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동종교배의 결말은 공멸이다
입력: 2015.11.09 11:14 / 수정: 2015.11.09 11:14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왜 지역편중 인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본인은 “능력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지만, 그 말이 되레 다른 지역 주민들 가슴에 대못이 됐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왜 지역편중 인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본인은 “능력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지만, 그 말이 되레 다른 지역 주민들 가슴에 대못이 됐다. /청와대 제공

[더팩트 ㅣ박종권 편집위원] ‘체력이 국력’이라던 시대였다. 아침이면 “재건 체조, 시~작!” 구령소리와 함께 “딴따단딴 딴딴 딴따단딴딴~”하는 음악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다. 뜻은 좋았다. 몸이 튼튼해야 개인도 행복하겠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생산성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보릿고개’였다. 뭘 먹어야 체력이 다져질 것 아닌가. 굶으면서 체조하면 소중한 칼로리만 낭비되지 않겠나.

그래서 통일벼가 나온다. 서울대 허문회 교수의 작품인데, 처음 이름은 IR667이었다. IR은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 667번째 개발한 품종이란 뜻이다.

당시 한국인이 먹던 자포니카(Japonica)와 동남아시아 인디카(Indica)의 교배종이다. 자포니카는 이른바 ‘아끼바레’라고 불리는 일본의 개량 품종으로, ‘맑은 가을하늘(秋晴)’이란 뜻이다. 차지고 맛이 좋지만, 병충해에 약하고 수확량이 적다.

통일벼는 비록 맛이 떨어지지만, 수확량이 많다. 보릿고개에 굶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맛이 대순가. 게다가 이 통일벼는 새마을 노래 “초가집도 없애고~”에 지대하게 기여한다. 과거 추청벼와 달리 통일벼는 짚 길이가 짧고 질기지 않아 지붕을 엮기에 부적절하고 불편했다. 자연히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하게 된다. 농가에선 이 통일벼 지푸라기로 가마니와 새끼줄을 만들 수도 없었다. 가마니와 새끼줄은 급속히 부대와 노끈으로 대체됐다.

쌀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니, 다음은 단백질 공급이다. 이스라엘 잉어로 불리던 향어를 들여와 내수면 양식을 시작한다. 속칭 월남붕어 배스도 들여온다. 논두렁에는 황소개구리를 풀어놓는다. 당시 황소개구리는 기적의 영양식품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다. 토종보다 10배나 크니 허기진 국민에게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될 터이다.

동종교배의 위험성은 미생물도, 세균도 알았다. 원래 자가분열로 ‘종족보존’에 충실하던 원시세포에 어느 날 이질적인 균(菌) 하나가 침입한다. 그런데 원시세포는 이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공생(共生)이 서로에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더팩트DB
동종교배의 위험성은 미생물도, 세균도 알았다. 원래 자가분열로 ‘종족보존’에 충실하던 원시세포에 어느 날 이질적인 균(菌) 하나가 침입한다. 그런데 원시세포는 이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공생(共生)이 서로에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더팩트DB

결국 ‘통일벼’와 ‘황소개구리’는 배고픈 ‘유신시대’의 산물이다. 한편으론 보릿고개를 넘겼지만, 한편으론 제 살 깎기 측면도 있다. 통일벼 짚으로는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줄을 꼴 수 없었다. 농민들은 겨울철 농가수입 대신 부대와 노끈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부대와 노끈은 화학제품으로, 중화학공업의 산물이다. 결국 농민들이 가마니와 새끼줄을 포기하는 대신 오늘날 재벌의 기반을 닦아준 셈이다.

황소개구리는 어떤가. 1980년대 들어 온 들녘은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저수지와 하천에선 월남붕어에 토종 붕어가 씨가 말라갔다. 주먹구구 탁상행정이 삼천리 금수강산의 생태계를 교란시킨 것이다. 황소개구리에 의한 환경파괴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희망근로를 통해 포획작전에 나섰다. 장관이 직접 나서서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하는 식으로 시식회까지 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정부가 기울여온 각고의 노력 때문일까. 전혀 아니었다. 정설은 ‘근친교배’였다. 어미와 새끼, 형제자매끼리 끼리끼리 짝짓기를 계속하다 보니 악성 유전자가 대물림 됐다는 것이다. 단순해진 유전자 구조로는 환경호르몬이나 오염물질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동종교배의 위험성은 미생물도, 세균도 알았다. 원래 자가분열로 ‘종족보존’에 충실하던 원시세포에 어느 날 이질적인 균(菌) 하나가 침입한다. 그런데 원시세포는 이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공생(共生)이 서로에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가 그 증거이다. 이 ‘이종교배’가 캄브리아기 폭발적 진화의 방아쇠가 된다.

