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③] 상도동 주민들, '응답하라! YS'
입력: 2015.11.28 05:00 / 수정: 2015.11.27 22:00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인이 거행된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서 차남 김현철 씨와 장손 김성민 씨가 고인의 영정과 함께 사저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김 전 대통령 사저 앞에는 수 백명의 주민들이 40년 이웃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사진공동취재단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인이 거행된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서 차남 김현철 씨와 장손 김성민 씨가 고인의 영정과 함께 사저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김 전 대통령 사저 앞에는 수 백명의 주민들이 40년 이웃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 서민지 기자] "대통령이기보단,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죠."

상도동 주민들은 하나같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김영삼 할아버지'로 기억한다. 주민들은 "지나갈 때마다 '잘지내제~ 더 예뻐졌데이'하며 잡아줬던 '따뜻하고 두툼한 손'을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도동 주민들에게 46년간 동고동락한 김 전 대통령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꺼내면 영원히 '울고 웃는 추억'이 됐다.

22일 새벽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지시가 떨어졌다. 곧장 김 전 대통령이 모든 영욕의 순간을 함께했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로 달려갔다. 어두컴컴한 상도동 사저 주변엔 이미 수많은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고, 경호 인력이 집 안팎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때만 해도 상도동 주민들은 아직 '김영삼 할아버지'의 서거를 실감하지 못한 듯했다. 사저 주변엔 적막이 흘렀고, 이따금 산책하는 사람 외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동이 트고 밝아지자 주민들은 하나, 둘씩 김 전 대통령 집 앞으로 모였다. 앞집, 옆집 곳곳엔 조기가 게양됐고 눈시울을 붉히며 김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상도동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마지막 소원으로 상도동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꼽았다./사진공동취재단
고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상도동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마지막 소원'으로 상도동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꼽았다./사진공동취재단

취재진이 "오래도록 같이 사셨는데, 심경이 어떠세요"라고 묻자마자, 아이같이 '흐어엉'하고 울어버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저 "조금만 더 오래 사시지, 조금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40년 동안 한 동네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이 모신 어르신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존경이 느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던 26일 상도동 사저 주변, 나흘 동안 상도동 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을 보낼 채비를 해왔는가 보다. 들어서는 골목부터 김 전 대통령의 집까지 단 한 집도 빠짐없이 조기가 게양됐다. 마치 김 전 대통령이 사저로 향하는 마지막 길을 밝혀주는 듯했다.

이날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영하 2도의 추운 날씨에도 상도동 주민들은 혹시나 운구 행렬을 놓칠까 2시간 전부터 집 앞을 서성였다. 며칠째 취재진이 몰려 시끄럽다고 항의할 만도 한데, 주민들은 도리어 추운 날 고생한다며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씩 건넨다. 그리고선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를 시작한다. "우리 아이도 '김영삼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죠. 전경들에게도 늘 안부 물어보시고 초콜릿도 쥐여주시곤 했어요…."

26일 오후 운구행렬이 현충원으로 떠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상도동 사저 앞에 주민들이 몰려 있다./상도동=서민지 기자
26일 오후 운구행렬이 현충원으로 떠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상도동 사저 앞에 주민들이 몰려 있다./상도동=서민지 기자

운구 행렬이 도착할 동안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도 YS에 대한 추억의 이야기 보따리를 꺼낸다. 김 전 대통령네 뒷집 사는 이는 "여기 앞에서 만나면 나한테 늘 '남편이 잘못하면 내한테 데리오라 안 카나, 힘들제'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올해는 연하장 못 받겠네, 매년 주셨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삼킨다. 영등포로 이사한 뒤 오랜만에 상도동을 찾았다는 김 모 씨는 집 앞 모퉁이에 섰다. 그는 "가시는 길 배웅하러 왔다. 30대 때 여기 앞에 서서 '가택연금'을 지켜본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존경한다"고 회고했다.

운구 행렬은 사저를 지나,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김영삼 기념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은 내년 3월 초 열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은 도서관을 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옛일을 곱씹으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상도동 주민들은 그렇게 '김영삼 할아버지'를 보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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