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 '무상급식'은 종북? 민(民)이 안 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옳다고 고집하며 오불관언(吾不關焉)하지 않는가. /더팩트 DB |
꽃등에는 얼핏 보면 꿀벌이나 말벌 같지만 사실 파리에 가깝다. 분류학적으로 꽃등에는 파리목(目), 꿀벌과 말벌은 벌목(目)이다. 천적인 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벌을 의태(擬態)한 것이다. 의태는 대벌레·메뚜기·해마처럼 포식자의 눈을 피해 주위 사물과 비슷하게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마치 독침을 쏘거나 악취를 풍겨 포식자가 싫어하는 곤충을 닮는 행태이다. 꽃등에의 경우는 후자인데, 경계의태(警戒擬態)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런 꽃등에가 항상 새의 눈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꿀벌과 똑같은 생김새로 의태를 했으면 될 텐데, '짝퉁'의 티가 나는 것이다. 수천만 년 진화의 세월 속에서 왜 이렇게 짝퉁 '티'를 없애지 못했을까. 과학자들은 이런 '불완전 의태'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 정도 짝퉁이면 새의 눈으로는 진짜와 구별하지 못한다고 보고 더 이상의 노력을 중단한 것일까, 수많은 꿀벌과 말벌을 닮으려 하다 보니 잡탕 벌처럼 된 것일까, 아니면 다량 번식을 통한 '충해(蟲海)전술'로 종(種)을 보존한 것일까. 2012년에 네이처지(誌)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위에 열거한 세 가지 가설보다 '느슨한 선택'에 방점을 찍는다.
연구 관찰한 결과 꽃등에의 덩치가 클수록 모방의 수준과 정교함이 뛰어났고, 작을수록 한눈에 짝퉁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엉성했다는 것이다. 왜냐. 새의 입장에선 큰 먹이를 공격하는 것이 에너지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꽃등에는 공격을 피하려 좀더 정교하게 꿀벌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반면 작은 꽃등에는 새의 입장에선 소위 '인건비'가 안 나온다. 날개를 퍼덕이며 쫓아가 잡아봤자 '코끼리에 비스킷'이다. 노력한 만큼 양에 차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꽃등에는 굳이 힘들여 정교하게 모방할 필요가 적었고, 자연히 짝퉁 티가 완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그럴듯한 이론에도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큰 꽃등에가 의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더 있다. 좀더 확실히 말벌을 흉내 내거나, 스스로 크기를 작게 진화하면 어설픈 짝퉁 꽃등에보다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왜 그러지 못했을까.
'꽃피는 봄이 왔건만, 국민의 삶은 고단하고…' 백성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는 천명(天命)을 거스르는 것이다. 과연 꿀벌 같은 정치인이 있는가. /임영무 기자 |
원래 짝퉁과 진품의 차이는 바느질 한 땀이 좌우한다. 디자인도 소재도 똑같이 베낄 수 있지만, 장인(匠人)의 바느질 한 땀 한 땀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아마도 너무 똑같이 모방하면 새의 눈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말벌과 갈등이 일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자칫 예뻐 보이는 암컷 꽃등에는 수컷 말벌의 시선을 끌었다가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그래서 말벌의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 새의 눈을 교란하는 수준까지만 진화하지 않았을까.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인 핸드백을 보자.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 제조사들에게는 전문가들도 구별하지 못할 만한 S급 짝퉁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눈에 불을 켜고 적발해 민형사상 소송과 함께 엄청난 손해배상을 물릴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짝퉁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조악한 제품에는 짐짓 눈을 감을 것이다. 이런 영세한 업자들을 색출하느라 들이는 에너지가 아깝다.
어쩌면 꽃등에는 최고의 짝퉁 전략가인 셈인데, 정치로 보면 진품을 가장해 유권자들을 눈을 헷갈리게 하는 정치인이다. 여하튼 큰 꽃등에든 작은 꽃등에든 결국 파리목(目)이다. 무늬가 정교하든 엉성하든 결코 말벌이나 꿀벌일 수 없다. 아무리 꽃밭은 날아다녀도 꿀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짝퉁'일 따름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에는 '돈'을… 대의(大義)를 앞세워 여민락(與民樂)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가. 그저 소리(小利)를 탐하여 독락(獨樂)하지 않는가. 민(民)이 안 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옳다고 고집하며 오불관언(吾不關焉)하지 않는가. /임영무 기자 |
우리 현실은 어떤가. 과연 꿀벌 같은 정치인이 있는가. 크든 작든 모두가 꽃등에라면 좀 심한가. 맹자는 민본(民本)을 정치의 요체로 들었다. 위정자는 도덕적 각성으로 백성의 복지를 위해 신명을 바쳐야 한다. 백성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는 천명(天命)을 거스르는 것이다. 과연 중국의 이윤과 풍도 같은, 우리의 이순신과 이원익 같은 정치인이 있는가. 대의(大義)를 앞세워 여민락(與民樂)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가. 그저 소리(小利)를 탐하여 독락(獨樂)하지 않는가. 민(民)이 안 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옳다고 고집하며 오불관언(吾不關焉)하지 않는가.
장자는 우물 안 개구리(井蛙)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고, 여름 벌레(夏蟲)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으며, 속 좁은 선비(曲士)에게 도(道)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장소, 여름 벌레는 때에 구속돼 있기 때문에, 속 좁은 선비는 자기가 배운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편벽과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격변하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분단은커녕 지역 갈등조차 봉합하지 못하며, 노령시대에 접어들고서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밥 문제로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정치를 보는 것 같다.
이들 짝퉁 정치인들게도 필살기가 있다. 바로 '물타기'이다. 예컨대 무료급식 논란에는 '종북'을 들먹인다. 세월호 진상규명에는 '돈'을 흔든다. '희석(稀釋)식 정치'인 셈이다. 술에 물을 탔는지, 물에 술을 탔는지 헷갈리게 하고는 술이다, 물이다, 술물이다, 물술이다 논쟁으로 어지럽게 한다. 나중에는 본질인 술은 사라지고 '술 맛이 나는 물'로 찝찔함만 남게 한다.
애잔한 4월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목련도, 벚꽃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린다. 곧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꽃밭을 날 것이다. 그 사이에 꽃등에들도 날 것이다. 명심하자. 꽃등에는 꿀을 모으는 대신 동물의 피를 빨고 전염병을 옮기기도 한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