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회 입성기] '여민동락'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
  • 오경희 기자
  • 입력: 2015.07.09 12:00 / 수정: 2015.07.31 11:34

여민동락을 꿈꿉니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8일 정치 입문 이래 지금까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좌우명은 여민동락이라고 말했다.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 이 의원은 해마다 지역민들을 만나고자 1일 택시기사로 변신했다./이병석 의원실 제공
'여민동락을 꿈꿉니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8일 "정치 입문 이래 지금까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좌우명은 '여민동락'"이라고 말했다.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 이 의원은 해마다 지역민들을 만나고자 '1일 택시기사'로 변신했다./이병석 의원실 제공

서울 여의도 1번지 국회. 시기와 성향은 다르지만 298명의 의원들이 입성했다. 큰 틀에서 소명은 같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과 고민은 천차만별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어떤 꿈을 가슴에 품었을까. <더팩트>는 이들의 '국회 입성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시인 심순덕 作 '어머니')

이병석(62·경북 포항시북구·4선) 새누리당 의원은 이 시를 되뇔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의 어머니도 그랬다. "평생을 자식 잘 되기만을 소원하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다. 자식을 위해 끝없이 퍼주고 떠나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 '가난'은 그에게 모진 고통이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했다. '집'도 따로 없었다. 어머니 행상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다. 생계가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멸치젓동이를 머리에 이고 장이 서지 않는 산간마을로 젓갈을 팔러 다녔다. 가난은 그의 누이 목숨을 앗아갔다. 누이의 나이 겨우 네 살이었다.

가난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는 중2때 집을 뛰쳐나왔다. "도둑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갔다. 포항에서 12시간, 밤새 기차를 탔다"고 회상했다. 서울 명동 한복판 당구장에서, 수원의 전통 중국집에서 점원을 하며 성공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했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가진 돈은 다 써버리고, 결국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갔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 의원의 어머니(위 왼쪽)는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했다. 고향이 포항인 그는 이곳에서 초중고를 나왔다./이병석 의원실 제공
'어머니, 나의 어머니'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 의원의 어머니(위 왼쪽)는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했다. 고향이 포항인 그는 이곳에서 초중고를 나왔다./이병석 의원실 제공

'호랑이 형님'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줬다. 대학입시에 실패했을 때도 형님은 "석아, 인생은 끝이라 생각될 때 새롭게 시작된다. 너를 믿는다"라고 응원했다. 그런 형님도 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2002년 돌아가시면서 아들도 모르게 생가를 포항시에 기증했다. "어머니와 형님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단언했다.

정치에 뜻을 둔 것도 '가출'하면서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세상을 바꿀 가장 적절한 공간이 정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가출을 하면서였다"라고 고백했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온 그는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YS(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과 정무비서관으로 사실상의 정치를 시작했다. 16대(2000년) 총선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았고, 고향인 포항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해마다 지역민들을 만나고자 '1일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또한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서 의회를 운영했다.

의정활동 기간 독도 등 우리땅·우리역사 지키기 특위 위원장, 국회 독도 영토 수호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독도수호 및 일본의 교과서 왜곡 대책특별위원회 간사 등을 맡으며 독도와 일본 문제에 관심을 보여 왔다. "2008년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을 맡았을 때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관광지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을 물리친 그 명량해협을 보면서,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바른 정치하겠습니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앞으로도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더팩트DB
'올바른 정치하겠습니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앞으로도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더팩트DB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치 입문 이래 지금까지 이 의원이 마음 속에 품은 좌우명이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맹자의 말이자, 세종의 정치 이념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의미로 '강강술래 정치'라고 표현했다. 전통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는 손을 잡고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공간이 넓어진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경계도 없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즐기면 된다.

"지금까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24시간 국민을 위해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 야전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으며, 늘 국민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고 단 한번도 가슴 속에서 '여민동락'을 잊어본 적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으며, 올바른 정치를 이뤄 경제와 민생이 활짝 필 수 있도록 직접 나서겠습니다."

[더팩트 | 오경희 기자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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