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정호준 의원 "항일 운동가·민주 투사인 조부가 그립다"
입력: 2014.08.15 06:00 / 수정: 2014.08.15 11:09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의 조부는 국가유공자이자 정치인인 정일형 선생이다. 정호준 의원의 집안은 우리나라 최초 3대 정치 가문이다. /더팩트 DB, 정호준 의원실 제공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의 조부는 국가유공자이자 정치인인 정일형 선생이다. 정호준 의원의 집안은 우리나라 최초 '3대 정치 가문'이다. /더팩트 DB, 정호준 의원실 제공

[더팩트 ㅣ 고수정 기자] "할아버님(고 정일형 선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입니다. 손자인 제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도 할아버님의 영향이 컸어요. 저의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 인생의 선생님이기도 하신 거죠."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43) 의원은 우리나라 최초 '3대 정치 가문'의 대를 잇고 있다. 그 맥의 시작은 정 의원의 할아버지 고 정일형 선생.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 이름있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정 선생은 인생의 절반을 독립운동에 매진해 1990년 정부로부터 애국장이 추서됐다.

정 의원은 매년 이맘때면 조부가 더욱 생각난다. 애국지사의 후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15일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다. 시대의 사명과 소명, 국가에 대한 애정을 몸소 실천한 정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다. 자부심도 느낀다.

정 의원은 14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광복절이 되면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하신 할아버님이 그리워진다. 할아버님은 어릴 적 저에게 늘 '애국'하는 길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에는 할아버님과 같은 분들이 많다. 국가유공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너무 열악하다. 예산이 문제지만, 나라를 위한 일을 한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조금이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1919년 2월 광성학교 2학년 당시 3·1독립운동 계획이 알려지자, 학교 기숙사 지하실에서 10여명의 상급생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태극기 5000여매를 제작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인 신홍식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했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으나, 미성년자 신분으로 곧 출감됐다. 그것이 정 선생이 애국의 길로 들어선 계기였다.

그는 192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을 전공하면서 재미유학생회를 조직, 외교부장으로 선출돼 독립정신 고취와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37년 10월에는 평양 지방 감리교 기독청년연합회 회장으로서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의 특별강연회를 개최한 것 등으로 수차례 옥살이를 했다.

"할아버님은 제가 알기에는 8번이나 옥살이를 하면서 목숨이 위태위태하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국가에 대한 애정이 크셨어요. 시대의 사명과 소명으로 애국하신 모습은 우리 가문의 후대(後代)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정일형 선생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대 국회부터 9대 국회까지 내리 8선을 지냈다. 제2공화국에서 외무부 장관에 기용되기도 했다. 정 선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잘 알려져있다. /더팩트 DB, 정호준 의원실 제공
정일형 선생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대 국회부터 9대 국회까지 내리 8선을 지냈다. 제2공화국에서 외무부 장관에 기용되기도 했다. 정 선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잘 알려져있다. /더팩트 DB, 정호준 의원실 제공

정 선생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구미지역파견 친선사절, 유엔한국협회장으로 활동했다. 1949년 11월에는 한민당이 대한국민당 탈당파와 연합해 민주국민당으로 창당하자 그도 참여했다. 1950년 5월 서울 중구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9대 국회까지 내리 8선을 지냈다.

그는 1955년 9월 조병옥, 곽상훈, 장면 등 저명인사와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고, 1960년 4·19 혁명 후 외무부 장관에 기용됐다. 1967년에는 신민당 부총재로서 이때부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정 선생은 1971년 신민당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선거 사무장을 맡은 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활동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4월 21일 정 선생의 25기 추도식에 참석해 '정치적 선생님, 야당의 거목'으로 정 선생을 회상하기도 했다.

"할아버님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세요. 두 분은 지금의 새정치연합 뿌리인 민주당의 전통을 세웠죠.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했을 당시 당에서 후보로 지명받게 하려고 시민회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주시기도 하고, 현역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김 전 대통령과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야당의 뿌리' '정치적 거목'이라고 할 수 있죠."

정 의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님과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어릴 적 기억 속 정 선생은 민주 투사로서, 정치인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손자와의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노력했고, 가족의 유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할아버님이었다. 애국지사의 자손으로서, 정계 후배로서 '정신적 뿌리'인 정 선생이 더욱더 그리운 날이다.

"교과서의 '산증인'인 우리 할아버님 손자라는 것이 저는 너무 뿌듯합니다. 할아버님의 '조건 없는 사랑' 저도 3대째 대를 잇는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신조'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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