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반쪽 난 국회, '짓밟고, 비웃고'
입력: 2015.11.05 12:11 / 수정: 2015.11.05 12:11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3일 국회 로텐더홀 본회의장 출입문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에 반대하는 의원총회를 갖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3일 국회 로텐더홀 본회의장 출입문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에 반대하는 의원총회를 갖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국회의 심장인 로텐더홀이 두 동강 났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 이후 쪼개진 정부·여당과 야당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4일 오전 10시가 임박하자 로텐더홀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러나 각자의 '목적(?)'은 다릅니다. 제1회의장(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는 황우여 부총리를 비롯한 장관들과 국무위원들이 예결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예결위 여당 간사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출입문에서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국회 본청 2층 출입구로 들어와 레드카펫을 밟고 3층으로 올라오면 로텐더홀이 보인다.(화살표 방향) 홀 중앙에는 고(故)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소통, 운송이 전시돼 있다.(노란색 동그라미)/국회=서민지 기자
국회 본청 2층 출입구로 들어와 레드카펫을 밟고 3층으로 올라오면 로텐더홀이 보인다.(화살표 방향) 홀 중앙에는 고(故)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소통, 운송'이 전시돼 있다.(노란색 동그라미)/국회=서민지 기자

반면 맞은편 제2회의장(본회의장) 앞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제1회의장을 바라보며 "역사교과서 반대! 정부는 역사왜곡 중단하라!"를 외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주승용 최고위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2일부터 줄곧 이곳에서 농성을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농성장을 굳이 로텐더홀로 잡은 이유에 대해 "국회 공간적 중심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새겨져 있으며, 제헌의원들이 조각이 돼 있는 곳"이라면서 "헌법 정신마저 왜곡하려는 국정교과서를 저지하려는 의지를 단호하게 더 다지자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 이후 국회의 심장인 로텐더홀이 두동강 났다. 본회의장 앞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고, 예결위장에서는 예산안 심사를 위해 국무위원들과 여당 의원들 야당 의원들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국회=서민지 기자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 이후 국회의 심장인 로텐더홀이 두동강 났다. 본회의장 앞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고, 예결위장에서는 예산안 심사를 위해 국무위원들과 여당 의원들 야당 의원들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국회=서민지 기자

"이야 빡세네, 저거 다 밟고 지나가는 거 봐라"

전날인 3일 취재진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봅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확정고시' 발표 당시 로텐더홀 분위기는 더욱 삼엄했습니다. 당초 예정됐던 원포인트 본회의가 야당의 전면 보이콧으로 무산되자 회의장에 들어섰던 여당 의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야당 의원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과 현수막, 매트 등을 그대로 즈려 밟고 지나갔습니다.

농성장에서 살짝 벗어난 왼쪽 출입구로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웬일인지 평소와 다르게 홀가분한 표정입니다. 김 대표는 기자들이 몰려들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질문하자 특유의 입 주변 보조개를 띄우며 "허허, 이미 다 이야기했잖나. 역사관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정치권은 민생에 주력해야 한다. 국면을 전환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둘째 사위 마약 논란부터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져 무거웠던 마음을 한결 내려놓은 분위기입니다.

3일 여당 의원들이 밟고 지나간 뒤 흩어진 새정치연합 피켓./국회=서민지 기자
3일 여당 의원들이 밟고 지나간 뒤 흩어진 새정치연합 피켓./국회=서민지 기자

같은 시각 야당이 의총을 진행하고 있던 예결위장 앞에서는 의원끼리 언쟁을 벌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예결위 소속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은 "남의 회의장에서 뭐하는 거냐"고 소리쳤고,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여기가 왜 남의 회의장입니까"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지나가던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우리(예결위)가 사용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저러는 거냐"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생' 프레임 뒤에 숨은 여당 그리고 '투쟁'을 앞세운 야당. 극명하게 나뉜 로텐더홀처럼 여야정의 갈등도 깊어지자 국회는 멈춰 섰습니다. 무산된 본회의로 국회 국토위원장 선임과 김태현 중앙선관위원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안건 등은 미뤄졌고, 내년도 살림살이를 점검하는 예결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전체회의·보건복지위·정무위원회 등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문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에 반대하며 국정화 철회를 외치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문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에 반대하며 국정화 철회를 외치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이종걸 원내대표가 3일 "우리는 국회가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날 예정대로 11시 국정교과서 확정고시가 강행된다면 저희는 국회를 중단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잘못된 태도에 대한 분명한 저희의 의지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게 중단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한 만큼 국회가 다시 정상 재개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7월 17일 '제헌절 경축식' 축사에서 "제헌절 경축식이 열리고 있는 '이곳(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는 설계 당시부터 두 개의 본회의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쪽 회의장은 통일 이후 국회가 양원제를 채택할 것을 대비해 만든 것이다. 여러분이 계신 이곳이 바로 통일을 염두에 두고 설치된 희망의 공간이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최종, 최고의 목표는 평화적인 통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정 의장이 강조한 '이곳', 지금 당장 '평화적인 통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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