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15일간의 청와대 게시판 '세월호 민심' 진단
입력: 2014.05.01 12:19 / 수정: 2014.05.01 12:27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후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실종자들의 구조를 호소하는 글과 함께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래픽=문지현 기자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후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실종자들의 구조를 호소하는 글과 함께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래픽=문지현 기자

[오경희·고수정 기자] '세월호 참사'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사고 발생 16일째. 사망자 213명, 실종 89명(1일 오전 8시 현재). 온 국민은 전남 진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여객선 세월호에서 실종자들이 돌아올거라 믿었고, 아직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지켜주지 못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누군가는 청와대 게시판에 호소했다. 사고 발생 초 "빨리 구조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고, 수색 작업 방법을 제안하며 함께 고민했다. 정부도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골든 타임'을 허무하게 보내면서 재난당국은 물론 정부, 청와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부의 부실 대응과 늘어만 가는 주검 앞에서 믿음은 '분노'로 번져가고 있다. '정부 무능론'은 고개를 들었고,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더팩트>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30일(11시 20분 현재)까지 보름동안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8542건 가운데 '세월호 참사' 관련 게시글 4000여건을 분석, 국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 <16~18일> 사고 발생 72시간까지 "구조 호소"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째인 지난달 21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 기도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실종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안산=최진석 기자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째인 지난달 21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 기도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실종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안산=최진석 기자

"학생들 얼마나 물속에서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니 제발 빨리 좀 구해주세요."

16일 오전 8시 55분 476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로부터 제주해상관제센터에 사고신고가 접수됐다. 선체가 50~60도로 기울어져 있던 오전 9시 30분 드디어 첫 구조헬기와 해경의 구조 함정이 도착했고, 본격적인 승객 구조가 시작됐다.

온 국민이 안타까운 1분 1초에 귀를 기울이며 실종자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어포켓' 내 최대 생존시간이 최대 72시간(18일 오전 9시쯤)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실종자의 가족은 물론 유족, 전국민은 정부에 신속한 구조를 호소했다.

사고 발생 72시간 전까지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누리꾼들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누리꾼 주모 씨는 17일 "정부가 빠르게 구조 작업을 해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제발 힘들게 버티고 있는 생존자들을 위해서라도 빠른 선처 부탁드린다. 제발 구조작업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했다. 박모 씨도 "우리의 자녀이고 이 나라의 미래다. 그냥 바다 속에 내버려둬서는 절대 안 된다. 온 국민이 나서서 바닷물이라도 퍼내고 싶은 심정이다. 제발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골든 타임' 종료가 다가오자 누리꾼들은 답답한 마음에 구조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누리꾼 장모 씨는 17일 "내가 기억하기로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 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위해 최후의 방법으로 대형선박을 가라앉혀서 유속을 저감시켜 마무리한 것을 기사로 봤다. 현재의 구조 방법을 바라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초조를 넘어 분노만 나온다"고 밝혔다.

이모 씨도 "침몰 현장 물살이 세다고 하니 우선 작은 배나 군함 등을 이용해 견인하면 침수되는 상황이 물위에 뜨는 효과와 얕은 물가로 이끌 경우 구조작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 <18~22일> '골든 타임' 종료…'정부 무능론' 대두

<더팩트>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30일(11시 20분 현재)까지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8542건 가운데 세월호 참사 관련 게시글 4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정부 무능론을 제기하는 글이 전체 게시글의 67%를 차지했다. /사진=더팩트 DB, 그래픽=고수정 기자
<더팩트>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30일(11시 20분 현재)까지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8542건 가운데 '세월호 참사' 관련 게시글 4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정부 무능론을 제기하는 글이 전체 게시글의 67%를 차지했다. /사진=더팩트 DB, 그래픽=고수정 기자

'골든 타임'이 지난 72시간 이후부터 전날까지 팽목항과 청와대 게시판을 가득 채웠던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울음·고성, '생존자가 있으니 빨리 구조하러 가 달라'는 호소는 부쩍 줄어들었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살아올 수 없다면 시신이라도 꼭 찾아달라"며 망연히 바다를 바라봤다.

