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읽는 재미는 대략 몇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를 처음 접하는 즐거움이 있고 유명인사나 큰 사건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정 회장은 지난 해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러시아가 예선에서 탈락하자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게 북한 감독을 겸임하면서 지도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그도 그렇게 해보겠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러시아축구협회의 허락을 받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히딩크가 정말 북한을 이끌고 월드컵에 출전했다면 나름 의미있는 일이 될 뻔했다. 지난 해 12월 2022 월드컵 유치 경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이 투표에서 먼저 떨어지는 국가를 밀어주자고 정부차원에서 약속했지만 정작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화도 처음 털어놨다.
축구계의 여러 인물에 대해서는 호오가 분명했다.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등에 대해서는 “장래에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칭찬했다. 반면 그의 재임 기간동안 비판 세력의 중심축이었던 허승표 전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과 김호 전 국가대표팀 감독에게는 매우 야박한 평가를 주저하지 않았다. 몇몇 표현에서는 논란의 여지도 느껴졌다.
자서전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축구관련 분량은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했다. 그가 20년 가까이 국내축구에 끼쳤던 엄청난 영향을 고려하면 오히려 양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언젠가 정 회장이 본격적인 ‘축구 회고록’도 한번 펴내기를 기대해 본다. 동시에 ‘정몽준 시대’를 함께 살아왔던 다른 축구인들도 그 시절에 대한 평가와 증언을 보다 공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국내 축구계는 이제 ‘포스트 정몽준’의 리더십을 고민해야할 때다.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 과정에서 ‘정몽준 시대’의 공과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평가는 불가피하다. 한국축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도 ‘정몽준 시대’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위원석 체육1부차장 batma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