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정치인과 교육감, 동몽선습 격몽요결부터 배워라”
입력: 2015.04.27 11:34 / 수정: 2015.04.27 11:34
성공한 인생을 위한 공부? 욕심은 끝이 없는데, 이 끝없는 욕구를 채워줄 항아리는 본디 밑살이 빠져 있는 것이다. / 더팩트 DB
성공한 인생을 위한 공부? 욕심은 끝이 없는데, 이 끝없는 욕구를 채워줄 항아리는 본디 밑살이 빠져 있는 것이다. / 더팩트 DB

동몽선습(童蒙先習), 격몽요결(擊蒙要訣)이 있다. 동몽선습은 조선의 유학자 박세무(朴世茂)가, 격몽요결은 이이(李珥)가 지었다. 천자문을 뗀 아동이 서당에서 배우는 책들이다. 그런데 몽(蒙)이란 한자가 묘하다. 사리에 어둡다, 어리석다, 어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거나 계몽(啓蒙)을 생각하면 뜻이 바로 떠오른다. 몽골(Mongol)인들이 한자 이름인 몽고(蒙古)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런데 옥편을 찾아보면 이 몽(蒙)에 ‘괘(卦)이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렇다. 주역의 건(乾), 곤(坤), 둔(屯)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몽(蒙)이다. 동몽선습의 ‘동몽(童蒙)’과 격몽요결의 ‘격몽(擊蒙)’도 주역에 나오는 분류이다. 그저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이나, 어리석음을 깨부순다는 평이한 뜻이 아니다.

주역 학자 서대원 씨에 따르면 몽(蒙)은 어린아이의 교육을 뜻한다. ‘동몽’은 주역에서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교육형태이자, 순수한 도(道)의 경지이며, 최고의 인격을 상징한다. 누구나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지만,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동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한다(匪我求童蒙 童蒙求我)’고 했다. 하늘이 점지한다고 할까.

이 경지에 오르려면 보통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인데, 태어날 때부터의 순수함을 유지하며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수함을 잃으면 어머니이자 스승인 대자연(大自然)이 더는 가르쳐주지 않는다(瀆則不告)는 것이다.

존 로크(John Locke)가 인간이 처음 태어나면 백지상태(tabula rasa)라고 말한 것보다는 예수(Jesus)가 “어린아이처럼 되길 힘써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동몽(童蒙) 다음은 발몽(發蒙)이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으로, 출세와 입신양명(立身揚名)를 위한 일체의 공부를 뜻한다. 이러한 공부는 오늘날 법조인이나 행정관료, 나아가 권력자가 되는 길이다. 시쳇말로 성공한 인생을 위한 공부이다. 그런데 주역은 그래 봐야 그저 개인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用說桎梏)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런 공부는 끝까지 길(吉)하지 못하고, 한창 좋은 시절이 지나가면 어렵고 곤란해진다(吝)고했다.

작금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며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토플이나 토익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런 공부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고뇌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욕심은 끝이 없는데, 이 끝없는 욕구를 채워줄 항아리는 본디 밑살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신분상승과 출세로 한때 잘나갔지만,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으로 몸부림치다 결국 어렵고 곤란해지는(以往 吝) 것이 아니겠나. / 더팩트 DB
‘일인지하 만인지상’ 신분상승과 출세로 한때 잘나갔지만,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으로 몸부림치다 결국 어렵고 곤란해지는(以往 吝) 것이 아니겠나. / 더팩트 DB

발몽(發蒙) 다음은 포몽(包蒙)이다. 말 그대로 포용과 화합의 공부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출세에 어두워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보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우선하는 공부가 그나마 궁극의 도(道)에 가까운 것이다.

포몽(包蒙) 다음은 곤몽(困蒙)이다. 어렵고 적성에도 맞지 않은데,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공부이다. 예술가가 꿈인데, 의사나 판검사를 향해 내몰리는 교육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공부는 당연히 고난(吝)의 길이다. 그런데도 지금 대치동 학원가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곤몽(困蒙)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목적도, 당장의 실용성도 담보하지 않지만, 순수한 호기심이나 샘솟는 앎에 대한 열정으로 매진하는 동몽(童蒙)이 길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도(道)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경지의 공부다. 가장 순수하고 온전한 학문이야말로 궁극의 깨달음이 아니겠나. 등선(登仙)하든, 열반(涅槃)이든, 천국이든 말이다.

