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한일관계 해법 “어려운 일 먼저, 얻는 것은 나중”
입력: 2015.06.22 14:01 / 수정: 2015.06.22 14:01

한일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개최되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청와대, 서울신문 제공
한일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개최되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청와대, 서울신문 제공

외교의 바탕은 상대에 대한 불신이다. 불신은 갈등으로 이어지며, 갈등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 쉽게 터진다. 비록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일지라도 전쟁의 뇌관이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외교(外交)를 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평화이다.

역사상 모든 갈등은 ‘먹는 것의 불균형’에서 빚어졌다. 이를 꿰뚫은 예수는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간구했다. 하늘 아닌 땅에서의 첫 번째로 간절히 바라는 바였다. 예수의 가장 유명한 기적이 바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이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 명을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광주리 12개에 꽉 찼다는 얘기 말이다.

흔히 기적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대부분 ‘상식의 새로운 지평’이 되는 전환적 결단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다. 아무도 세로로 세우지 못한 달걀을 콜럼버스는 꼭지부분을 탁 치면서 납작하게 만들어 세웠던 것이다. 그것이 무슨 기적이냐고 하지만, 상식이란 단단한 껍질을 깨뜨린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기적의 씨앗이다.

과거사 내려놓고 청와대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양국이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미래지향적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과거사 내려놓고" 청와대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양국이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미래지향적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다시 돌아가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자.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식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헐벗고 굶주리는 빈자들이 손을 내밀지만, 부자는 먹고 남아도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가난함은 숙명이거나 게으름에 대한 대가로 치부됐다. 그런데 예수는 ‘나눠 먹자’고 부르짖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전술했지만 역사상 모든 갈등(개인간이든 국가간이든)은 먹거리 때문에 빚어졌던 것이다. 절도든, 강도든, 싸움이든, 전쟁이든 결국 먹는 문제가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모든 갈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바로 ‘먹거리의 공유’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가 가져온 떡과 물고기를 내놓고 ‘공유’하자 너도나도 각자 싸온 도시락을 풀어놓은 것이다. 그러자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경제민주화인 셈인데, 함께 나눠먹는 것이야말로 평화(平和)의 원관념이다.

평화(平和)의 한자를 보자. 평(平)은 울퉁불퉁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아니하고 고르다는 뜻이다.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가 결합됐다. 밥을 먹는 입이다. 결국 ‘평화(平和)’는 ‘고르게 밥을 먹는다’는 뜻이 아닌가. 곧 ‘함께 나눠 먹기’가 바로 평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의 저울추는 바로 ‘혼자 먹느냐’와 ‘함께 먹느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평화의 저해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원수를 갚는 일, 복수(復讐)다. 빼앗기거나 손상된 유형무형의 사안을 딱 그만큼, 더러는 이자를 쳐서 되갚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이를 똑같이 만든다는 의미로 ‘겟 이븐(get even)’이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 것이다.

모두가 이미 잘 알다시피 예수는 이러한 복수야말로 평화의 걸림돌이자 스스로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다. 선대의 원한을 내가 갚는다지만, 상대에게도 후손이 있고, 그에게는 역시 또 하나의 원한을 쌓은 것이다. 이러한 복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복수를 포기해야 한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22일)은 한일(韓日) 수교 50주년이다. 1965년 한일 수교에 나선 주체의 목적과 방법, 과정과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역사는 지울 수 없다. 현세와 후세로서는 기왕의 역사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더불어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 기왕의 역사도 조금씩 다른 의미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도 자라가는 것이다. 상처는 비록 응어리는 남겠지만 미구에 치유될 것이다.

국가간에도 공자가 말한 ‘인(仁)’이 필요할 것이다. 논어 옹야편에 ‘인자선난이후획(仁者先難而後獲)이란 말이 있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면 인이라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따금 후후혈혈(煦煦孑孑)해 보이는 상대이다. 한유(韓愈)가 원도(原道)에서 한 말인데 “작은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인이라 하고, 자질구레한 행동을 의라 한다(煦煦爲仁, 孑孑爲義)’는 의미이다.

천리장정도 한 걸음부터 두 정상의 교차 참석으로 양국 관계 개선의 분위기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임영무 기자
'천리장정도 한 걸음부터' 두 정상의 교차 참석으로 양국 관계 개선의 분위기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임영무 기자

오늘 한일 정상이 각국 대사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한다. 간접대화 형식이지만, 천리장정도 첫걸음을 떼어야 가능한 것이다. 다만 일본도 우리도 보수정권이어서 그야말로 각자 수구(守舊)에 머물지 않을까 걱정도 있지만. 진보가 아니면 퇴보라는 역사적 경구가 목에 걸리지만, 그래도 변화하지 않는 것보다 변화가 좋을 것이기에 기대를 품어 본다.

한일 문제부터 풀려야 글로벌시대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하지 않겠나. 마침 우리는 국무총리도 새로 임명됐다. 대학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몸을 닦은 후에야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있고, 나라도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가 고르게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 국무총리의 ‘수신(修身)’에 의문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은 ‘수신제가…’에 앞서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이 선결조건이다.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야 앎이 지극해지고, 뜻이 성실해지며, 마음이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가 사물의 이치, 멀리 갈 것도 없이 공직자로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아느냐는 의구심이다.

하지만 나의 모습은 가정에 투영되고, 가정은 사회에, 사회는 세상에 투영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작금의 사회를 바라보기가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의 씨앗은 나로부터 자라났을 것이다. 그 시대의 지도자는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것이 아니라, 프랑스 민중이 대혁명의 강물 자체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 보이지 않는 거센 혁명의 물줄기를 가늠하도록 하는 강물 위 떠내려가는 낙엽인 것이다. 후세는 이 낙엽을 보면서 혁명의 방향과 거센 소용돌이를 가늠했을 뿐이다.

스스로의 불편함은 세월이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신(神)이 역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겠나. 나를, 너와 나를, 우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절망보다 고통스럽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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