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권력의 덕목은 한 걸음 물러나는 것
입력: 2015.06.29 16:39 / 수정: 2015.06.29 16:38
장강후랑추전장(長江後浪推前浪)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 권력의 정점은 항상 밀려나게 돼 있다. 길게 머무르려면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이효균 기자
장강후랑추전장(長江後浪推前浪)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 권력의 정점은 항상 '밀려나게' 돼 있다. 길게 머무르려면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이효균 기자

주역을 굳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일 것이다. 역(易)이란 한자의 뜻이 바뀌고 새로워지는 '만상(萬象)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萬物流轉)'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라틴어로는 플럭서스(Fluxus)인데, 역시 끊임없는 변화와 움직임을 뜻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변화와 움직임을 뜻하는 플럭서스(Fluxus)의 어원이 '밀려오는'이란 점이다. 그러고 보면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 밀어낸다'는 말과 닮지 않았나. '장강후랑추전장(長江後浪推前浪)' 말이다. 옥룡설산(玉龍雪山)에서 발원해 충칭(重慶)을 지나 싼샤(三峽)를 굽이치며 우한(武漢)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난징(南京)을 관통하면서 상하이(上海)를 빠져나가는 도도한 물줄기, 우리에겐 양자강(揚子江)으로 알려진 장강(長江)이다. 그런데 이 장강(長江)의 흐름을 보면 앞 물결이 뒤 물결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뒤 물결에 밀려난다는 것이다.

역사를 미분(微分)해서 보면 현재의 중심 기울기는 항상 '밀려나는' 것이다. 역사를 이끄는 것 같지만, 결국 스스로도 현재를 과거로 밀어내면서 존재한다. 주역에서 첫 번째 가르침이 항룡유회(亢龍有悔)다. 꼭대기까지 오른 용(龍)은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다는 경구(警句)이다. 해는 중천에 뜨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日中則昃 月盈則食)는 불변의 진리 말이다.

이런 성찰이 없는 권력자는 유회(有悔)의 길을 걷는다. 해는 남중(南中)한 채 머물고, 달도 만월(滿月)로 지속될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의 성찰이라도 있는 권력자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것이 숙명이라도, 그 정점을 조금이라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가.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세 가지 보배를 얘기한다. "나는 세 보배가 있어 잘 간직하고 있는데, 첫째는 자애로움, 둘째는 검소함, 셋째는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는 것(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日慈, 二日儉, 三日不敢爲天下先)이다"고 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걸음 물러난다'는 것이다. 역(易)에서도 "성인이 세상에 처하는 것도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이다"고 했다.

더군다나 제왕도 아닌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랴. 아무리 길어도 5년이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흔히 '제왕적'이라고 한다. 필자는 중의(重意)적으로 느끼는데, 권력행사가 거의 제왕 수준이라는 우려와 자조(自嘲)가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선양(禪讓)과 방벌(放伐)'의 대상이란 의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투표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데, 대부분은 유권자가 '선택(選擇)'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물려주고 이어받거나, 아니면 몰아내고 단죄하는 형식이다. 전자가 요순(堯舜)의 선양이라면, 후자는 걸주(桀紂)의 방벌이다. 선양도 방벌도 민(民), 즉 백성이 주인이자 주체가 아니라 '그들'이 주인이자 주체라는 인식의 소산이다. 청와대에서, 여의도에서, 세종시에서 국정을 농단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바로 '그들' 말이다.

충신과 간신의 갈림길 국회의 정당대표와 원내대표마저도 마치 충신(忠臣)과 간신(奸臣)의 갈림길에 서있는 듯하다. 여기서 충신이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공직자이고, 간신이란 대통령 개인과 자신을 생각하는 공직자일 것이다./더팩트 DB
충신과 간신의 갈림길 국회의 정당대표와 원내대표마저도 마치 충신(忠臣)과 간신(奸臣)의 갈림길에 서있는 듯하다. 여기서 충신이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공직자이고, 간신이란 대통령 '개인'과 자신을 생각하는 공직자일 것이다./더팩트 DB

'제왕(帝王)적 대통령제'에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민(臣民)주의'가 불가피한 현상이다. 제왕적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총리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모두가 신하(臣下)쯤이다. '어린 백성'이야 어루만지고 다스리는 대상일 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목에 힘을 주지만, 절대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고는 하지 않는다.

