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치킨게임은 '닭대가리'들이 한다
입력: 2015.08.24 11:29 / 수정: 2015.08.24 18:11
마라톤 협상 진통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판문점에 모인 남북 고위급 인사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통일부 제공
'마라톤 협상 진통'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판문점에 모인 남북 고위급 인사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통일부 제공

미국에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될 '호칭'이 있다. 하나는 '거짓말쟁이(Liar)', 다른 하나는 '겁쟁이(Chicken)'이다. "라이어~"하면 상대방 인격에 대한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비난이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 "치킨~"은 수컷 사이에서 금기다. 곧바로 결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유니버설 영화사의 황금알 시리즈에 '백 투 더 퓨처'가 있다. 속편이 3편까지 나왔고, 테마파크의 4D 상영관도 히트를 쳤다. 주인공 마이클 J 폭스가 극 중 분노하는 장면은 바로 "치킨~"이라고 불릴 때다. 상대가 비록 골리앗처럼 덩치 큰 말썽꾸러기이지만, 그렇다고 눈을 내리깔면 시쳇말로 '싸나이'가 아니다. 당연히 다윗의 매운 맛을 보여주면서, '약자'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왜 '치킨'이 겁쟁이를 뜻하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혹시 춥거나 무서울 때 피부에 소름이 돋는데, 도톨도톨한 것이 마치 닭의 껍질과 비슷해서일까. 닭살은 우리도 소름을 뜻하긴 하지만, 대체로 '닭살 커플'처럼 징그럽게 귀여운 경우에 사용하는 듯하다. 중국에서는 소름을 '상어의 살갗'이란 뜻의 교부(鮫膚)라 한다.

미국에서 '치킨게임'이 나온 것은 이 같은 언어적, 사회문화적 배경에서다. 1950년대 미국의 방황하는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이다. 한밤에 도로 양쪽에서 서로의 자동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한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어 피하면 '치킨(겁쟁이)'이 되는 것이다. 반항아 이미지의 요절한 배우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 나오는 자동차 게임이 전형적이다.

치킨게임에서 양쪽 모두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으면 둘 다 승자가 된다. 그러나 결국 충돌함으로써 둘 다 공멸하게 된다. 잘못 고양된 수컷스러움의 극단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치킨게임이 1960년대를 전후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극심한 군비경쟁을 빗대는 용어가 됐다. 학계에서는 박정희와 김일성의 군비경쟁도 치킨게임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작금 남북의 대치상황도 치킨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뢰 도발~확성기 반발~포탄 발사로 수위를 높여가는 대응이 그렇다. 누군가 먼저 중단하는 쪽이 '겁쟁이'가 되는 상황이다. 비록 판문점에서 최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 물러설 수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 긴장감 고조 판문점에서 최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 물러설 수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 긴장감 고조' 판문점에서 최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 물러설 수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양측 모두 치킨게임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상대가 핸들을 꺾도록 전조등을 상향으로 올리며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이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으로는 어느 쪽도 핸들을 먼저 꺾기 힘들다. 결국 정면 충돌이냐, 일단 멈춤이냐 선택지는 단순해 보인다.

그런데 북한이 왜 이토록 확성기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일까. 북한이 격렬히 대응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효과일까. 전문가들은 확성기 방송으로 북한군의 사기가 떨어진다거나, 탈북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없다고 본다. 다만 '최고 존엄'에 대해 비난하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드러내는 스스로의 무력함, 그로써 빚어지는 군부에 대한 불신과 비난, 그렇다고 곧바로 타격할 수도 없는 상황이 엮이면서 진퇴유곡에 처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확성기 방송이 욕설 수준의 비난이 아니라 '팩트'를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날씨예보를 꼭 하는데, 북한의 군사들이 들으면 너무나 정확하다. 비가 온다고 하면 정말로 비가 오고, 눈이 온다면 눈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 존엄' 김정은의 야만적인, 비이성적인 행태를 마치 보도하듯이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북한 견지에서는 '국지전 도발'이다. 우리도 '확성기 심리전'이라고 하며, 대북심리전단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전'을 사전적으로 보면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인 자극과 압력을 주어 여러 가지 나라의 정치 외교 군사면에서 유리하도록 이끄는 전쟁'이다. 수식어를 빼면 '심리전은 전쟁이다'는 결론이다. 북한은 그래서 '확성기 심리전'도 정전협정 위반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풍선은 부풀면 작은 가시에도 터지게 돼 있다. 남북 양측은 "설마~"하겠지만, 작금의 상황을 잘 관리하면 국내정치적으로 대외적으로 국면전환의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황새와 조개의 처지'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들에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안겨주는 꼴이 되지 않았나 말이다.

아마도 일본은 이 기회를 '전쟁할 수 있는 국가' 행보에 활용할 것이다. 아마 미국도 이를 짐짓 부추길 것이다. 자신의 돈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일본을 이용해 중국의 확장을 억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아닌가.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든, 그렇지 않고 대치가 격화되든 결국 미국과 일본과 중국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남북 긴장상황은 남북 모두 황새와 조개가 되는 것이며, 주변국들은 앉아서 어부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더팩트 DB
'이이제이(以夷制夷)' 남북 긴장상황은 남북 모두 '황새와 조개'가 되는 것이며, 주변국들은 앉아서 '어부'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더팩트 DB

한미동맹은 공짜가 아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유리한 마당을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줄 리가 만무하다. 결국 남북 긴장상황은 남북 모두 '황새와 조개'가 되는 것이며, 주변국들은 앉아서 '어부'가 되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첫머리에 "전쟁은 국가의 큰 일이며, 생사존망이 달려있어 깊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전쟁을 잘 하는 방법은 적의 계략을 치고, 다음은 적의 외교관계를 치며, 마지막이 적군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의 방식은 가장 나중이라는 것이다.

용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얻는 것이 없으면 용병하지 않으며, 위태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노여움으로 군대를 일으키거나 싸우지 말고, 이득에 맞으면 움직이고, 이득에 맞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 노여움은 기쁨이 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살아날 수 없고, 망한 나라도 다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아는 지도자는 함부로 전쟁을 들먹이지 않는다. 전쟁을 모르는 책상머리 선비들이 "3일만 참으면~"하면서 호전적인 태도로 오히려 일촉즉발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발언이 담대한 것인 양 으스대고 호도한다. 본디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이다. 북이나 남이나 입으로 목소리 높여 위협하는 자는 아마도 겁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강아지도 겁이 날 때 더 짖어댄다. 진정 겁쟁이가 아니라면, 의연하게 상황을 관리하며 민족의 미래까지 내다볼 것이다.

치킨게임은 '닭'들이 한다. 기억력이 나쁘고 어리석은 '닭대가리'들 말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한쪽의 어린, 그리고 어리석은 도발에 맞장구 치지 않으면 치킨게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을 잘 대처해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보다 위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사전에 잘 조처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관리'의 요체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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