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국회의원 자녀라서 좋겠다
입력: 2015.08.18 11:10 / 수정: 2015.08.18 11:10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딸의 취업 청탁의혹이 불거지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연합은 17일 윤 의원 문제를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요청키로 했다. /더팩트 DB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딸의 취업 청탁의혹이 불거지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연합은 17일 윤 의원 문제를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요청키로 했다. /더팩트 DB

“저녁 먹어.”

어머니가 부른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부모님과 한 밥상에서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는 게 부담스럽고 죄송하다. 어제도 이력서를 10곳에 제출했다. 전화가 올지는 미지수다. 기다릴 수밖에.

난 오늘도 입맛이 없다며 저녁을 먹지 않았다. 답답함에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데 나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졸업 전 취업한 친구들이 부럽다. 난 왜 취업이 안 되는지 자괴감이 든다. 뭐가 부족한 걸까.

토익, 토플, 어학연수, 영어에 일어까지 가능한데도 말이다. 외모에 문제가 있는 건가. 거울을 봤다. 나 자신이 초라하다. 2년 동안 이력서를 넣은 회사만도 수백 곳이다. 면접을 본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불안하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녀석도 나와 같은 취업준비생이다. 날도 덥고 답답하니 맥주나 한잔 하잔다. 나가기로 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는 형편이라 여유도 없다. 이 돈을 쓰는 것도 미안할 따름이다. 맥주를 마실까 하다 그냥 소주를 마셨다. 어느 정도 술잔을 기울이다 친구가 말했다.

“너 기사 봤냐?” “뭐.” “그 윤후덕 의원이 자기 딸 대기업에 취업시켰다가 딱 걸렸다던데. 뭐냐, 진짜. 우리 경쟁 상대는 왜 이렇게 많냐?”

친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정치인 딸이 대기업에 들어간 게 뭐 대수일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노동개혁이 어떻고 청년실업 해소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딸 취업 청탁이나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러라고 뽑아준 자리가 아닌데….

60여 종류가 넘는 대기업 수험서들이 취업 준비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 더팩트 DB
60여 종류가 넘는 대기업 수험서들이 취업 준비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 더팩트 DB

아침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받았다. 이런 젠장이다. 대출광고 전화다. 문밖에서 어머니가 부른다. 어제 술 마셨으니 나와서 해장이라도 하란다. 어머니는 내가 불편해할까 취업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어머니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 그러니까 어깨 펴고.” 밥을 대충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흘렀다. 나도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그런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눈도 낮췄다.

이제 곧 추석이다. 벌써 친척들을 보기가 겁난다. 취업 이야기를 꺼낼 게 분명한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나 때문에 친척들 보기도 민망하겠지. 추석 전에는 꼭 면접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컴퓨터를 켰다. 혹시 모를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 뉴스를 봤다. 어제 친구가 말한 국회의원 기사가 수두룩하다. 윤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단다. 윤 의원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15일 딸 채용 의혹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 딸은 회사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저의 부적절한 처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참 쉽다. 사과하면 그만이구나. 이젠 국회의원 자식들과도 경쟁해야 하는구나. 또 누군가는 이 사람들의 자식들 때문에 떨어져 나처럼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스 페이지를 닫았다.

취업사이트에 들어갔다. 어떤 회사가 공고를 냈는지 확인했다.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자기소개서를 썼다.

“어떤 일이든 시켜만 준다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회사지만 제가 들어간다면 큰 회사로 키우겠습니다. 뽑아만 주십시오.”

난 또 전화를 기다리고 또 이력서를 쓴다. 2015년 8월 현재,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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