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운하 지난달 19일 연극배우 김운하(40·본명 김창규) 씨가 서울 성북구 한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극단 신세계 블로그 |
예술인의 가난은 숙명인가
#. 지난달 19일 연극배우 김운하(40·본명 김창규) 씨가 서울 성북구의 비좁은 고시원에서 숨진 지 닷새 만에 발견됐다. 그는 생전 홀로 지내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알코올성 간 질환, 고혈압, 신부전 등 지병을 앓고 있었다.
사실 그는 연극계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 있는 배우였다. 하지만 그 지명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정도의 경제력을 가져다주진 못했고, '무명배우'인 그에겐 연기 활동의 대가로 한 달 30여만 원이 쥐어졌다.
고 김운하 씨의 죽음으로 무명배우 등 예술인들의 생활고에 대해 이목이 쏠리며 예술인 복지법, 이른바 '최고은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팩트>는 잇따라 무명배우들의 죽음의 이유와 예술인 복지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봤다.
◆ '최고은법 왜 있나?' 들끓는 여론…"부족한 점 통감…오해는 있다"
'신인·무명' 예술인의 고단한 삶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때문에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인 복지법, 즉 '최고은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대학로의 상징이자 아마추어 가수들의 공연장 등으로 쓰이고 있는 마로니에공원. /이성락 기자 |
국회는 지난 2011년 1월 생활고 끝에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와 같은 일의 반복을 막고자 '예술인 보호법(최고은법)'을 마련했다. 최고은법에 의해 2012년 11월 19일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복지재단)은 2013년부터 각종 사업 프로그램으로 예산을 교부받아 1831명의 예술인에게 1인당 300만 원씩 지원했다. 2014년에는 예산을 늘려 1860명에게 1인당 최대 800만 원까지 지원했다.
이 같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생활고를 비관한 예술인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배우 김수진, 2014년 배우 우봉식, 2015년 김운하, 판영진 씨 등이 숨졌다.
그러나 최고은법은 복잡한 '예술인활동증명' 절차와 기준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술인복지사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술인활동증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작품활동을 못 하는 가장 취약한 예술인들은 정작 증명이 안 돼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구조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복지재단 관계자는 "그간 지원금 운영에 있어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통감한다"면서 "'3년에 작품 3편'이란 기준은 예술활동 분야별 전문가들이 공론된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것이다. 즉 예술인들이 직접 그 기준을 적정선으로 판단하고 정했다. 그리고 굳이 '3년에 3편'이상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기준 외 심의란 게 있다. 작품을 못해 생활이 정말 어려운 예술인들은 증명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신청만 하면 심의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복잡하다고 지적받는 절차에 관해서도 "회원 가입하듯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예술활동을 했던 팸플릿 등 공인 자료만 갈무리해서 그 파일만 보내면 된다"며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예술인들이 창작비 지원을 받는 데 있어서 '조건이 까다롭다' '절차를 간소화될 필요성이 있다' 등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태조사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 근거자료가 있어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지를 의논해 피부에 와 닿는 예술인 복지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기로 돈 벌어봤으면"?…"적극적인 개선 움직임 보여야"
"예술로 돈 못 벌어" 지난달 30일 대학로에서 만난 연극배우 이 모(23) 씨는 2년 동안 연극 활동으로 번 돈이 '0원'이라고 말했다. 연극배우 7년 차 송 모 씨는 작품 한 편당 20~30만 원의 돈을 받았으며, 그 수입마저 불규칙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성락 기자 |
현실은 어떨까. 연극인의 삶은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생활고와 함께 간다. 이들은 예술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해 최고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신인 배우들이다.
지난달 30일 대학로 인근 한 대형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 모(23) 씨는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다가 2013년 초부터 본격적인 극단생활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연극 활동으로 번 돈은 '0원'. 오히려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으면 품을수록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 했다고 말한다.
이 씨는 "연극배우 생활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보통 작품 준비 들어가면 오전에는 연습하고 남은 시간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 수밖에 없다"며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될 때쯤엔 수입이 전혀 없다 보니까. 밤에 잠을 줄여 아르바이트해야 한다. 생활이 굉장히 팍팍하다. 어느 순간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10명이면 9명을 그만두는 상황이다. 나 또한 '26살까지'라는 '데드라인'을 만들어놓고 '그때까지만 버텨보자'라고 생각하며 지낸다"고 설명했다.
이 씨처럼 신인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히트'를 치거나 '잭폿'을 터트리지 못한다면 생활고는 여전했다.
연극배우 7년 차 송 모(25) 씨는 "적은 보수는 관례처럼 이어졌다. 그걸 알면서도 이 일을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18살에 국립극장에서 데뷔해 당시 또래에 비해 높은 보수인 20만 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수는 나아지지 않았다"며 "그간 연극배우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도 예술이라는 위로를 받으며 버텼다"면서 "연극 한 편을 하려면, 제작비가 나온다. 근데 무대제작비, 스태프 비용, 시나리오 비용, 연출 비용, 공간 대여 등 그런 거로 제작비가 나간다. 다 쓰고 남은 돈을 연극인들이 나눠 갖는 구조다. 배우들은 죽어 나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움직임 있어야" 도정환 의원실 관계자는 예술인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인 복지법' 개정을 위한 적극적인 예술인 실태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학로의 주변. /이성락 기자 |
이날 만난 두 연극인은 '최고은법'이 생활고와 예술활동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예술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완충장치'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2015년 6월 현재 두 연극인과 같이 예술인활동증명을 한 예술인은 1만 5774명이다. 그러나 최고은법에 의한 창작비 지원은 예술인으로 등록되더라도 심의를 다시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심의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복지재단 관계자는 "지레 '난 신청해도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지원하지 않는 예술인들이 많은 것 같다. 심의 기준 또한 계속 완화하도록 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은법' 안에는 창작비지원뿐만 아니라 10개 정도의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본인이 원하는 지원 형태를 골라 혜택받을 수 있다"며 "설 자리가 없어 무보수로 일하는 젊은 연극인에게는 예술인 파견사업이란 것으로 재능을 활용한 일자리를 소개하고 있고, 불안함을 느끼는 예술인들에 대한 심리상담사업, 임금을 못 받는 등 불공정 피해를 본 예술인들을 위한 법률상담 등 예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많으니 꼭 신청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도 의원 측은 "'찾아가는 행정'이 필요하다"며 "'법을 만들어놨는데, 예술인들이 신청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이 진짜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부분이 힘든 것인지, 직접 찾아가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예술인이 죽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죽고 나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전부터 전문적인 검토와 고민을 해 예방해야 한다"며 "예술인들이 창조활동을 해서 만들어지는 게 문화 콘텐츠다. 그런 것들을 국민이 향유할 수 있다. 예술인 복지법, 즉 최고은법이 예술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문화 콘텐츠를 누리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라는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