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기획] 아듀, 상봉터미널!...38년 추억 속으로 사라진 현장
입력: 2023.12.07 00:00 / 수정: 2023.12.07 00:00

11월 30일 끝으로 폐업...내년 상반기 철거 후 주상복합 들어서
3년간 폐업한 전국 버스터미널 18곳


운영 적자를 이어오던 서울 상봉터미널이 지난달 30일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상봉터미널 간판의 불 꺼진 봉 자가 폐업을 대변하는 듯하다./서예원 기자
운영 적자를 이어오던 서울 상봉터미널이 지난달 30일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상봉터미널 간판의 불 꺼진 '봉' 자가 폐업을 대변하는 듯하다./서예원 기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상봉터미널 입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상봉터미널 입구.

[더팩트ㅣ서예원 기자] 쌀쌀한 겨울바람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지난달 27일 오후 6시, 가로등이 켜지자 한 박자 늦게 상봉터미널 건물 외벽의 간판도 깜빡이며 불이 켜진다. '상봉터미널'의 '봉'에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상 터미널'로 읽히는 모양새.

낡은 간판에서부터 세월이 드러나는 서울 중랑구 상봉로 117의 '상봉터미널'이 지난 11월 30일을 끝으로 38년 만에 폐업했다. 서울 동북부 외곽의 교통을 담당하며 장병들의 설레는 휴가 첫 기착지로 사랑을 받던 장소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달 27일 취재진이 찾은 상봉터미널 대합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취재진이 찾은 상봉터미널 대합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승객들이 대합실에서 원주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승객들이 대합실에서 원주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안내문에는 지속적인 이용객 감소에도 지역 주민 편의를 위해 운영을 계속해 왔으나 최근 하루 이용객이 20명 미만까지 감소했다는 설명과 함께 오는 12월 1일부터는 터미널 앞에 설치될 임시정류장을 이용해달라고 적혀있다.
안내문에는 "지속적인 이용객 감소에도 지역 주민 편의를 위해 운영을 계속해 왔으나 최근 하루 이용객이 20명 미만까지 감소했다"는 설명과 함께 오는 12월 1일부터는 터미널 앞에 설치될 임시정류장을 이용해달라고 적혀있다.

운영 종료 3일 전 방문한 상봉터미널에는 승객 두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불이 꺼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입점해 있는 분식점과 매점 등은 셔터가 내려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텅 비어있는 대합실에는 "2023년 11월 30일 상봉터미널의 운영을 종료한다"는 안내문과 '상봉터미널 매표소 운영 중단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유인 매표 창구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유인 매표 창구 운영 중단 시 현금을 이용한 매표가 불가능하다.
지난 3월 유인 매표 창구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유인 매표 창구 운영 중단 시 현금을 이용한 매표가 불가능하다.

어두운 모습의 매표 창구 내부.
어두운 모습의 매표 창구 내부.

무인 발권기로 원주행 티켓을 예매하는 승객들.
무인 발권기로 원주행 티켓을 예매하는 승객들.

매표 창구의 운영은 지난 3월 중단됐다. 굳게 닫힌 매표소 창구 옆 무인 발권기 한 대가 발권을 대신하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내가 현금 줄 테니까 표 좀 예매해 줄 수 있을까?"

무인 발권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승객은 취재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종종 상봉터미널을 방문한다는 승객은 "(무인 발권이) 어렵다. 나는 현금을 쓰는데 이건 카드로만 되는 거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5시 버스 출발 직전 대합실에 도착한 다른 승객 역시 취재진에게 티켓 발권을 부탁했다. 한산한 터미널 내부를 둘러보던 승객은 "차가 갑자기 고장 나서 오랜만에 터미널에 방문했다. 여기가 없어지는 줄 몰랐다"고 당혹스러움을 표출했다.

1986년 운영 초기 상봉터미널의 모습. /서울기록원
1986년 운영 초기 상봉터미널의 모습. /서울기록원

1985년 준공돼 강원과 경기 북부를 오가던 상봉터미널은 한때 하루 평균 이용객이 2만 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요를 자랑했다. 하지만 1990년 광진구의 동서울터미널과 인근 지하철 노선이 생기면서 급격히 승객이 줄다가 코로나19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지하 1층 버스 승차장에 원주행 버스 한 대만 주차되어 있다. 운영 초기 버스 승차장으로 쓰이던 1층 공간은 현재 운전학원 주행장, 2층은 경륜장으로 쓰이고 있다.
지하 1층 버스 승차장에 원주행 버스 한 대만 주차되어 있다. 운영 초기 버스 승차장으로 쓰이던 1층 공간은 현재 운전학원 주행장, 2층은 경륜장으로 쓰이고 있다.

7년 이상 상봉터미널에 근무한 버스 운행 관리직원은 "(하루 이용객이) 20명도 안 돼요. (사람이 줄어든 지는) 이미 오래됐다"며 "코로나 전에는 그래도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는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차 대수도, 이용객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상봉터미널의 한 달 총수익은 83만 원. 하루 평균 이용객은 26명에 불과했다.

터미널 입구 일부가 굳게 잠겨 있다.
터미널 입구 일부가 굳게 잠겨 있다.

상봉터미널의 폐업이 갑작스러운 수순은 아니다.

