는 "인턴이다. (국회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돼서 잘 몰랐다"고 둘러댄다. B 씨 옆에 붙어 있는 '금연 스티커'를 가리키자 "죄송하다. 앞으로는 여기(실내)서 담배를 안 피우겠다"고 말하며 급히 자리를 떠난다.

◆ 의원회관 내부 계단은 '너구리굴'

다른 층도 마찬가지다. 흡연 부스가 있는 6층과 10층, 11층을 제외한 모든 층의 창틀에 담배꽁초가 들어 있는 종이컵과 커피잔이 놓여 있다. 9층의 경우 재떨이 주변에 침이 고여 있어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한다. 창에 붙어 있는 '흡연실이 아닙니다.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부탁합니다'라는 문구는 무용지물이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창문이 열린 곳이 많다. 담배 연기를 빼려는 방편이다. 하지만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연기뿐 아니라 담배꽁초와 혼합물들이 쌓인 재떨이도 냄새의 원인이다.

청소 담당 직원은 고충을 토로한다. 여직원 C 씨는 "제가 청소를 맡는 층에서 오늘(16일) 새벽과 아침에 종이컵(재떨이)을 벌써 두 번 치웠다"며 "흡연 장소가 따로 있는데도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숨을 내쉰다.

국회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16일 오전 흡연부스가 설치된 의원회관 6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흡연구역을 제외한 국회 건물 및 부지 전체가 금연구역이다./국회=신진환 기자
국회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16일 오전 흡연부스가 설치된 의원회관 6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흡연구역을 제외한 국회 건물 및 부지 전체가 금연구역이다./국회=신진환 기자

◆ 흡연부스, 있으면 뭐하나…

6층 실외 양쪽에 마련된 흡연부스 밖에서 흡연하는 직원들은 비일비재하다. 실외 흡연자들은 "흡연실 냄새 때문에" "피곤해서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흡연부스에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어서" "중요한 용무로 통화해야 해서" 등 여러 이유를 들었다.

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간 자리에는 담배꽁초와 종이컵, 침 등이 널브러져 있다. 야외 테라스 곳곳에 금연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만,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D 씨는 "밀폐된 공간(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몸에 냄새가 더 많이 밴다. 사무실로 가면 더 진한 냄새 때문에 직원들 눈치를 보게 된다. 아마도 많은 흡연자가 이런 이유로 밖에서 흡연하지 않나 싶다"고 설명한다.

의원회관 방호과 관계자는 "의원회관 6층 테라스는 모든 직원의 휴식 공간이다. 때문에 흡연부스 안에서만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직원들이 우리에게 단속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실외 흡연 문제가 계속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실내 흡연을 하지 마라는 문구가 국회 의원회관 창문에 붙어 있어 있다. 누군가가 영등포구청 신고라고 쓴 글이 눈길을 끈다./국회=신진환 기자
'실내 흡연을 하지 마라'는 문구가 국회 의원회관 창문에 붙어 있어 있다. 누군가가 '영등포구청 신고'라고 쓴 글이 눈길을 끈다./국회=신진환 기자

◆ 단속 권한 없는 방호과…해당 구청, 단 2차례 단속

국회 내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등포구청 보건소 보건지원과 직원들은 지난 10월 국회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던 11명, 이후 11월에도 불시 단속을 나와 6명을 적발했다.

그런데도 건물 내 흡연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국회 방호과나 관리과 등이 단속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호과 관계자는 "직원들이 몰래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법규상 단속권이 없고 안내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수시로 방호순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여기는 금연구역'이라고 홍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흡연자의) 민원 전화가 가끔 온다. 단속권이 없기에 민원인이 직접 다산콜센터나 영등포구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또 막상 신고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며 "구청에서 단속을 나오면 당연히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지원과 관계자는 "단속은 불시에 진행하며 앞으로도 실시할 예정이다. 다만 (절차상) 국회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서 방호과 협조를 구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치고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흡연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우는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실내·금연구역에서 흡연하다 적발될 경우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yaho1017@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