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거래상', 로비스트 그들은 누구인가
"너를 대한민국 최고의 로비스트로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요리하겠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소문이 세간에 떠돌고 있다. 지난해 배우 클라라와 성희롱 스캔들에 휩싸이며 '클라라 회장님'으로 불리는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클라라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로비스트' 발언이다.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회장이 국내 유수의 무기거래업체의 대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로비스트' 발언엔 힘이 실리고 있다.
'로비스트', 인명 살상 도구 판매에 개입하며 '죽음의 중개상'이라고 불리는 무기중개상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며 이들을 유혹하는 손길은 무엇일까. <더팩트>는 무기중개상의 실체와 파헤쳐 봤다.
◆ 무기중개상 3인방 '박종규-린다김-이규태'
무기거래상 3인, 무슨 사건을 일으켰나. 박종규, 린다김, 이규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기중개상이다. 이들은 국내외로 수천억 원대의 뒷거래를 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왼쪽부터)./역사학연구소, SBS방송, 최진석 기자 |
무기 중개상의 검은 뒷거래는 1980년대 초 유신체제 이후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던 박종규는 F-20 전투기 판매를 추진하는 미국 롭스롭사에 고용돼 수천억 원대의 뇌물을 받고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
'로비 스캔들'로 유명한 '린다 김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군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고자 추진된 '백두·금강 정찰기 도입 사업' 과정에서 린다 김은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성능 미달의 장비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당시 린다 김은 이 전 장관으로부터 무인항공기 사업계획 등 군사기밀을 빼돌리기도 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논란이 된 이규태 회장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의 무기중개상으로 활동하며 전체 사업비 9600만 달러(당시 1365억)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500만 달러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으로 현재 합수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회장이 무기 중개를 하면서 생긴 비리는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검은 거래'뒤, 돈과 권력을 한번에
부와 권력을 가진 무기중개상. 무기중개상은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수익과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고위 공직자의 자금줄이 돼 정권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SBS드라마 '로비스트' |
무기중개상에겐 돈과 권력이 한 번에 따른다.
린다 김은 2007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바라에 15개의 방과 차를 타고 구경해야 하는 대저택이 있다"며 로비스트 활동 이후 부의 정도를 설명했다.
실제 린다 김은 '백두사업'으로 미국 방산업체의 에이전트로 활동하면서 수수료 1000만 달러(원화 117억 원)를 받았으며 공군의 무인공격기 도입사업(600억 원)과 공대지 미사일 도입사업(2000억 원) 등 국내외 주요 무기도입 사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번에 체포된 이규태 회장 역시 3억 1000만 달러 규모의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을 중개하고 그 수수료로 2380만(약 267억) 달러를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당시 무기중개상이던 고 조풍언 씨는 수백억 대 자산가이면서도 '얼굴 없는 실세'로 위세를 떨쳤으며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 중개상 김영완 씨 역시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을 정도로 정권과 깊은 연관을 맺었다.
이처럼 무기중개상이 부와 권력을 동시에 잡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중개하는 품목의 가격 자체가 높다 보니 어마어마한 돈을 만지게 되고 거래 과정 자체가 비밀로 유지돼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19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무기중개상이 벌어들이는 돈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일반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한다. 로또를 맞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이라며 "이 돈으로 장관이나 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스폰서 노릇을 하다 보니 권력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6년간 공회전', 방위사업 공정화 법안 통과될까
무기중개상 비리 근절 방안은? 무기중개상의 비리를 없애고자 정부와 일부 의원들은 법안을 발의하고 있으나 반대에 부딪혀 계류되고 있다./임영무 기자 |
무기중개로 빚어지는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없는 것일까.
국방부는 무기중개상의 양성화를 하고자 1985년 '군 무역대리점'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군수물자와 장비에 특화된 무역업체들의 등록을 받아 보안 감찰 범위에 뒀다.
또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관리규정을 개정해 200만 불(22억) 이상의 무기를 도입할 경우 무기중개상을 활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무기중개상의 중개 수수료를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하는 제도를 추진했다.
그러나 워낙 폐쇄성이 강하다 보니 발생하는 모든 비리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관계 법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10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원가부정 방지 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18대 국회가 종료되며 폐기됐고 2013년 정부와 신학용 의원이 각각 '방위사업계약 공정화를 위한 원가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방위사업 공정화 법안'을 발의했으나 의원들의 반대로 2년째 계류돼 있다.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이유로 정치 스폰서, 즉 '로비'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고위 공직자 입장에서 무기중개상은 자금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법안이 통과되면 이 자금줄이 끊기게 되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며 "강력한 법안 마련이 가장 우선시돼야 하며 그에 따른 처벌도 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팩트| 김아름 기자 beautif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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