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와 독거노인 증가는 국가 문제" 유승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가족의 문제는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특히 노인과 청년 문제는 더 이상 가족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했다. / 국회=문병희 기자 |
사회 문제 가정에 전가할 수준 아냐…여성 정치참여 확대 필요
혼자 사는 게 편해진 사회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랄 없듯 함께 모여 살며 웃고 떠들고 싸우던 가족은 제 살길 찾기에 바빠진 지 오래다. 2015년 5월, 현재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혼자 살기도 빠듯해졌다. 부모의 빈곤을 채우기엔 지갑이 너무 가볍다. 차라리 부모에게 짐이 되느니 혼자를 택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꿈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다.
노인, 중년, 청년, 청소년, 남성, 여성으로 나뉘었지만, 사회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위기다. 가족은 사회의 첫 공동체다. 하지만 지금 가족은 빈곤의 탈출구를 찾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정의 달 5월, 그리고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오전 국회에서 <더팩트>는 유승희(새정치민주연합, 재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1인 가구 증가, 가족 해체와 여성의 정치참여 등을 들어봤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 증가, 젊은 세대 이기주의 탓 아냐
"죄송합니다" 유 위원장은 노인문제와 함께 살고 있는 팔순이 넘은 아버지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다. / 국회=문병희 기자 |
이날 오전 만난 유 위원장은 회의를 막 마치고 돌아왔다. 애초 약속 시각을 조금 넘겨서 도착한 유 위원장은 “회의가 좀 길어졌다. 늦어서 죄송하다”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국회의원이면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의 푸근함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유 위원장은 80세가 넘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얹혀살고 있다. 유 위원장에게 아버지와의 생활을 묻자 이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라는 단어의 먹먹함이다.
유 위원장은 “최근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해드렸다. 보청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얼마 전 제 딸에게 아버지가 ‘외롭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과 ‘대화’가 너무 부족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효도법’을 입법할 정도로 노인들의 복지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현재 국내 노인 문제는 노인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 유 위원장의 생각이다. 1인 가구의 증가 역시 마찬가지 선상에 놓고 보아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유 위원장은 “지금의 노인세대에겐 역사가 있고 상처와 슬픔이 있다. 치유해야 한다. 비단 돈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마음의 문제다. 외롭지 않고 인간적인 최소한의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야 한다”면서 “노인이 되면 살아갈 힘이 없다. 지탱할 힘은 가족의 배려 등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기댈 가족이 없는 데는 1인 가구의 증가와 낮은 임금과 빈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기인한다. 1인 가구는 지난 1990년대 9%에 불과했던 것이 2000년 15.5%, 2010년 23.9%로 증가했고, 오는 2020년 29.6%, 2030년 32.7%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비율도 2000년 49.8%에서 2015년 33.6%로 급격하게 줄었다.
"아버지 청력이 좋지 않아요" 유 위원장이 아버지의 청력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점차 개인주의로 고립되는 이유는 결국 사는 게 힘들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가족과 사회공동체 문화는 소멸할 것” |
유 위원장은 “1인 가구 증가는 고령화, 여성화, 양극화 등의 세태다. 1인 가구 증가는 늦은 결혼, 이혼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1인 가구 중 노인 가구 비중이 37.3%로 1인 가구 10곳 중 4곳이 독거노인”이라고 설명했다.
독거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누가 뭐래도 빈곤이다. 단순히 젊은 세대들의 ‘나 몰라라’가 독거노인의 증가를 불러왔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유 위원장의 생각이다.
