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입력: 2015.11.23 11:50 / 수정: 2015.11.23 11:50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향년 88세) 전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빈소에 영정이 놓여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향년 88세) 전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빈소에 영정이 놓여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있었을 것이다. 현자의 지혜로, 또는 생활 속의 가르침으로 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그 높은 뜻이 일반인의 가슴을 덥혔다. 그러면서 예수의 어록(語錄)이 됐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향년 88세) 전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이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9년 9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다. 그 자리에서 YS는 “(미국의)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서만 박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박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 했다”며 격노했고, 여당은 단독으로 YS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이때 YS가 내뱉은 말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저작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 정치인 손주항 전 국회의원이 폭압적인 유신정치에 항거하며 예언처럼 한 말이다. 하지만 명언(名言)이라도 주인과 때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인가. 헌정사상 초유의 야당 총재 국회 제명이라는 엄중하고 혹독한 시대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유신의 종말에 도화선이 된 YS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닭 모가지…’는 새 주인을 만났다.

말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했다.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덕경의 ‘도(道)’가 그렇다. 노자(老子)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무려 5000여자를 동원했지만, 부처님이 그저 연꽃 하나 들어 올린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알아듣고 깨우치는 이만 가섭(迦葉)처럼 미소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에 행동과 헌신이 따를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한다. ‘닭 모가지…’도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 독재정치에 감연히 맞선 YS이기에, 이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목숨으로 항거한 YS이기에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피 흘리지 않은 민주주의는 사전 속 단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던가.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 했다”며 격노했고, 여당은 단독으로 YS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이때 YS가 내뱉은 말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제공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 했다”며 격노했고, 여당은 단독으로 YS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이때 YS가 내뱉은 말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제공

YS를 대표하는 문구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있다. 그런데 뜻풀이는 저마다 약간씩 다르다. 아마도 본인이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지 않아서인가.

1993년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YS는 직접 쓴 ‘大道無門‘ 휘호를 선물한다. 무슨 뜻인지 설명이 필요했다. 이에 옥스포드대학 출신 박진 전 국회의원이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라고 통역했다. 그래도 갸우뚱하자 다시 “높은 길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라고 했다가,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라고 하자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사실 미국의 고속도로 ‘Freeway’는 말 그대로 ‘무료도로’이다. 따라서 톨게이트(요금정산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클린턴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대도무문’의 진정한 뜻이 전달됐을지는 의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Free(자유)’에 대해 짚고 가자. 19세기 한-중-일에 이 단어가 전달됐을 때는 마땅한 번역어가 없었다.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서양 문화를 일본에 전달한 인물인데, 게이오대학 설립자이자 일본 화폐 1만 엔권의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Freedom’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당혹감은 짐작할 만하다. 봉건시대 쇼군의 막부정치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유신 시대였지만, 백성들은 천황제 아래에서 ‘신민(臣民)’에 불과했다. 인문주의가 생소한 시대에 어떻게 ‘Freedom’을 설명할 것인가.

처음엔 ‘천하어면(天下御免)’이라고 번역했다. 천하의 모든 제약과 굴레가 사면(赦免) 또는 면제된 상태라는 뜻이다. 그러다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불교의 용어에서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자유(自由)’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가 그냥 ‘천하어면’이라고 했으면, 우리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천하어면주의’, ‘자유국가’가 아니라 ‘천하어면국가’라 했을 지도 모른다.

다시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돌아가자. 원래는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국의 남송(南宋)시대 혜개(慧開.1183~1260) 스님의 수행처 ‘무문관(無門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법만상(一法萬象) 만법귀인(萬法歸一) 도처유법(到處有法)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진리는 만 가지 모습이고, 만 가지 진리는 결국 하나이다. 진리는 도처에 있고, 그 길은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다.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정해진 형식이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법으로든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꼭 부처님의 깨달음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항간의 ‘도(道)’면 어떤가. “큰 길은 사방팔방으로 열려있어 어디서든 들고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제약도 없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말한다”고 해석도 있다. 이에 비하면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뜻풀이는 본디의 함의(含意)를 너무 왜축(矮縮)한 느낌이다. 큰 도둑 ‘대도(大盜)’로 불린 조세형에게 붙인 ‘대도무문(大盜無門)’은 신문 편집자들의 번득이는 패러디이고, 세종로 ‘대도유문(大道有門)’은 이른바 ‘명박산성’이나 경찰의 차벽을 비아냥댄 것이고.

YS가 떠나면서 6년 전 떠난 DJ와 함께 ‘양김(兩金)’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양김(兩金)’은 민주화의 대명사였고, 그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캄캄한 독재의 밤에 새벽의 여명이 밝아왔다. 군부독재는 바통을 이어가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DB
YS가 떠나면서 6년 전 떠난 DJ와 함께 ‘양김(兩金)’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양김(兩金)’은 민주화의 대명사였고, 그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캄캄한 독재의 밤에 새벽의 여명이 밝아왔다. 군부독재는 바통을 이어가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DB

손주항 씨처럼 앞서 말하고도 말의 주인이 바뀌거나 아예 잊히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잊힌 정치인 임광순 씨가 옛적에 책을 냈는데, 그 제목이 ‘나는 졸(卒)이로소이다’였다. ‘졸(卒)’은 장기판의 ‘졸’을 뜻하는데, 종종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나를 졸로 보느냐”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갑을(甲乙)관계에서 ‘을(乙)’도 아닌 ‘병정(丙丁)’쯤이다. ‘졸병(卒兵)’인 ‘병정(兵丁)’하고도 발음이 같다.

그런데 임광순 씨가 말한 ‘졸’은 의미심장하다. “졸은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옆으로 비키는 지혜는 있지만, 뒤로 물러서는 비겁함은 없다.” 전투에서는 최전방 척탄병이자, 희생양이며, 포(包)를 위한 다리이다. 모습과 위상은 초라한 듯해도, 졸이 둘만 있으면 상대편 궁(宮)을 유린하고 제압할 수 있다. 그것은 포(包)가 둘이라도, 마(馬)가 줄이라도, 상(象)이 둘이라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런 졸(卒)과 같은 시민들의 기개와 지혜가 모여 오늘날 민주화의 새벽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최루탄 터지는 명동에서, 종로에서 눈물을 흘려가며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들의 갈망이 오늘 민주의 아침을 밝혔을 것이다.

YS가 떠나면서 6년 전 영면한 DJ와 함께 ‘양김(兩金)’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양김(兩金)’은 민주화의 대명사였고, 그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캄캄한 독재의 밤에 새벽의 여명이 밝아왔다. 군부독재는 바통을 이어가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양김(兩金)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그들이 어둠의 장막을 열어 새벽을 열었지만, 과연 민주주의의 태양은 지금 어디쯤 떠올랐는가. 아직 새벽인가, 중천인가. 밝은 태양이 문득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는 것인가. 구름이 걷히면 쨍 하고 해가 뜰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새벽을 준비해야 하는가. 독재의 어둠을 헤치고 민주화 새벽을 연 YS는 눈을 감기 전 지금을 민주화 시계로 몇 시쯤이라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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