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용인에서 곰 탈출 사건이 잇따르며 국내 곰 사육 농장 실태가 재조명되고 있다. 강원도 화천의 곰 사육 농가에서 한 사육곰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최근 경기 용인에서 곰 탈출 사건이 잇따르며 국내 곰 사육 농장 실태가 재조명되고 있다.
1981년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와 외화벌이 목적으로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다.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곰의 쓸개(웅담)가 인기를 끌며 국내 많은 농가들이 곰 사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1985년 7월 국내 곰 수입이 전면 중단됐다. 1993년 정부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며 수출도 금지됐다.
곰의 식용이 제한되고 수요가 줄며 돈벌이가 되지 않자, 곰들을 방치하는 농장이 생겨났다. 음식 쓰레기가 섞인 사료를 먹거나, 뜬장(바닥까지 철조망으로 엮어 만든 사육장) 같이 움직이기도 어려운 철창 안에 갇혀 지내는 곰들이 늘어났다. 특정 농가에서는 곰을 몰래 증식하고 웅담 판매도 시도했다. 허술한 관리로 곰이 탈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사육곰 369마리(9월 기준)와 불법 증식된 곰 26마리가 있다.
7일 찾은 강원 화천군에 위치한 곰 사육장, 철창 앞에 주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열악한 현실에 놓인 사육곰에게 '철창 밖 자유'를 주자는 요구가 동물 보호단체들 사이에서 계속돼 왔다.
사육곰 구조와 보호를 위해 수의사, 환경운동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올 여름부터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강원도 화천 농가의 사육곰 13마리를 보살피고 있다. 화천 농가의 곰들은 사육을 포기한 농장주로부터 구조된 개체들로, 평균 20세가 넘은 노령이다.
활동가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이 곳을 찾아 사육장 청소와 먹이를 채워주고, 건강상태를 살피며 곰들을 위한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트레이너 활동가를 주축으로 이동을 위한 케이지 훈련, 채혈을 위한 무뎌지기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 민간 생츄어리(보호시설)를 건립해 곰들의 거처를 옮긴다는 계획이다.
완만한 경사 부지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화천의 사육장에는 13마리의 곰들이 살고 있다.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이 곳을 방문해 사육장 청소와 먹이를 채워주고, 건강상태를 살피며 사육곰들을 위한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
해먹과 볏짚, 사료 등 사육장 환경 개선을 위해 준비해 온 물건이 한 가득이다. |
수의사들이 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 곳의 곰들은 평균 20살의 노령곰들이다. |
직접 만져보고 확인할 수 없는 곰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살피고 있다. |
숲이 아닌 시멘트 바닥을 누빈 사육곰의 발바닥은 늘 상처가 나 있다. |
일부 곰들은 수년간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며 지루함과 스트레스로 인해 벽에 머리를 비비거나 사육장 안을 뱅뱅 도는 정형행동(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
활동가들이 마시멜로와 사과에 약을 넣은 간식을 만들고 있다. 노령인 곰들이 먹을 약은 영양제와 관절염약, 항생제 등이다. |
곰들을 구분하기 위해 위층(Upper), 아래층(Lower) 칸 수로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위층 세번째 칸에 살고 있는 유삼이(U3)가 약이 들어간 메시멜로를 받아 먹고 있다. |
유일이(U1)가 활동가들이 행동풍부화를 위해 달아 놓은 해먹에서 사과를 찾아 먹고 있다. |
지난달 22일에는 경기 용인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했다. 달아난 곰 5마리 중 4마리는 생포 또는 사살됐지만, 남은 1마리의 행방은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묘연하다.
이곳은 2006년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12마리의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전력이 있다. 올해는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다.
해당 농장주는 7월 불법 도축 사실을 숨기기 위해 1마리가 탈출했는데도 2마리가 탈출했다고 허위 신고했다가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환경부는 이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곰 2마리를 압수해 청주동물원으로 옮겼으나, 나머지 16마리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압수하지 못하고 다시 방치, 곰 탈출이 반복되고 있다.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해 이틀째 수색작업 중인 23일 경기 용인의 한 사육장 앞 설치된 안전펜스에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해당 농장 입구에는 외부인 접근을 막기 위한 안전펜스가 설치돼 있는데, 사육장을 완전히 둘러싸지 못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상시적으로 지키고 있는 인력도 없었다. |
안전펜스 앞 땅바닥에 떨어진 체인과 출입금지 안내문. 한 눈에 봐도 관리가 소홀해 보였다. |
용인 사육곰 농장은 다른 사육 농장에 비해 더욱 열악한 환경이었다. |
철창 너머 바깥을 바라보는 사육곰들의 눈빛이 애처로워 보인다. |
동물단체들은 곰을 사유 재산으로 분류하는 현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불법 사육 문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동물단체들은 곰을 사유 재산으로 분류하는 현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불법 사육 문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시민 단체인 녹색연합은 성명서를 내고 "개인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로 최소한의 관리 만을 할 때는 이제 지났다"라며 "환경부는 여주와 용인 농장에 남아있는 곰들에 대한 이주 대책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행정적, 법적 절차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도 "용인 농장의 곰 5마리 탈출 사건은 명백한 정부 당국의 관리 소홀 책임이다"라며 "정부의 더 적극적인 태도와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2024년 전남 구례군에 건립 예정인 사육곰 및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을 2023년으로 앞당겨 사육곰 이전에 나설 방침을 세웠지만, 그 사이 관리 공백은 여전히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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