강원 지역 노선의 상당수가 동서울터미널로 이전되고 지하철 노선마저 터미널을 비껴가면서 터미널 운영사인 '신아주'는 승객 수 감소와 이로 인한 경영난을 겪었다. 신아주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모두 12차례 서울시에 사업 면허 폐지를 요구했다.

서울시는 서울 동북쪽 주민들이 시외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잃게 된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이에 신아주는 2004년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07년 "서울시가 상봉터미널의 사업 면허 폐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마지막 승객을 맞이하고 있는 버스 기사.
마지막 승객을 맞이하고 있는 버스 기사.

버스 기사가 장갑을 끼며 마지막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버스 기사가 장갑을 끼며 마지막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원주행 버스.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원주행 버스.

상봉터미널은 올해 3월, 운수회사 사정으로 대전행 노선이 폐지되면서 고속버스 전체 노선 운행이 중단됐다.

이로써 올해 4월부터 상봉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구리와 문막을 거쳐 원주로 오가는 노선 딱 하나뿐이었다. 승차 시간은 오전 7시, 8시, 10시 30분, 오후 2시, 5시, 8시로 하루 6차례다.

그마저도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날들도 많다. 버스 기사는 "원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지만 방학만 하면 아무도 없다. 아무도 못 태우고 가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버스 운행 시간 10분 전까지도 텅 비어있는 대합실을 바라보던 버스 기사는 "오늘은 손님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아"라며 취재진을 향해 멋쩍게 웃었다.

달력의 11월 30일을 바라보고 있는 버스 운행 관리직원. 상봉터미널에 12월은 오지 않는다.
달력의 11월 30일을 바라보고 있는 버스 운행 관리직원. 상봉터미널에 12월은 오지 않는다.

마지막 운행 날, 승객이 창밖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마지막 운행 날, 승객이 창밖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49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터미널 부지.
49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터미널 부지.

상봉터미널의 철거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의 의견은 나뉘었다.

터미널을 지나치던 한 직장인은 "노선이 얼마 없고 오래된 곳이라서 이용해 본 적 없다"며 "너무 낡은 건물에 이용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 들어선다는 주상복합 건물이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마지막 운영일에 상봉터미널을 방문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터미널 내부를 촬영하고 있다.
마지막 운영일에 상봉터미널을 방문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터미널 내부를 촬영하고 있다.

반면, 터미널 마지막 운영일에 일부러 터미널을 방문하며 아쉬움을 드러낸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터미널 내부를 한참 둘러보며 연신 휴대폰으로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한 시민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터미널이) 생겼다. 처음 생길 때는 터미널이 생기면 동네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며 "(새로 생기는 건물이 기대되는 마음보다는) 추억이 담긴 곳이 사라진다는 아쉬운 마음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열린 제8차 건축위원회에서 '상봉9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 사업' 건축심의를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터미널 부지에는 아파트 999세대, 오피스텔 308세대, 상업·문화시설 등으로 이뤄진 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 철거는 내년 초에 이뤄질 예정이며, 준공 완료 시점은 2029년으로 예상된다.

상봉터미널 앞에 세워진 임시 정류장.
상봉터미널 앞에 세워진 임시 정류장.

12월 1일부터 상봉터미널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지만 이곳의 유일한 노선인 원주행 버스는 계속 운행된다. 시민들은 터미널 앞 도로에 세워진 임시 정류장에서 기존에 운행되던 구리, 문막을 거쳐 원주를 오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상봉터미널 건물 관계자는 "임시 정류장은 시내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내버스는 자주 오지 않느냐"며 "시외버스는 고속도로가 막혀 연착되는 경우나 사고가 나서 교통이 정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손님들이 밖에서 고생할 거다. 버스가 늘 딱 맞게 올 수는 없다"며 걱정을 표했다.

버스 기사가 임시 정류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승객에게 알려주고 있다.
버스 기사가 임시 정류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승객에게 알려주고 있다.

기존에 운행 시간 30분 전 상봉터미널에 도착하던 원주행 버스는 12월부터 구리에 있는 본사 차고지에서 대기하다가 운행 시간에 맞춰 임시 정류장을 방문한다.

터미널 운영 마지막 날 5시 버스를 운전한 버스 기사 또한 "(임시 정류장에) 천막이든 뭐든 만들어야 한다. 손님들 춥겠다"며 "우리가 왔다 갔다 불편한 건 그렇다 쳐도 기다리는 승객들이 답답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당분간 임시 정류장에서 원주행 버스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당분간 임시 정류장에서 원주행 버스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시 정류장 또한 언제까지 운영될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한 달에 세 번 상봉터미널을 방문한다는 한 시민은 "임시정류장마저 당분간 하다가 사람 없다고 사라지면 어떡하냐"며 난색을 보였다. 원주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앞으로는 임시 정류장이 아닌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원주행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수도권 대도시 터미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경기 동부의 최대 터미널인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이 지난 1월 적자로 40년 만에 폐업했으며, 고양 화정 버스터미널도 승객 감소와 노선 급감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지난 5월 운영을 중단했다. 최근 3년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국의 버스터미널만 18곳에 해당한다.

버스터미널들의 '줄폐업'은 시민들의 교통 불편으로 이어진다. 발 묶인 시민들의 이동권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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