미물들도 근친교배, 동종교배의 위험성을 아는데 인간들이 몰라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상고사를 보면 동예(東濊)에 ‘족외혼’의 관습이 있었다. 개활지 고구려는 씨족과 부족간의 접촉이 간단없이 이뤄지지만, 동예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유전자와 교접을 통해 종족을 보존하면서, 부족간 동맹을 통한 상호 공존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거뒀던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13대 윤천주 총장이 첫 서울대 출신 총장이 된 이후 단 한 명도 타 대학 학부 출신이 총장에 선출되거나 보임된 적이 없다. /더팩트DB
서울대의 경우 13대 윤천주 총장이 첫 서울대 출신 총장이 된 이후 단 한 명도 타 대학 학부 출신이 총장에 선출되거나 보임된 적이 없다. /더팩트DB

그런데 세월이 흘러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가. 먼저 그 어느 부분보다도 개방성과 다양성이 필수적인 학계를 보자. 서울대 성낙인 총장은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다. 연세대 정갑영 총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려대 염재호 총장은 고려대 행정학과 출신이다. 서울대의 경우 13대 윤천주 총장이 첫 서울대 출신 총장이 된 이후 단 한 명도 타 대학 학부출신이 총장에 선출되거나 보임된 적이 없다. 그러면 우리 학계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미국 학계는 어떤가.

2007년 하버드대 28대 총장에 드루 길핀 파우스트가 취임한다. 그는 첫 여성 총장인데, 하버드 출신도 아니다. 단과대학인 브린모어대를 졸업했다. 석사와 박사학위도 펜실베니아대에서 마쳤다. 하버드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 대학교이다. 브린모어대는 대학평가로 유명한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 발표에서 단과대학 가운데 30위쯤이다. 우리로 말하면 작은 지방 사립대 출신 학자가 서울대 총장이 된 셈이다.

2001년에는 프린스턴대 총장에 여성인 셜리 틸먼이 취임했다. 그는 2012년 퇴임했는데, 본디 캐나다 퀸스대 출신으로 미국 템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브라운대의 루스 시먼스 총장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첫 아이비리그 총장이 됐다. 그는 미국 남부의 딜라드대학 출신이다. 브라운대 학부 출신으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은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 총장을 거쳐 현재 세계은행 총재이다.

이러한 포용성이 오늘의 미국을 세계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학문 영역에서도 이종교배를 선택했던 것이다. 학문적 동종교배와 근친교배는 결국 ‘우물 안의 황소개구리’를 만든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인간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분야가 이럴진대, 통합과 공존을 추구하는 정치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지미 카터 대통령 때 ‘조지아사단’, 로널드 레이건 때 ‘캘리포니아사단’이란 말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핵심 정부기관장을 독식(獨食)하지는 않았다. ‘샐러드 접시’란 말처럼 그래도 구색을 맞춰 골고루 안배했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 때는 ‘지역안배’가 개각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물론 군부 출신 인사와 TK출신이 핵심 요직을 ‘점령’했지만, 최소한 숫자적으로라도 물리적 균형을 꾀했다. 예컨대 농수산부 장관은 곡창지대인 전북 출신으로 보임하는 것 같이 말이다. 물론 중요한 장관이 아니어서 떡 주듯이 인사를 했다고도 하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배려는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 편중인사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먼저 서울 출신인 황교안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국가 의전서열 5위까지 모두가 영남 출신이다. 핵심 권력기관인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 수장도 모두 이른바 TK출신이다. 감사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도 영남 출신이다.

탕평과 화합이 아닌 편중 인사는 항상 파국의 에너지를 축적해간다. 그것이 자연계이든, 인간계이든, 정치 생태계이든 마찬가지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문병희 기자
탕평과 화합이 아닌 편중 인사는 항상 파국의 에너지를 축적해간다. 그것이 자연계이든, 인간계이든, 정치 생태계이든 마찬가지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문병희 기자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이들 고위직 바로 아래 ‘허리’도 대부분 영남권이다. 검찰의 검사장급 이상, 국세청의 국장급 이상 중 절반 정도가 영남출신이다.

지금도 “능력으로 뽑는데, 타 지역 출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영남출신을 뽑는다”고 해명(?)하고 있지 않은가. 중앙일보의 정철근 논설위원은 “공직사회에 지역 쏠림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불길한 징조다. 후보군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선 나중에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려 해도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편중인사의 폐해를 짚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이미 장기적 포석을 끝냈다는 ‘음모이론’도 나오는 배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왜 지역편중 인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본인은 “능력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지만, 그 말이 되레 다른 지역 주민들 가슴에 대못이 됐다. “우리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냐. 두 번 죽인다”고 말이다. 박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어쩌면 ‘믿을 사람’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부’라는 확실한 자원이 있었다. 따라서 TK는 군부 자원의 보충병 역할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군부’와 같은 믿을만한 인적 기반이 없다. 그래서 과거 부친의 지지기반이었던 TK를 ‘믿을 사람’의 인적 풀(pool)로 여기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대구 출신인 유승민의 ‘배신’에 치를 떠는 것이고, 그 부친상에 조화도 보내지 않는 것 아닐까.

여하튼 탕평과 화합이 아닌 편중 인사는 항상 파국의 에너지를 축적해간다. 그것이 자연계이든, 인간계이든, 정치 생태계이든 마찬가지다. 생명체의 진화가 불완전성이 모태이듯, 정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그랬다. 정치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모든 생물이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면 굳이 힘들게 짝을 찾아 진화의 역정을 밟을 필요가 없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짝을 찾아 완전을 향해 끝없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하고, 여당은 좋은 야당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행복과 발전이 있다. 여자만으로는 희망의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여당만으로는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

정권도 동과 서, 남과 북이 만나서 발전적으로 교접해야 한다. 동쪽에 뜬 해를 언제까지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파국이다. 밤이 없이 낮만 계속된다면, 사막보다 더한 황무지가 되지 않겠는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서쪽으로 해를 보내줘야, 새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갈수록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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