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추적] 국회의원 아들 16만 원 절도..."큰사람 돼라" 용서
입력: 2015.03.13 12:05 / 수정: 2015.03.13 13:59
엉성한 도둑은 처음 이른바 국회의원 아들 절도 사건의 피해자 이영욱(62) 씨는 지난해 11월 2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양평=신진환 기자
"엉성한 도둑은 처음" 이른바 '국회의원 아들 절도 사건'의 피해자 이영욱(62) 씨는 지난해 11월 2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양평=신진환 기자

"도둑이 이렇게 엉성할 수가 없더라니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의 아들이 16만 원을 훔치고 달아났다? 첫 생각은 '뭐가 아쉬워서…' 의문이 일었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2일 모두가 잠든 오전 2시 40분께 최모(30) 씨 등 세 명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펜션에 침입해 16만 원이 든 지갑을 훔치고 달아났다. 이들은 범행 후 4개월이 지난 3월 6일 검거됐다. 좀도둑일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피의자 중 현직 국회의원 아들 A 씨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며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했다. 계획적인 범죄였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잠겨있는 문을 따고 들어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회의원 아들인 A 씨는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다.

국회의원의 아들인 A 씨는 왜 단돈 16만 원을 훔쳤을까. <더팩트>는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기로 했다. 12일 오후 취재진은 양평군 서정면을 찾아 사건이 발생한 그 펜션을 찾아 나섰다.

◆ 새벽 2시 40분, 불켜진 방 침입?

기가 막힌 풍경 사건이 일어난 펜션은 산기슭 중턱에 있었다. 양평호가 한눈에 보였다./양평=신진환 기자
'기가 막힌 풍경' 사건이 일어난 펜션은 산기슭 중턱에 있었다. 양평호가 한눈에 보였다./양평=신진환 기자

서정면에는 펜션만 200여 개가 넘었다. 일대 부동산과 주민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만약 이 사건이 살인사건이나 강도강간 사건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16만 원을 훔치고 달아난 단순 절도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사건이 벌어진 펜션과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과 만난 피해자 이영욱(62) 씨. 펜션의 주인이다. 이 씨는 약 4개월 전에 벌어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은 이 씨가 사는 펜션 2층에서 벌어졌다.

"토요일 새벽이었다. 손님들이 많아 낮부터 바쁘게 움직여 몸이 피곤했다. 평소 안방에서 자는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 거실에서 잠을 잤다. 불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일어났다. 식탁 위에 있는 핸드백을 뒤져 지갑을 가지고 나가던 찰나 아내가 잠에서 깨 누구냐고 물었더니 '방을 잘못 들어왔다'라고 말하더라. 당연히 손님인 줄 알았다. 이때 아내가 식탁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봤고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바로 뒤따라 나갔지만 사라진 후였다. 이후 112에 신고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는 게 이 씨의 심경이다. 혹시 흉기라도 들고 왔더라면 무방비상태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속절없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도 사건 이후 매우 놀라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지갑에는 많아야 20만 원 정도의 현금과 신용카드 등이 있었다고 한다.

A 씨를 포함한 이들은 불이 꺼진 방도 아닌 불이 켜진 방에 들어왔다. 또 본인들이 묵었던 펜션도 아니었다. 이들은 불이 켜진 방에 들어올 정도로 대범한 범인이었을까. 펜션의 위치를 볼 때는 범행 대상으로 삼기엔 충분해 보였다. 사건이 발생한 펜션은 산 중턱 그리고 다른 펜션과도 거리가 상당했다.

