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 "30m 철탑 올라가니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심정 이해"
입력: 2013.03.14 11:56 / 수정: 2013.03.14 22:08

은수미 의원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예상외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 이새롬 기자
은수미 의원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예상외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 이새롬 기자

[소미연 기자] 민주통합당 은수미(49)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폐소공포증과 고소공포증을 얻었다. 젊은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년을 복역한 뒤 출감할 당시만 해도 영화관은커녕 미끄럼틀도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노동'에 투신했다. 그리고 다시 30M의 높이의 철탑을 올라갔다.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어 철탑 위로 올라간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3명은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 촉구를 위해 지난해 11월 20일부터 평택공장 부근의 송전탑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은 의원은 "철탑 위로 올라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 보지 않는다"며 웃었지만, 쌍용차 해고 사태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자 얼굴이 굳어졌다. 3년7개월째 투쟁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2월 임시국회 개원 협의 과정에서 구성한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여야협의체(이하 여야협의체)'가 좀처럼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끼는듯 했다.

실제로 여야협의체는 뒤늦게 가동됐다. 지난 6일에서야 여야 위원들이 첫 상견례를 가졌다. 이후 14일 2차 회의를 갖는다. 사실상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은 의원은 <더팩트>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던 1년 전 약속을 곱씹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은 의원은 쌍용차 고공농성이 길어질수록 이들의 삶이 정상화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걱정이 컸다.
은 의원은 쌍용차 고공농성이 길어질수록 이들의 삶이 정상화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걱정이 컸다.

- 지난 7일에도 쌍용차 고공농성장에 다녀왔다. 현재 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철탑을 올라가보면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된다. 일명 '스카이'라고 부르는 고가사다리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고, 솔직히 무섭다. 두 명만 올라갈 수 있는데, 바람에 '스카이'가 흔들흔들한다. 올라가서 발을 내딛을 때도 지나가는 차량들로 바닥이 흔들린다. 서서 걷는다는 게 불안하다. 앉아서도 마찬가지다. 바람에 천막이 흔들린다. 여기에 '찍'하는 귀청을 찢을 만한 소리가 들린다. 1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소리다. 밤 9시 이후 주변이 조용해지면 그 소리가 훨씬 더 커진다더라.

농성장이라고 해도 텐트니까 3인 정도가 누우면 꽉 찰 정도고, 그 중 한명은 하반신 마비 증세로 앉아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지난 겨울엔 오죽 추웠나. 얼굴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였다. 용변 문제도 그렇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분들의 고공농성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크다. 땅에 다시 내려와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만약 제 가족이, 제 친구가 그렇다면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 문재인 의원도 고공농성장을 함께 찾았다.
종교계 원로들께서 쌍용차 고공농성자들과의 만남을 제안한 것이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 길게 싸우기 위해선 내려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과 다른 종교적·인권적인 문제로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저도 참석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 의원이 연락을 하셨다. 제가 여야협의체 위원이기도 하고, 고공농성자들을 내려오라고 설득을 하려면 정치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설명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 의원이 충분히 알고 계시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이 저를 찾았다. 쌍용차 노동자들과는 만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지만 그동안 온갖 일을 겪다보니 정이 두터워졌다.

당시 2명씩 고공농성장을 올라갔다가 내려왔기 때문에 무슨 얘길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비슷할 것이다. 처음에 문 의원과 명진스님이 올라가셨는데, 한 시간을 넘게 계신 것 같다. 사실 한 번 올라가면 빨리 내려올 수가 없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할 말은 없지만 한 번이라도 더 손을 붙잡고 싶다. 그분들 역시 고공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가 오랜만에 직접 손님을 맞으니 좋아한다. 그 모습이 더 마음 아프다.

은 의원은 여야협의체가 노사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고공농성자들을 대표로 참석하게 하는 것이 개인적 희망이라고 밝혔다.
은 의원은 여야협의체가 노사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고공농성자들을 대표로 참석하게 하는 것이 개인적 희망이라고 밝혔다.

- 고공농성자들이 빨리 내려와야 할 텐데.
사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다. 저도 젊은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있을 때는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목표가 아주 분명했다. 그래서 어려움을 어려움인줄 모르고, 자신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살아나오는 게 목표다. 지금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도 국정조사든 뭐든 희망의 끈을 만들어서 내려오겠다는 게 목표다. 본인 스스로 영웅이 아닌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려오면 굉장히 힘들어진다. 힘든 현실을 또다시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에선 희망의 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제 희망은 여야협의체가 노력해서 노사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그때 위에 계신 분들이 내려와서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내려와 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할 수 있지 않겠나.

- 철탑 아래도 힘들다. 고공농성장 방문 다음날 공교롭게도 덕수궁 대한문 분향소에 대한 철거 소동이 벌어졌다.
중구청에서 철거를 주도하고 있는데,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정치적 문제다. 여야협의체가 만들어졌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데 강제 철거 사건이 생기면 정책협의를 할 수가 없다. 야당에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서로 머리를 맞대기가 힘들어진다. 정치적 해결책을 시기적으로 봉쇄했다.