18일 오후 1시 3분 세월호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침몰하고 단 한명의 추가 생존자 없이 시신만 수습하자 정부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주장이 서서히 제기됐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인원 집계와 때늦은 대처, 심지어 시신이 바뀌는 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

누리꾼 이모 씨는 18일 "이게 구조하는 거냐, 아니면 시간 때우기냐. 방송 3사에서는 정부에서 노력하고 지원하는 것처럼 내보내고 실제 그곳 모습도 그런지 의문이다"고 했고, 다른 이모 씨도 "같은 나라 같은 땅을 밟고 다니는 국민으로서 힘이 빠지고 정부의 무능력에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을 향해 거세게 질타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이모 씨는 18일 '박 대통령! 당신의 능력은 이 정도밖에 안 되냐. 작업상황을 겉핥기식으로 표면에 보여지는 것만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내보내면 끝이냐"고 꼬집었다.

20일 박모 씨는 '무능한 정부! 무능한 박근혜 정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말 화가 난다. 이 정부는 국민을 살리는 정부인가, 죽이는 정부인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무능력함을 보이고 싶은 거냐. 거짓말쟁이에 무능력하고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로 기억할 거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참사 7일째인 22일까지 사망자 113명 실종자 189명으로 집계됐다.

◆ <23~26일> 늘어만 가는 주검…허탈감에 침묵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달 21일 구급대원이 한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진도=문병희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달 21일 구급대원이 한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진도=문병희 기자

23일 새벽 3시40분 세월호 3층 식당 진입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사고 당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대형 선실이 많은 4층에 주로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토록 바라던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살아돌아오지 않았다. 이날 단원고엔 희생자 임시합동분향소가 차려졌고, 학생 25명이 영영 가족의 곁을 떠났다(발인).

게시판도 조의를 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허탈감 때문인지 이 기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은 부쩍 줄었으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누리꾼 정모 씨는 "물 속에 있는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부모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희망했다.

정부의 무능함을 꾸짖는 글들은 꾸준히 이어졌다. 누리꾼 김모 씨는 "박근혜 대통령님, 대한민국의 분노가 보이지 않느냐"며 "자상스러워야 할 대한민국이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한탄했다.

◆ <27~30일> 정홍원 총리 사퇴…"대통령은 사과하라"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

정부에 대한 분노는 27일 정점을 찍었다. 이날 오전 정홍원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 울었지만 지금은 정부 때문에 운다" "수백 아이들의 목숨값으로 내놓은 게 허수아비 총리의 사퇴냐" "총리가 사퇴하면 다 끝나는 것인가" "내각 총사퇴로 마무리 될 일이 아니다"라며 항의 글이 잇따랐다.

게시판에서 조회 수를 가장 많이 기록한 글은 박성미 다큐멘터리 감독의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되는 이유'로, 박 씨는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며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에 이 글은 정 씨가 올렸으나, 해당 글이 박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인 것으로 밝혀졌다.

27일 오전 9시 51분에 올라온 이 글은 28일 오전 9시 10분 현재 조회 수 47만 5116건, 공감 수 2만 5887건을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이 글에 "대통령이 반드시 읽고 수첩에 적어 놔야 될 글이네요" "진심 어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천하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정말 바른 말이다. 박 대통령이 꼭 읽었으면 한다"는 등의 댓글을 달고 공감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서인지 박 대통령은 29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가칭 '국가안전처' 설치를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들의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국민 앞에 서서 직접 사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박 대통령이 자기들끼리 모인 국무회의에서 사과했다면 이건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절차조차도 모르는 소치다. 이제 그만 내려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전국 모든 국민에게 머리 조아려 사죄하는 것도 국정 수반으로 당연히 해야 할 사죄이건만 국무회의 석상에서 진행하듯 하는 사과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는 국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팩트>이 자체 분석한 청와대 게시판내 '세월호 민심'은 '정부 비판'성 글이 67%에 달했다. 박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하는 직설적 글도 4%를 기록했다. 고 3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목숨을 걸고' 글을 썼다며 헌법조항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성난' 세월호 민심이 청와대 게시판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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