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도둑은 처음" 이른바 '국회의원 아들 절도 사건'의 피해자 이영욱(62) 씨는 지난해 11월 2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양평=신진환 기자 |
"도둑이 이렇게 엉성할 수가 없더라니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의 아들이 16만 원을 훔치고 달아났다? 첫 생각은 '뭐가 아쉬워서…' 의문이 일었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2일 모두가 잠든 오전 2시 40분께 최모(30) 씨 등 세 명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펜션에 침입해 16만 원이 든 지갑을 훔치고 달아났다. 이들은 범행 후 4개월이 지난 3월 6일 검거됐다. 좀도둑일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피의자 중 현직 국회의원 아들 A 씨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며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했다. 계획적인 범죄였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잠겨있는 문을 따고 들어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회의원 아들인 A 씨는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다.
국회의원의 아들인 A 씨는 왜 단돈 16만 원을 훔쳤을까. <더팩트>는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기로 했다. 12일 오후 취재진은 양평군 서정면을 찾아 사건이 발생한 그 펜션을 찾아 나섰다.
◆ 새벽 2시 40분, 불켜진 방 침입?
'기가 막힌 풍경' 사건이 일어난 펜션은 산기슭 중턱에 있었다. 양평호가 한눈에 보였다./양평=신진환 기자 |
서정면에는 펜션만 200여 개가 넘었다. 일대 부동산과 주민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만약 이 사건이 살인사건이나 강도강간 사건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16만 원을 훔치고 달아난 단순 절도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사건이 벌어진 펜션과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과 만난 피해자 이영욱(62) 씨. 펜션의 주인이다. 이 씨는 약 4개월 전에 벌어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은 이 씨가 사는 펜션 2층에서 벌어졌다.
"토요일 새벽이었다. 손님들이 많아 낮부터 바쁘게 움직여 몸이 피곤했다. 평소 안방에서 자는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 거실에서 잠을 잤다. 불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일어났다. 식탁 위에 있는 핸드백을 뒤져 지갑을 가지고 나가던 찰나 아내가 잠에서 깨 누구냐고 물었더니 '방을 잘못 들어왔다'라고 말하더라. 당연히 손님인 줄 알았다. 이때 아내가 식탁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봤고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바로 뒤따라 나갔지만 사라진 후였다. 이후 112에 신고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는 게 이 씨의 심경이다. 혹시 흉기라도 들고 왔더라면 무방비상태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속절없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도 사건 이후 매우 놀라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지갑에는 많아야 20만 원 정도의 현금과 신용카드 등이 있었다고 한다.
A 씨를 포함한 이들은 불이 꺼진 방도 아닌 불이 켜진 방에 들어왔다. 또 본인들이 묵었던 펜션도 아니었다. 이들은 불이 켜진 방에 들어올 정도로 대범한 범인이었을까. 펜션의 위치를 볼 때는 범행 대상으로 삼기엔 충분해 보였다. 사건이 발생한 펜션은 산 중턱 그리고 다른 펜션과도 거리가 상당했다.
◆ 새벽 1km 떨어진 곳까지 와서 범행
'펜션 좋네~' 지난해 11월 2일 피의자들이 묵었던 W 펜션. 이 씨의 펜션과 불과 1km 거리에 있다./양평=신진환 기자 |
피의자 세 명은 사건이 발생한 펜션에 묵었던 손님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펜션에 묵지 않았다. 이들은 범행 장소와 약 1km 떨어진 W 펜션에 묵고 있었다. 걸어서 이동할 경우 약 20분, 차로는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A 씨 일행은 차량으로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우리 집과 불과 1km 떨어진 펜션에 묵었더라. 그래서 더 계획적인 범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차량까지 이용했으니 계획범죄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A 씨 등의 이야기를 듣고 만나니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계획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 당시 영상은 없었다. 촬영된 영상은 이미 삭제됐지만, 이 씨는 당시 상황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사진 속 A 씨와 친구들은 절도하러 간다고 볼 수 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씨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당시는 여러모로 계획적인 범죄라 생각했다. CCTV를 살펴보니, 남자 3명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걷더라. 계획적인 범행이었으면 좀 더 은밀하게 들어왔을 것"이라며 "이렇게 엉성한 도둑은 처음이다"라고 웃었다.
사실 이 씨의 펜션 곳곳엔 CCTV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A 씨를 포함한 피의자들은 CCTV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국회의원 아들? 몰랐다…잊지말고 큰 사람 돼라"
"여기로 가면 되나?" 이 씨의 펜션 CCTV에 피의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다./이영욱 씨 제공 |
피의자 중엔 현역 국회의원 아들이 포함됐다. 이 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되고 나서 알았다고 했다. 드디어 피의자와 피해자가 만났다.
절도 행각을 벌인 3명과 이 씨는 지난 11일 오전 9시 10분께 펜션 인근 카페에서 다시 마주했다. 이날은 피의자들이 사과하고 싶어 해 만난 자리다. 젊고 젊었다. 이 씨는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처벌을 원했던 이 씨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씨의 설명에 따르면 피의자들이 훔친 지갑엔 현금 16만 원이 있었다. 이 씨를 만난 피의자들은 16만 원을 봉투에 담아와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피의자들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 씨의 마음은 얼음 녹듯 녹았다.
이 씨는 "반성하는 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 지갑에 손대기도 하고 누구나 '꼴통'짓은 하잖나. 젊은 친구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그 친구들에게 돈은 필요 없다. 나 싫다고 떠난 돈이니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 돈을 액자에 넣고 들여다보면서 지금을 잊지 말고 큰 사람이 돼라. 그게 보답이다"라고 말하며 합의서에 사인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한 어른의 속 깊은 결정이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 '봐주기 수사' 논란…경찰 "봐주기 없다"
"우발적 범행이다"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이 씨의 현관문을 강제로 연 흔적이 없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 씨 집의 현관문(왼쪽)과 올라가는 계단./양평=신진환 기자 |
단순 절도 사건의 범인은 4개월이 지나서 검거됐다. 이후 국회의원 아들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나올 것이 나왔다. 바로 경찰의 '봐주기 수사'다.
양평경찰서는 피의자들을 6일 검거했다. 이후 불구속 수사를 진행하자 일각에서는 "피의자 중 한 명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아들이라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봐주기 수사일까. 양평경찰서는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라며 억울해했다.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피해액이 적고, 우발적이며, 피해자가 뒤늦게 알았고, 도주 위험이 없다"며 "불구속 수사는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볼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현장 확인 결과 문을 딴 흔적이 없고 일행 4명 가운데 3명만 범행에 참여한 것으로 비추어 봤을 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피해자 이 씨도 문을 따고 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문을 따고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 씨는 "문을 따고 들어오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만약 문을 따고 들어왔다면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이 없다. 당시 너무 피곤해 문을 잠근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 포함된 절도 범죄. 이런 아들을 둔 국회의원 아버지의 심경이 궁금했다. 하지만 해당 의원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더팩트ㅣ양평=이철영·신진환 기자 cuba20@tf.co.kr yaho1017@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