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P-STORY] 문재인-안철수-천정배 '너나 잘하세요'
입력: 2015.09.22 05:00 / 수정: 2015.09.21 17:20

최근 20대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천정배 의원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왼쪽부터)./더팩트DB
최근 20대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천정배 의원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왼쪽부터)./더팩트DB

'친절한(?)' (천)정배 씨가 (문)재인 씨에게 말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너나 잘해라"라고요. 한때 다정한 사이였던 (안)철수 씨도 재인 씨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안은) 실패했다"고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사면초가의 재인 씨는 '내가 좋은지 싫은지(재신임 투표 제안)' 집안 식구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20일'은 세 사람에게 '각자도생'의 하루였습니다.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들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절실히(?) 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나 아직 살아있어~"라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4·29 재보선의 풍운아였던 천정배(무소속) 의원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에서 야심차게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재보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는데도 야권의 심장인 '호남'에서 승리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잇따른 선거 패배로 내홍에 휩싸인 야권 진영에선 그를 필두로 한 '호남 신당' 얘기가 불거졌고, 그 실체가 드디어 공식화된 순간이었습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의사를 밝히고 있다./문병희 기자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의사를 밝히고 있다./문병희 기자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람'이 빠졌고, 기존의 신당들과 특별하게 색다른 느낌은 없다는 게 정가 안팎의 평가입니다. 민심을 띄울 수 있는 '추석 전'이라는 데드라인에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요? 창당 선언 전부터 몇몇 의원들의 합류설이 흘러나왔지만 회견에서 오히려 천 의원은 "이 자리를 빌려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용감한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물론 내년 4월 총선까지 시간이 남아있기에 '(야권 분열과 연대, 신당 창당 등) 변수'는 많습니다.

같은 날 천 의원을 견제라도 하듯, 안철수 전 대표도 나섰습니다. 그는 천 의원의 회견 한 시간 전 '정치입문 3년'에 대한 소회를 밝히겠다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지난해에도 '정치입문 2년' 소회를 밝혔으나, 당시엔 9월 24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로 대신했습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정치입문 3년 소회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전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더팩트DB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정치입문 3년 소회'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전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더팩트DB

안 전 대표는 회견에서 당의 부패 척결과 혁신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최근 그는 연일 '독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 싸움이 끊이질 않자 '혁신' 문제를 부각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7·30 재보선 패배 후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한 그였습니다. 그런 그가 대선 당시 '새정치'를 내걸었듯 다시 한번 '혁신'으로 문 대표와의 차별화를 내세워 독자 행보를 걷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명운도 이날 또 한 번 한고비를 넘었습니다. 문 대표는 지난 9일 혁신안을 둘러싼 당내 분열에 '혁신안 실패 시 재신임 투표' 카드를 꺼냈고, 16일 비주류 퇴장 속에 혁신안은 통과됐습니다. 그리고 20일 당은 당무위원-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 문 대표의 재신임을 결의했습니다. 문 대표는 "무겁게 뜻을 받아들이겠다"면서 재신임 투표를 철회키로 했습니다.

제2야당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1일 제1야당인 문재인 대표 체제와 또 다른 야권 진영 내 신당 창당을 선언한 천정배 의원을 매섭게 질타했습니다. 문 대표 체제엔 "혁신을 핑계 삼아 지금 해야 할 야당 노릇을 하지 않고 뒷전"이라고, 천 의원에겐 "당내 정치적 입지가 불분명해진 중진 정치인이 신당을 만들어 세력을 규합해 정치 이모작을 시도하는 광경은 익숙한 풍경"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되려면, 그들의 마지막 보루로서 야당이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일 당무위원-의원총회 연석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결의했다./더팩트DB
새정치민주연합은 20일 당무위원-의원총회 연석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결의했다./더팩트DB

'문재인-안철수-천정배', 이 세 사람과 '갈 데까지 간' 야당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풍우동주(風雨同舟, 폭풍우 속에서 한배를 탄다)'를 할 순 없는지 말입니다. 지난해 7월 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내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간 갈등 속에서 당 대표 당선을 확정 지은 뒤 '풍우동주'란 말로 각오를 다졌습니다. 뜻 그대로 '서로 미워해도 위험에 처하면 돕자'는 얘깁니다.

문 대표를 비롯해 안 전 대표와 천 의원, 그리고 야당 내 여러 세력들이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문제 의식은 같습니다. "(야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뭉치면 백성(민심)이요, 흩어지면 도적(외면)"이라고 했습니다. 각자(너)가 아닌 우리를 말할 때, 야당의 '도생(살길)'이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누구나 아는 이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재신임 결의 후 문 대표의 고백처럼 "세상일 참 마음 같지 않은" 듯합니다.

[더팩트 | 오경희 기자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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