둘째, 법적 문제다. 계고장에서 말한 철거물은 이미 불탔다. 새롭게 천막을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철거하겠다는 대상물에 대한 새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겠나. 셋째, 문화적 보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철거 이유가 없다. 문화재청이 대한문 돌담 보수를 위해 공고문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이에 천막 농성자들은 협조의 뜻을 밝혔다. 천막을 없애는 게 아니라 움직이면 되니까. 문화재청 또한 천막을 철거할 의사가 없다더라. 그리고 시민들이 오가는 것을 막는다는 게 철거의 이유인데,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1년여 동안 별문제가 없었다. 그 정도는 우리 시민들도 충분히 감내해주신다.

대한문 천막은 노동자들의 '희망캠프'이자 일종의 '힐링캠프'다. 잔혹하게 짓밟을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번에 철거를 막아냈으니 당분간은 철거 소동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과 면담이 예정돼 있는데, 고용부에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동안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첫 번째 대답이 '철거'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저는 아직 오해라고 생각한다.

은 의원은 쌍용차 사태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은 의원은 쌍용차 사태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 국정조사가 빨리 이뤄져야겠다.
국정조사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여야협의체에서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첫째, 정리해고자를 포함해서 실직자들의 실질적인 복직이다. 저는 가능하다고 본다. 작년 보고서를 보니 쌍용차의 생산량이 좋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생산량이 2.1% 줄었다면 쌍용차는 5.4% 늘었다. 특히 SUV나 디젤 쪽은 쌍용차의 핵심기술인데, 그 핵심기술을 가진 차들이 신흥개발도상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더라. 덕분에 수출물량도 2배가 늘었다. 그러니 정부가 지원을 하고, 마힌드라(인도 자동차 회사)같은 외국 자본이 협력해준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리해고 규제방안을 여야가 합의하자는 것이다. 부당한 해고를 밝히는 것 이전에 정리해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다. 셋째, 4대 의혹을 분명하게 밝히자는 것이다. 고의부도·회계조작·부당해고·인권유린에 대한 여야의 의견이 다르지 않나. 공청회든 간담회든 대규모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넷째, 국정조사 실시 방안에 대한 점검을 하자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안을 5월까지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합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분간은 그렇다. 박근혜 정부가 무응답으로 일관하지 않나.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봐선 박근혜 정부의 방침이 아닌가 싶다. 다만 새누리당도 정리해고자의 복직과 인권유린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현정부가 아닌 MB정부의 책임 규명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는 현재 국정조사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그중 일부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국정조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은 의원이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고용률을 올리는 일자리다. 이는 지속가능해야 하고, 권리가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은 의원이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고용률을 올리는 일자리다. 이는 지속가능해야 하고, 권리가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이란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을 하는 사람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느냐, 아니면 일꾼·인력·인적자본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후자는 일을 시키고 부리는 입장으로서 보는 게 아닌가. 시민은 일을 하든 안하든 권리를 가졌다. 국가는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는 게 아니다. 시민의 권리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로 봐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모든 게 일자리 창출이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 핵심인 '늘(리고) 지(키고) 오(올리고)'에서 '늘'만 있다. 약속한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1년에 50만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MB정부도 연평균 41만개 정도 일자리를 만들었다. 고용률이 늘지 않았을 뿐이다. 새 일자리를 만들면 곧바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저 일자리로서만 보면 이런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고용률을 올리는 일자리다. 이를 위해선 지속가능해야 하고, 권리가 보장돼야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일하는 사람도 시민으로서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의 범주가 크다. 일자리는 물론 노동법, 차별 문제와 중산층 문제, 경제 문제까지 포함한다. 때문에 노동과 복지가 전면에 서고 경제가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다. 박근혜 정부도 대선에선 노동과 복지를 전면에 내세울 것처럼 얘기하더니 지금은 경제가 전면에 섰다. 노동은 일자리로 바뀌고, 복지는 계속 후퇴한다. 그게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 새로 취임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기대는.
다행히 방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쌍용차에 대한 국정조사 외에 다른 지원을 위해 노력해보겠다 약속했고, 이후 기자간담회 내용을 살펴보니 전교조 법외(法外)노조화 문제를 유보한 뒤 꼼꼼하게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MB정부 초기에 노동 파괴 시그널은 공공부문 민영화와 선진화였다. 공기업 노조를 죽인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박근혜 정부의 시그널이 쌍용차 국정조사 말 바꾸기와 전교조 법외노조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오해를 사지 않도록 전교조 문제를 천천히 해달라고 한 것에 대한 방 장관의 답변이었다. 이를 볼 때 MB정부처럼 마구잡이로 현장을 짓밟거나 파괴된 현장을 더 때려 부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괴된 현장에서 새롭게 건물을 지을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웃음)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하는 은 의원. 그는 땅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하는 은 의원. 그는 "땅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쌍용차 외 고공농성을 펼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더불어 국민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자들이 계속 올라가는 이유가 있다. 누구는 위로 올라가면 이름을 떨치고 임금이 좋아지지만 서민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땅에 발붙이고 살 수가 없어서다.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부는 불법을 말하지만, 사실 땅에서 살 수 없을 정도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법이 어떤 의미가 있겠나. 법은 이 사람들을 땅에 살게 하는 것이다. 결국 법조차 이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한 게 아닌가. 작년 대선을 통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무너졌다. 그렇기 때문에 두 배 세배 더 노력하겠다. 그러니 시민들께서도 한 번 더 생각해주시고 인내해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린다.

- 새누리당 의원들과 고공농성장을 방문하는 것은 어떤가.
(웃음) 대한문 천막까진 방문했다. 그것도 노력해보겠다.

<사진=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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