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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환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 겸 서울대 감독 <사진 - 배정한 기자> |
[유성현 기자] LG 트윈스의 가을 야구는 올해에도 없었다. 어느덧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다. 무려 5016일 만에 1위에 올랐던 시즌 초반의 위용도 정규 시즌 마무리에 접어든 4일 현재 7위에 그치고 있다. 적어도 5위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최장 기간 포스트시즌 실패라는 불명예를 떠안으면서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가을 야구를 향한 9년간의 기다림이 번번이 실망으로 이어진 결과다. 가장 마지막으로 경험했던 우승은 17년 전인 1994년이다. 1990년대 초, 중반 거침없는 진격을 거듭하던 LG 야구에 대한 팬들의 향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다.
1994년 시즌 우승,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LG 최전성기의 중심에는 이광환(63) 서울대 야구부 감독이 있다. <더팩트>은 '신바람 야구'로 창단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에게 LG의 자화상을 물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대 감독과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이 감독은 '친정팀' LG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여전히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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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야구부의 연습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 감독은 매일 선수들보다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손수 돌을 골라 내고 물을 뿌리며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 |
◆ 백전노장과 '백전백패' 만남 "야구의 즐거움 전하는 게 내 할 일"
올해 나이 예순 셋.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한 '백전노장' 이 감독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지난해 5월 창단 후 28년 동안 1승 1무 199패라의 초라한 성적을 거둔 '만년 꼴찌' 서울대학교 야구부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감독직을 맡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커다란 관심에 대해서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처음 아이들 실력 봤을 때? 보나마나였지. 동네에 있는 여러분들이랑 똑같아.(웃음) 예전부터 야구하던 선수 출신도 없고, 공부에만 열중하던 아이들이었는데 해 봤자 얼마나 뛰어나겠어. 성적보다는 야구에 대한 즐거움과 팀워크를 알게 하는거지. 물론 승리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성적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웃음)"
이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직에 오를 생각은 아니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KBA)에서 설립한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원장을 맡아 지난해 1월부터 서울대를 오가며 교내 야구장을 지나쳤던 게 사령탑을 맡은 배경이 됐다. 실제로 학교 내에 있는 사무실 창밖으로는 운동장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야구부원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구부라 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 감독의 표정은 밝고 편안했다.
"저기 봐. 완전 자갈밭이지. 어제도 한 아이 코가 깨졌단 말이야. 운동장 사정이 이러니까 매일 애들이 다치지. 크기도 워낙 작고 환경은 열악하지만 야구를 즐기게끔 하는 게 내 할 일이야. 공부에서는 1등만 하던 애들이 야구에서는 쉽지 않지. 어려움 속에서 노력하고, 또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겪을 수 있는 좌절을 미리 겪어 볼 수도 있는 거야. 지는 것도 또 하나의 훌륭한 교육이거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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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야구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이 감독의 표정은 밝고 편안했다. |
◆ "LG 부진, 확실한 마무리만 보강된다면 희망 있다"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는 오늘의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친정팀 LG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 감독의 표정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났다. 좋지 않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을까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끔 '우리 LG'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가 친정팀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애정과 관심이 여전히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깝지. 초반에 잘하는가 싶었지만 또 그렇게 됐고…. 무엇보다 마운드 안정이 돼야 할 것 같아. 10승 투수가 3명이나 나왔지만 역시 불펜이 안 돼. 그냥 지는 것과 역전패하는 건 천지 차이거든. 각자 역할을 정확하게 맡아 주는 마운드 운용이 돼야 하는데 말이야. 보고 있으면 셋업은 많은데 확실한 마무리가 없어. 1위 삼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뒷문은 필수라고 봐."
일찍이 이 감독은 강팀이 되기 위한 5가지 조건을 강조했다. 1994년 시즌 우승을 거머쥘 때부터 확실한 에이스, 영리한 테이블 세터, 예리한 해결사, 믿음을 주는 포수, 철벽 마무리가 갖춰지는 팀만이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지션 분업화가 애매했던 당시 그만의 특별한 철학은 오늘날에도 강팀을 구분 짓는 정확한 잣대로 여겨진다.
"야구에서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이지. 방망이가 아무리 잘 따라 와도 마운드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투수진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타격도 따라오는 것이거든. 지금 LG에 좋은 타자들이 얼마나 많아. 선발 자원은 괜찮잖아. 확실한 마무리만 보강되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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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감독은 친정팀 LG에 대한 애정을 담아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
◆ "야구는 기다림의 스포츠…흔들림 없이 철학대로 GO!"
1990년대 중반 이 감독이 빚어 낸 LG 야구의 위력은 강력했다. '야생마' 이상훈, '노송' 김용수가 이끄는 투수진과 '해결사' 한대화, 신인 3총사 유지현-서용빈-김재현 등 타선까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며 구단 역사상 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이 감독은 LG 선수들에게 단순히 눈앞의 1승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확실한 팀 컬러를 만들어 LG만의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때 LG는 팀 색깔이 확실했어. 삼성은 이기기 위해 엄청난 보강을 했지만 확실한 팀 컬러가 없었어. 오히려 요새 삼성을 보면 확실한 색깔이 있잖아. 모름지기 팀에는 각각의 색깔이 있어야 하거든.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집집마다 달라야 돼.(웃음) 팀의 중심을 잡는 프랜차이즈 스타도 있어야 하고, 선수들도 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지. 단순한 성적을 위한 트레이드만으로는 강팀을 만들 수 없어. 팀 특유의 정신력과 전통이 만들어져야 해."
이 감독이 강조하는 강팀의 요소 가운데 전력을 제외한 마지막 퍼즐은 다름 아닌 '기다림'이었다. 1990년대 중반 야구판을 이끌었던 이광환 표 '신바람 야구'의 이면에는 지도자와 구단 모두의 희생과 인내심이 있었다. "신바람 야구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 내용을 보면 찬바람일 때도 있었어.(웃음) LG에 부임했을 때 구단은 날 3년 동안 기다려줬어. 나도 처음에 부진했을 땐 팬들이 구장에 3천 명이나 찾아왔었거든.(웃음) 그때는 팀 성적도 내야 하고, 시스템도 바꿔야 하니 내심 힘든 점이 많았지.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 기억에 남는 것이고."
"무엇보다 지도자와 구단의 제 1덕목은 인내심이야. 흔들림 없이 감독의 철학을 이어가면서 팀에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봐. 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지. 살다보면 즐거운 날, 슬픈 날이 있는 거잖아. 지금이 LG에게는 슬픈 날이겠지만 반드시 웃을 날도 올 거야. 야구란 그런 것 아니겠나 싶어."…①편 끝. <②편에서는 1994년 LG 영광의 순간, 이광환 감독의 야구 인생 등이 이어집니다.>
<글 = 유성현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yshalex@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