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경희 기자] 국회가 또 해를 넘겨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한때 '속사포랩'으로 유명했던 가수 아웃사이더의 노래 'Motivation'이 떠올랐다. 노랫말 가운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가 (의미는 다르지만) 크게 와닿았다. 어떤 것보다 빠르게 처리해야 할 예산안을 '늑장 처리'했고, 이전과는 다르게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일부 의원들은 '쪽지 예산'으로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야는 해를 넘겨선 안 될 예산안을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본회의를 열고 '지각 처리'했다. 헌정 사상 없었던 일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반복됐다. 앞서 여야는 연말까지 대치하다 12월 30일(2003년·2005년) 또는 12월 31일(2004년·2009년·2011년)에 가까스로 예산안을 처리하곤 했다. 지난해에도 해를 넘겨 1월 1일 새벽에야 예산안이 의결됐다. '민생 국회'를 외치며 야심차게 2013년을 시작했던 국회였기에 국민들의 실망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예산안 '늑장 처리'는 여야의 '거래(?)'가 한몫했다. 국정원 개혁법을 촉구한 민주당의 요구가 지난해 12월 30일 받아들여지자 31일 새누리당의 외국인투자촉진법 요구를 놓고 '샅바 싸움'이 벌어졌다. 여야는 48시간의 '밀당' 끝에 '내년 2월까지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도입 문제 합의 처리'를 전제로 외촉법을 처리하는데 뜻을 모았고, 예산안을 처리했다. 본회의에선 355조8000억 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예산이 통과됐다. 이는 정부안 보다 1조9000억 원 가량 줄었다.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탓에 구랍 31일부터 새해 첫날인 1일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2개의 결의안을 포함해 113개의 법안은 무더기로 처리됐다.
'밤샘 밀당'을 하면서도 일부 여야 의원들이 제 몫을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약 356조 규모의 예산안엔 '쪽지 예산'도 상당히 포함됐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지역구 챙기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중진과 지도부들도 빠지지 않았다는 게 정가에서 도는 얘기다. 회의 도중 쪽지를 밀어넣는다고 해서 '쪽지 예산'이라 불렸는데 이번엔 쪽지 외에도 휴대전화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민원을 넣는다고 해서 '카톡 예산'이란 말까지 나왔다.
올해부터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벼락치기' 예산안 처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개정 국회법에 따라 이른바 '예산안 자동상정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예산안과 세입예산 부수법안에 대한 심사가 법정기한의 48시간 전까지 완료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으로 회부되는 국회법 조항(제85조)이 적용된다. 부디 갑오년엔 여야 모두 '누구보다 빠르게' 해야 할 일은 제때 처리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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