'민의(民意)의 전당'이라는 국회도 자유롭지 않다. 삼권분립의 요체는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정립(鼎立)이다. 대통령은 물론 국가를 대표하지만, 삼권분립에서는 행정부 수반일 뿐이다. 입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고, 대통령령(시행령)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입법을 국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위임 입법'이 모법(母法)을 흔드는 실정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국회의 정당대표와 원내대표마저도 마치 충신(忠臣)과 간신(奸臣)의 갈림길에 서있는 듯하다. 여기서 충신이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공직자이고, 간신이란 대통령 '개인'과 자신을 생각하는 공직자일 것이다. 슬프다. 자고(自古)로 충신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자신과 자손을 해(害)하거나 상(傷)하기 일쑤였다. 반면에 간신들은 역사에 악명을 남겼지만 당대에는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니 되옵니다"는 충언은 사약(死藥)으로 돌아오고, "지당한 말씀이옵니다"는 아첨은 사전(賜田)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우리는 보지 않았나. 그래도 조선왕조가 6백년이 지속된 것은 목숨 걸고 "아니 되옵니다"했던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세난(說難)'에서 설득의 어려움을 설파한다. 남을, 특히 군주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것은 지식의 부족도, 말솜씨 부족도 아니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서 거기에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예를 높이려는 사람에게 이익을 이야기하면 낮춰보고 멀리하며, 이익을 늘리려는 사람에게 명예를 이야기하면 세상물정이 어둡다고 하며 물리친다.

그런데 속으로 명예를 높이려는 이에게 명예를 이야기하면 겉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멀리하고, 속으로 이익을 늘리려는 이에게 이익을 이야기하면 그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를 버린다. 명예에 명예를 이야기하고, 이익에 이익을 이야기했는데 왜 그럴까. 바로 속마음을 들킨 것이다.

문제는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대상(여기서는 군주)의 마음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기 때문에 제대로 살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옳다고 주장했던 사안이라도 형편이 바뀌면 그르다고 하기 때문이다.

꽉 막힌 거리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손자병법까지 온갖 병법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다. 역린을 거스른 자는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얼핏 보면 여당 길들이기나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이란 말도 모르는가./배정한 기자
'꽉 막힌' 거리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손자병법까지 온갖 병법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다. 역린을 거스른 자는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얼핏 보면 여당 길들이기나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이란 말도 모르는가./배정한 기자

한비자는 위(衛)나라 영공(靈公)과 미자하(彌子瑕)를 예로 든다. 영공은 잘 생긴데다 말도 잘하는 미자하를 매우 총애했다. 한번은 모친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자하가 왕만 탈 수 있는 수레를 타고 달려갔다. 신하들은 법에 따라 발목을 자르라고 했지만, 영공은 오히려 "참으로 효자로다. 형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한번은 과수원에 간 미자하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먹다가 꺼내 영공에게 "엄청나게 맛있다"며 바친다. 신하들은 무엄하다며 형벌을 내리라고 한다. 그래도 영공은 "얼마나 충성스러운가. 제 입맛을 참고 나를 생각하니!"하며 두둔한다. 하지만 늙고 쇠약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총애를 잃자 작은 잘못에도 영공은 노한다. "저 자는 고약하다. 예전에 내 수레를 훔쳐 타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권했다"면서 끌어내 목을 베게 했다. 바로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미자하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군주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영공(靈公)이야말로 인(仁)이 없는, 불인(不仁)한 경우일 것이다. 맹자는 인(仁)을 활 쏘기에 비유했다. "활 쏘는 사람은 자신을 올바로 한 뒤에 화살을 재워 당기고, 쏘고 나서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을(反求諸己) 뿐"이라고 했다. 바로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출전이다. 그렇다면 쏜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은 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반구제타(反求諸他)'가 아니겠는가.

여하튼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손자병법까지 온갖 병법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다. 역시 불은 물이 아니라 불로 끄는 법인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불은 국회법개정안 거부권 불로 끈다. 역린을 거스른 자는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얼핏 보면 여당 길들이기나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이란 말도 모르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 권력의 정점은 항상 '밀려나게' 돼 있다. 길게 머무르려면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공직자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충신이냐, 대통령과 자신을 생각하는 간신이냐.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그래도 누항(陋巷)에 머물면서 자신과 자손을 해할 수도 있는 충성된 공직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한편으론 염치없고 미안한 일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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