◆ 새벽 1km 떨어진 곳까지 와서 범행

펜션 좋네~ 지난해 11월 2일 피의자들이 묵었던 W 펜션. 이 씨의 펜션과 불과 1km 거리에 있다./양평=신진환 기자
'펜션 좋네~' 지난해 11월 2일 피의자들이 묵었던 W 펜션. 이 씨의 펜션과 불과 1km 거리에 있다./양평=신진환 기자

피의자 세 명은 사건이 발생한 펜션에 묵었던 손님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펜션에 묵지 않았다. 이들은 범행 장소와 약 1km 떨어진 W 펜션에 묵고 있었다. 걸어서 이동할 경우 약 20분, 차로는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A 씨 일행은 차량으로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우리 집과 불과 1km 떨어진 펜션에 묵었더라. 그래서 더 계획적인 범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차량까지 이용했으니 계획범죄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A 씨 등의 이야기를 듣고 만나니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계획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 당시 영상은 없었다. 촬영된 영상은 이미 삭제됐지만, 이 씨는 당시 상황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사진 속 A 씨와 친구들은 절도하러 간다고 볼 수 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씨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당시는 여러모로 계획적인 범죄라 생각했다. CCTV를 살펴보니, 남자 3명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걷더라. 계획적인 범행이었으면 좀 더 은밀하게 들어왔을 것"이라며 "이렇게 엉성한 도둑은 처음이다"라고 웃었다.

사실 이 씨의 펜션 곳곳엔 CCTV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A 씨를 포함한 피의자들은 CCTV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국회의원 아들? 몰랐다…잊지말고 큰 사람 돼라"

여기로 가면 되나? 이 씨의 펜션 CCTV에 피의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다./이영욱 씨 제공
"여기로 가면 되나?" 이 씨의 펜션 CCTV에 피의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다./이영욱 씨 제공

피의자 중엔 현역 국회의원 아들이 포함됐다. 이 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되고 나서 알았다고 했다. 드디어 피의자와 피해자가 만났다.

절도 행각을 벌인 3명과 이 씨는 지난 11일 오전 9시 10분께 펜션 인근 카페에서 다시 마주했다. 이날은 피의자들이 사과하고 싶어 해 만난 자리다. 젊고 젊었다. 이 씨는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처벌을 원했던 이 씨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씨의 설명에 따르면 피의자들이 훔친 지갑엔 현금 16만 원이 있었다. 이 씨를 만난 피의자들은 16만 원을 봉투에 담아와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피의자들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 씨의 마음은 얼음 녹듯 녹았다.

이 씨는 "반성하는 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 지갑에 손대기도 하고 누구나 '꼴통'짓은 하잖나. 젊은 친구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그 친구들에게 돈은 필요 없다. 나 싫다고 떠난 돈이니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 돈을 액자에 넣고 들여다보면서 지금을 잊지 말고 큰 사람이 돼라. 그게 보답이다"라고 말하며 합의서에 사인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한 어른의 속 깊은 결정이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 '봐주기 수사' 논란…경찰 "봐주기 없다"

우발적 범행이다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이 씨의 현관문을 강제로 연 흔적이 없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 씨 집의 현관문(왼쪽)과 올라가는 계단./양평=신진환 기자
"우발적 범행이다"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이 씨의 현관문을 강제로 연 흔적이 없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 씨 집의 현관문(왼쪽)과 올라가는 계단./양평=신진환 기자

단순 절도 사건의 범인은 4개월이 지나서 검거됐다. 이후 국회의원 아들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나올 것이 나왔다. 바로 경찰의 '봐주기 수사'다.

양평경찰서는 피의자들을 6일 검거했다. 이후 불구속 수사를 진행하자 일각에서는 "피의자 중 한 명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아들이라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봐주기 수사일까. 양평경찰서는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라며 억울해했다.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피해액이 적고, 우발적이며, 피해자가 뒤늦게 알았고, 도주 위험이 없다"며 "불구속 수사는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볼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현장 확인 결과 문을 딴 흔적이 없고 일행 4명 가운데 3명만 범행에 참여한 것으로 비추어 봤을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피해자 이 씨도 문을 따고 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문을 따고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 씨는 "문을 따고 들어오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만약 문을 따고 들어왔다면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이 없다. 당시 너무 피곤해 문을 잠근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 포함된 절도 범죄. 이런 아들을 둔 국회의원 아버지의 심경이 궁금했다. 하지만 해당 의원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더팩트ㅣ양평=이철영·신진환 기자 cuba20@tf.co.kr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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