곤몽(困蒙) 다음은 격몽(擊蒙)이다. 격몽요결의 바로 그 격몽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현대의 의무교육쯤이다. 목표는 어린아이들이 도적이 되지 않도록 도적이 되려는 마음을 제어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최소한의 기초교육인 셈이다.

이렇게 어린이의 교육에도 동몽-발몽-포몽-곤몽-격몽의 다섯 부류가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사회 지도층은 어떤 공부를 했을까. 아마도 입신양명를 위한 발몽(發蒙)에 매진하지 않았을까. 여하튼 출세하여 사회적으로 명성도 얻었으니 곤몽(困蒙)은 아닐 터이다. 이렇게 발몽을 통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주역은 그 끝이 곤란하다(吝)고 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경제기획원에서 시작해 경찰로, 도지사로, 국회의원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오른 이완구 국무총리야말로 주역이 말한 발몽의 전형이 아닐까. 고등고시(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홍준표 경남지사도 ‘발몽 이용형인(發蒙 利用刑人)’에 꼭 들어맞는다. 형인(刑人)은 바로 형벌을 집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니 오늘날의 법조인, 그 중에서도 판검사인데, 둘 모두 검사출신이다.

이완구 총리도 경찰을 거쳤으니 현재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3인의 고시공부는 결국 형인(刑人)의 길을 간 것이다. 신분상승과 출세로 한때 잘나갔지만,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 몸부림치다 결국 어렵고 곤란해지는(以往 吝) 것이 아니겠나.

교육은 천년만년대계 교육자들은 과연 옛날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자마자 익혔던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나 있을까. 사진은 당선무효 선고를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교육은 '천년만년대계' 교육자들은 과연 옛날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자마자 익혔던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나 있을까. 사진은 당선무효 선고를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어떤가. 그는 어쩌면 동몽(童蒙)을 최고의 가치로, 격몽(擊蒙)부터 가르치는 수도 교육의 책임자이다. 동몽선습은 효행을 기초로 오륜(五倫)을 가르치며,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배양한다.

격몽요결은 입지(立志)와 혁구습(革舊習)부터 접인(接人)과 처세(處世)까지 10장으로 돼 있다. 특히 9장의 접인(接人)에서는 부드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접대할 것과 학문을 믿고 스스로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마지막 처세(處世)에서는 벼슬을 위해 학문하지 말 것과 도(道)를 행할 수 없으면 벼슬에서 물러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과연 옛날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자마자 익혔던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나 있을까.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지만, 어쩌면 천년만년대계(千年萬年大計)일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에게는 평생대계(平生大計)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참교육’일까. 주역이 동몽(童蒙)부터 격몽(擊蒙)까지 제시한 것은 참교육의 목적이 진정한 인간의 도를 깨달아 참다운 행복을 누리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자연의 도리를 체득하고, 중용의 덕을 쌓으라는 방법론이다.

요즘은 2%의 정치다. 2%가 부족하다는 것은 51%와 49%의 차이를 뜻한다. 즉, 2%차이로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바람직한가. 49%를 배려하지 않고, 무화(無化)하는 것이 자연의 도(道)와 중용의 덕(德)은 아닐 것이다.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그의 교육철학을 담은 ‘에밀’에서 사보아 신부의 입을 빌려 말한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양심은 영혼의 소리, 정념은 육체의 소리다. 양심이야말로 인간의 진실된 안내자이다. 이성은 인간을 자주 속이지만, 양심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양심을 외면하고 지내다 보면 처음 양심을 버리기 어려웠던 것처럼, 다시 불러들이기도 어렵다.” 왕궁의 주인이나 초가에 살거나 모두가 인간이며(페스탈로찌), 문제는 양심이다.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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