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ODAY가 만난 사람] '10년째 올백머리' 권은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입력: 2014.10.24 11:55 / 수정: 2014.10.24 13:53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이 23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 없냐는 질문에 10년째 이 헤어스타일이라 앞머리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이 23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 없냐'는 질문에 "10년째 이 헤어스타일이라 앞머리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국회=임영무 기자

[더팩트 ㅣ 국회=오경희 기자] "10년째 앞머리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하하."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40·광주 광산을) 의원은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 없냐'는 엉뚱한 질문에 스스럼없이 웃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고무줄 하나로 질끈 묶은 이른바 '올백머리'가 권 의원의 '트레이드 마크'다.

물론 딱 한 번 이 머리를 풀어헤친 적 있다. 2012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국정원 댓글 사건' 때다.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던 권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정치 댓글을 달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격렬한 상황에 그만 머리 끈이 풀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사건이 평범했던 그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지 말이다. 한 순간 매듭이 풀린 머리끈처럼 삶의 변화도 휘몰아쳤다. 경찰에서 공익 제보자 그리고 정치인이 되기까지,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제보자>를 보면서 권 의원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집무실에서 마주한 그는 때로 소녀 같이 웃었고, 이따금 침묵했다. 의정활동에 대한 얘기는 따로 정리했다([관련 기사][P-TODAY 직격 토크] 권은희 "軍 사법개혁 없인 은폐·축소 되풀이될 것" ).

◆ "제가 사라졌다던데요?"

7·30 재보선 당선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같은 당 백군기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권 의원./더팩트DB
7·30 재보선 당선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같은 당 백군기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권 의원./더팩트DB

7·30 재보선 후 세 달여가 흘렀다. 당선 후 국회에 처음 등장했을 때, 여의도 사람들은 연예인을 보듯 그를 바라봤다. 국회 국정원 '청문회 스타'였고, 그만큼 입성 당시 유명세를 치렀다.

"국회 상임위원회로 국방위원회를 배정 받았을 당시 국정감사가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어요. 당시 국방부가 군 인권 문제에 충실했어야 해서 시쳇말로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했죠. 국방위 공부를 하느라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이 적어 당선 후 제가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는 소리는 들어서 알고 있어요."

경찰 조직에 몸담았던 권 의원은 지난해 8월 국회 국정원 청문회장에서 경찰 수뇌부의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여야 의원들의 압박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 발언을 한 그에게 '존경' '양심' 소신' '진실' 등 칭찬과 박수가 쏟아졌다.

권 의원이 국방위 공부를 하느라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이 적어 당선 후 제가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는 소리도 들었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임영무 기자
권 의원이 "국방위 공부를 하느라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이 적어 당선 후 제가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는 소리도 들었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임영무 기자

하지만 그 많던 수식어는 곧 비수로 돌아왔다. '내부 고발'의 대가는 석연치 않은 전보와 총경 승진 탈락이었고, 결국 올해 6월 사표를 냈다. 일부 동료와 선배는 "조직을 팔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문제는 한 달 뒤였다. 김한길·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7·30 재보선에서 권 의원을 광주 광산을에 전략 공천했고, 당내 반발을 샀다. '공익 제보'의 진정성도 의심 받았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과거 KBS2 '출발 드림팀'의 모토인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란 말이에요. 경찰을 퇴직한 후 중단한 학업을 이어갈 생각도 있었고, 시민사회활동을 하려는 계획도 있었어요. 그동안 고단함을 잠시 잊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할 생각이 없는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세훈·김용판 과연 무죄인가?’ 판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권 의원./더팩트DB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세훈·김용판 과연 무죄인가?’ 판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권 의원./더팩트DB

진정성을 떠나 '공익 제보자'로서 그의 행동은 우리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공성보다 사적 관계를 우선하는 가족주의적 집단 문화를 벗어나지 못해 부정에 눈 감고, 적폐를 답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권 의원과 같은 공익 제보자들은 이 같은 '벽'에 부딪힌다. 올해 초 한 설문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사람 모두 "우리 사회가 아직 내부 고발을 단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답했다.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제보자>에서 제보자는 언론인에 묻는다. 권 의원은 망설임 없이 "진실이요"라고 답했다.

권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세훈·김용판 과연 무죄인가?’ 판결 토론회에서 생각에 빠져 있다./더팩트DB
권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세훈·김용판 과연 무죄인가?’ 판결 토론회에서 생각에 빠져 있다./더팩트DB

"제보자 시사회 때 원래 의원총회가 잡혀 있어서 초반에 나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대사 한마디, 심정에 공감이 가서 자리를 뜰 수 없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언론인이 제보자에게 '나는 모든 것을 다 걸고 했다. 증거를 가져와라'고 소리치고, 제보자는 말하죠. '당신은 모든 것을 걸었지만 난 다 버리고 왔다.'라고. 제보자는 버리는 삶에 체념하게 돼요."

그렇다면 권 의원은 무엇을 버렸을까. "인간 권은희가 행복했던 것, 좋아했던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끝을 흐린다.

"모든 제보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떤 권리가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가'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모든 이들에게 최선이 아니었다'라고 생각을 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느끼고 있어요."

◆ "공익 제보 공감대 넓혔으면"

공익 제보자의 활동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권 의원./임영무 기자
"공익 제보자의 활동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권 의원./임영무 기자

그는 아직 '개인 권은희'의 삶을 털어놓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다. "미용실 언니는 앞머리를 내리라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머리 외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다가도 지난 인생과 가족 이야기엔 한 발짝 물러난다.

"국정원 사건 때 저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던 움직임들이 있었잖아요. 모 언론사에선 '(저를) 털었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편치는 않아요. 다만 저에 대해 (뒤에서) 알아봤던 사람들이 '평범하고 조용했다더라'라고 말하던데요? 말 그대로 제 생각에도 저는 평범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어요. 하하."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권 의원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뛸 각오로 머리를 질끈 묶는다.

"제가 정치를 선택함으로써 저를 사랑하고 아껴줬던 사람들의 따뜻한 기억을 희석시켜버렸잖아요. 정치인으로서 제가 할 일을 마무리하고 난 뒤, 그 분들께 다시 따뜻하고 희망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공익 제보자의 활동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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