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지도자 품격, 처신을 보면 안다
입력: 2015.05.11 15:31 / 수정: 2015.05.11 15:31

지도자의 품격이란? 공자는 “불우하고 고난지경에 처했을 때 꿋꿋하면서도 부드러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참된 품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불행한 환경에 처했을 때일수록 처신을 잘 해야 비로소 군자의 품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팩트 DB
지도자의 품격이란? 공자는 “불우하고 고난지경에 처했을 때 꿋꿋하면서도 부드러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참된 품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불행한 환경에 처했을 때일수록 처신을 잘 해야 비로소 군자의 품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팩트 DB

'역경'은 인품을 담금질하는데 필요한 풀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매우 송구(悚懼)하거나 심히 부끄러울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거북할 때만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일까. 평소에는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안다는 뜻인가. ‘몸 둘 바’를 달리 말하면 ‘처신(處身)’이겠다. 말이 그렇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당해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처신을 보면 품격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역경에 처했을 때 진정한 품격이 드러난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을 때는 자못 품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 몰아칠 때라야, 세한연후(歲寒然後)라야 송백후조(松柏後彫)임을 깨닫는 것이다. 역경이야말로 인품을 담금질하는데 필요한 풀무요,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쓰디쓴 양약(良藥)이 아니겠나. 공자도 “불우하고 고난지경에 처했을 때 꿋꿋하면서도 부드러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참된 품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불행한 환경에 처했을 때일수록 처신을 잘 해야 비로소 군자의 품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극의 ‘사람을 가늠하는 법’도 비슷하다. 불우한 시절에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지 살피면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고, 부유한 때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살피면 그의 품행을 가늠할 수 있으며,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지 살피면 공사(公私)의 분별을 알 수 있고, 가난한 때에 어떤 일을 하는지 살피면 그의 그릇과 뜻(志)을 헤아릴 수 있으며, 곤경에 빠졌을 때 어떻게 처세하고 처신하는지 살피면 그의 정직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조선 정조 시대다.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어지럽다. 선비들이 자리를 탐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조는 탄식한다.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벼슬길에 어렵게 나가고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인데, 정조는 그것이 조정(朝廷)을 높이고 세교(世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헛된 명리(名利)를 붙들고 매달리는 풍조에 예의염치(禮義廉恥)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도 같은 말이다. 지식인에게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을 아는 자연스런 처신(處身)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정계은퇴 손학규, 다시 복귀? 손학규 전 대표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계은퇴 선언을 했지만, 그가 다산 정약용이 유배됐던 강진에 머물 때도, 귀경해 구기동에 머물러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 더팩트DB
정계은퇴 손학규, 다시 복귀? 손학규 전 대표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계은퇴 선언을 했지만, 그가 다산 정약용이 유배됐던 강진에 머물 때도, 귀경해 구기동에 머물러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 더팩트DB

이미 출사(出仕)한 경우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 요체다. 스스로를 닦음으로 사람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맹자는 이루(離婁)에서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으면 청렴이 손상된다(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줘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면 은혜가 손상된다(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고 했다.

‘회남자(淮南子)’의 ‘맹호행(猛虎行)’이란 시 첫 행이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열불식악목음(熱不息惡木陰)’아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둑 샘물’은 마시지 않고, 더워도 ‘나쁜 나무’ 그늘에서 쉬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의 일화에서 따온 것인데, 그만큼 스스로를 살피고 삼가라는 얘기다.

일국의 지도자부터 정당의 대표나 기관장(長)도 마찬가지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오른편에 기울어진 그릇을 두었다. 이 그릇은 비어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 이를 보며 스스로 자계(自戒)한 것이다. 바로 좌우명(座右銘)의 유래다. 공자는 이를 보고 “가득 채우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에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으로,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용맹하면서도 검약으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쉬워 보이지만 범인(凡人)에겐 어려운 일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진퇴유곡(進退維谷)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선거에서 졌는데도 자숙하는 기간 없이 곧바로 국회의원에 나서고, 당 대표인데도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4대0으로 전패했는데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탄(指彈)의 공세가 거세다. 급기야 최고위원들끼리 품격이 의심되는 언행으로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데, 회의를 주재하는 당 대표로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거 때마다 책임을 ‘지나치게(?)’ 졌던 손학규 전 대표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계은퇴 선언을 했지만, 그가 다산 정약용이 유배됐던 강진에 머물 때도, 귀경해 구기동에 머물러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간절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기약 없는 청년실업, 대책 없는 노령시대에 저녁은 고사하고 희망의 아침마저 실종 상태다.

뒤집힌 모래시계 홍준표 경남지사도 창 대신 방패를 든 채 궁벽한 처지에 몰렸다. / 이새롬 기자
뒤집힌 모래시계 홍준표 경남지사도 창 대신 방패를 든 채 궁벽한 처지에 몰렸다. / 이새롬 기자

정치뿐이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처신을 두고도 설왕설래다. 본인이 선택한 국민 참여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일치 유죄 평결을 받자 “비전문가의 미시적 판단”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본인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겠지만, 교육수장이 법 위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은 정말 비교육적이다.

물론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지만, 당선 무효형이 나왔으면 새로운 제도나 구상을 고집하기보다 내실(內實)을 기하는 것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지는 교육감으로서 학부모에게 안정감과 미더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선거법 재판은 항소심과 삼고심이 각각 3개월씩으로 기한을 정하고 있으니, 길어야 6개월 아니겠는가. 백년에 비하면 반년이야 눈 깜박할 시간이 아닌가. 역시 궁벽한 상황에 처하면 그 사람의 크기와 품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채근담에 “기기는 가득 차면 엎어지고, 박만(撲滿)은 비어야 온전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無)에 거할지언정 유(有)에 거하지 않고, 모자란 곳에 머물지언정 모두 갖춘 곳에 머물지 않는 법이다”며 추한 욕심을 경계하고 있다. 박만(撲滿)은 흙으로 만든 저금통인데, 돈이 가득 차면 꺼내기 위해 깨뜨리게 되므로 비어있어야 온전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뒤집힌 모래시계처럼 홍준표 경남지사도 창 대신 방패를 든 채 궁벽한 처지에 몰려 있고, 이완종 전 국무총리도 정치생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형국이다. 우리 속담에 ‘군자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도자로서 부정과 불의를 멀리하는 마음가짐과 오해·중상·모략·유혹 등을 받을 우려가 있는 곳을 가까이하지 않는 몸가짐으로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구구하게 도생(圖生)이라도 노리는 것 같다. 바둑은 이를 일컬어 생불여사(生不如社)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어 천 길 낭떠러지를 향해 한 발 내디딜 때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설령 그대로 스러진다 해도 ‘세상을 덮는 대장부로서의 기개(氣槪)’는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두 갑자(甲子)를 격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합종연횡하며 허리가 잘린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요즈음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방향감을 상실한 채 품격도 잃고 처신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이 위정자(爲政者)연 하고 있다. 도대체 품격이 있는 리더, 처신이 깔끔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한반도의 내일이 걱정이다. 매천 황현 선생께 죄송하지만, 정말이지 어지러운 세상에 지식인 노릇하기도 힘든 지경(難作人間識字人)이다.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