유 위원장은 “독거노인 증가는 젊은 세대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본다. 너무나 많은 국민이 빈곤 선상에 있다. 불안감이 크다. 미래도 현재도 불안한 상태로 혼자도 어려운데 어른들을 돌볼 수 없다. 더는 가족에게 부담 지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노인과 청년 문제에서 이젠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가족이 이미 해체된 사회에서 여전히 가족에게 노인과 청년 문제를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책임 전가라고 유 위원장은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국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노인문제) 책임을 떠넘긴다는 인식이 들지 않도록 청년 실업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소 생활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점차 개인주의로 고립되는 이유는 결국 사는 게 힘들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가족과 사회공동체 문화는 소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급격하게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소득 양국화가 너무 크다. 가난과 빈곤밖에 없는 삶에 국민은 이제 극에 달한 것 같다. 가진 자가 재벌기업이 더 내놓아야 한다.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배당금 잔치를 할 때가 아니다”며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촉구했다.
◆저출산 해법은 여성의 경제활동 활성화
저출산 이유? 여성 경제활동 단절 유 위원장은 “여성들에게 아이만 낳으라고 하는 것은 문제다. 경력단절 여성이 질 좋은 일자리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국회=문병희 기자 |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저출산’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저출산 상위 국가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120년 후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미래 보고서에 따른 한국은 저출산으로 초미니 국가로 전락하다 2700년에 소멸한다는 예측보고서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지난 2006년 “한국이 저출산으로 인구가 소멸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로 국내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해법은 없는 걸까. 유 위원장은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 유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유 위원장은 “여성들에게 아이만 낳으라고 하는 것은 문제다. 경력단절 여성이 질 좋은 일자리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남성들도 함께할 수 있는 아빠 휴가, 남성육아지원에 고용주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에서는 보육시설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일부 문제가 되는 보육시설 때문에 전체가 매도되는 경향이 크다. 저출산 문제의 근본은 여성의 경제활동 단절에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을 둘러싼 아니 그보다 여성가족부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단다는 이유 탓이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마녀사냥'이라고 일축했다.
유 위원장은 "여성가족부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녀사냥' 내지 비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삶에 여유가 없으니 희생양을 찾으려는 가운데 나왔다고 본다. 여성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잘 나가는 일부 여성들에 대한 열등감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현실은 여성 근로자 70%가 비정규직이다. 2014년 현재 여성 대표성 관련 통계를 보면 정부위원회(위촉) 여성 비율 34%,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여성 4.5%, 공공기관 여성임원 9.3%, 여성교수는 21.5%에 불과할 정도로 남성보다 차별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고위원 그리고 선거…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필요
여성들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와야 유 위원장은 "힐러리 클린턴은 ‘유리 천장을 끊임없이 깨려고 두드려야 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하며 많은 여성이 정치권에 들어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국회=문병희 기자 |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못지않게 입법기관인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또 어떤 기관보다 정치권은 여성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능이기도 하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분명 현재 존재하는 많은 문제점의 현실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확대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지난 2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유 위원장은 여성의 정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위원장은 “최고위원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당이 잘되기 위해서는 당이 ‘정치적 부모’가 돼야 한다. 국민의 마음에 꼭 드는 ‘맘(마음·엄마)’ 정당을 만들고 싶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신뢰와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는 편안한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보궐 선거의 패배로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 위원장은 분열이 아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또 부모의 마음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정치적 부모’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정치적 부모’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정치 참여도 필요한 부분이다. 유 위원장은 본인이 ‘여성계파’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여성들의 정치 참여 확대에 적극적이다.
유 위원장은 “성 평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착시현상도 크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과 정치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여성 30% 지역구 공천 의무화 및 당직, 공직 여성 참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에 당헌으로 여성 30% 공천을 관철했다. 하지만 비율을 채우기 위한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받는 것은 반대”라고 못 박았다.
그는 “바닥으로부터 검증된 지도력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20년 동안 했기 때문에 충분히 검증된 여성들이 많다. 인재영입이 줄 세우기식이 돼서는 안 된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능력 있는 여성을 발굴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대선을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은 ‘유리 천장을 끊임없이 깨려고 두드려야 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고 강조했다.
[더팩트 ㅣ국회=이철영 기자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