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창당을 선언한 천정배 의원(오른쪽)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각자 생각에 잠겨 있다./대방동=임영무 기자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철수와 영희는 손도 잡고 뽀뽀도 했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썸타는' 관계다. 요즘 청춘들은 서로 호감은 갖고 있지만 정식으로 교제를 하고 있지는 않은 남녀 간의 상태를 '썸(썸탄다)'이라고 말한다. '썸씽(Something)'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썸'은 확신을 주지 않는다. 정식으로 사귀는 데서 생기는 갖가지 부담을 미리 예측해 보고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계다.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지만 '내것'은 아니기에 나의 '썸남' 혹은 '썸녀'가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려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정식으로 "난 네꺼"라고 말한 적 없으니까. 그래도 때로 '썸'이 격정적인 '쌈(싸움)'과 함께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한다.
옆구리 시린 늦가을, 겨울의 초입에서 여의도 역시 '썸'의 계절이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물밑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부지런히(?) '썸타고' 있다. 어느 쪽에 줄을 대야 유리한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탐색전을 펼치는 중이다.
최근 천정배 의원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썸'을 타는 듯했다. 지난 9월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을 선언한 천 의원은 그동안 3~4차례 김 전 지사를 만나 신당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의원은 2012년 김 전 지사가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섰을 때 상임경선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자연스레 김 전 지사에게 정치권의 시선이 쏠렸다. 이러한 가운데 17일 그가 천 의원이 추진 중인 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가 안팎이 술렁였다. 이윽고 출범식 당일인 18일, 하지만 그는 '썸'을 일축했다.
김 전 지사가 18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에서 열린 천 의원의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대방동=배정한 기자 |
김 전 지사는 "천 의원의 신당 창당을 응원한다"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에 남을 것을 시사했다. 물론 글자 그대로 '신당에 참여한다, 아니다'라고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다, 아니다'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흔한 '유체이탈 화법(자신이 한 말과 행동과 맞지 않을 때를 비유해 일컫는 신조어)'으로 "새정치연합이 혁신을 이뤄내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아직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보다 못한 천 의원의 지지자는 '돌직구'를 날렸다. "끝까지 신당 참여하겠다고 안 밝히는 거냐. 뭐하러 왔냐"는 그의 목소리가 출범식장의 허공을 갈랐다. 민망한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야권의 잠룡으로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주목받지 못했던 김 전 지사로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존재감은 드러냈으니 말이다.
같은 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썸'의 손길을 내밀었다. '문·안·박' 연대로 야권의 위기를 극복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자고 제안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단일화 과정에서 '썸 좀 탔던' 사이인 안 전 대표는 문 대표의 연대 제안을 사실상 거부해왔기에 '썸'이 '쌈'으로 끝날지 아닐지 두고 볼 일이다.
'썸'은 때로 잘 쓰면 '약'이요, 아니면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