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와 갈등을 빚은 서울 고덕동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택배 개별 배송이 중단된 14일 밤 한 택배기사가 입주민들이 찾아가지 않은 택배를 다시 차량에 싣고 있다. 택배 탑차 내부에는 지난해 7월 과로사한 택배기사 고 서형욱 씨의 추모 사진과 문구가 게시돼 있다. /이동률 기자 |
[더팩트ㅣ이동률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막은 지도 오늘로 19일째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집 앞 배송'을 중단했다가 일부 주민들의 항의와 택배사 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16일 '집 앞 배송'을 재개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택배기사들과 고덕동 아파트와의 마찰은 지난 1일 발생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안전사고 등을 우려해 모든 택배 차량의 단지 내 통행을 금지하고 저상탑차를 이용해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은 진입 제한 높이(2.3m)가 일반 택배 차량의 차체보다 낮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기사들에게 택배차량을 저상탑차로 개조할 것과 아파트 밖에서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14일 택배 개별배송이 중단돼 아파트 입구에 무수히 쌓여있는 택배상자. |
하지만 택배노조 측은 "저상탑차로 개조하거나 교체하는 비용도 모두 택배 노동자 개인의 몫이며 저상탑차를 이용해 배송하는 경우 택배기사의 노동시간과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고 난색을 보였다.
결국 아파트측과 택배노조 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자 개별배송을 중단하게 됐다. 그 결과 고덕동의 대단지 아파트의 배송은 택배기사들이 택배물품을 아파트 입구까지만 전달하게 됐으며, 주민들이 택배물품을 받기 위해 아파트 입구까지 직접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을 '갑질'로 규정한 택배노조의 입장과 1년 전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 금지를 알리며 충분한 계도 기간을 제공했다는 아파트 측의 입장이 대립하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내부에는 택배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
저상탑차만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
직접 택배를 찾으러 나오는 아파트 입주민들. |
◆개별배송 중단, 입주민의 생각은?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번 택배 대란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주민 A 씨는 "입주민들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택배기사님들의 원활한 업무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현재 상황이 잘 마무리되기를 희망했다.
다른 주민 B 씨는 "주민 안전을 위해서 재작년 입주 때부터 차량의 지상 통행을 하지 않기로 한 아파트였다"며 "1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고, 택배회사들이 준비하지 않은 문제인데 불편은 주민들이 모두 떠안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특히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다양한 방안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했으나 택배노조의 기자회견 및 언론제보를 통한 보도 등으로 입주민에게 갑질 프레임을 씌워 매도한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후 시간에 접어들면서 많은 입주민들이 택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택배를 수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입주민들. |
한 입주민이 택배를 직접 수령해가고 있다. |
◆5000세대 거주...차량 운행 금지하기에는 대규모 아파트
'택배 대란'을 일으킨 고덕동 아파트는 약 5000세대가 거주하는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다. 택배노조 측은 이러한 아파트의 특성상 택배 차량을 이용해야만 배송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아파트 측은 안전상의 이유로 단지 내 차량 운행을 금지했다. 다만 예외는 있었는데 가전제품을 배송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통행을 허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파트 측에서는 "이삿짐 차량과 가구, 가전제품 배송 차량은 무게와 부피가 크기 때문에 특수차량으로 분류돼 단지 내 통행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택배 노조측에서는 "다른 특수 차량이 진입하는 사례를 보면 충분히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데 택배 차량만 운행이 안된다는 게 아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는 저상차량 운행을 권고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아파트 단지 내에 진입한 가전제품 배송차량. |
부피가 큰 가전제품을 옮기고 있는 관계자들. |
아파트 측은 가전제품과 가구와 같은 경우는 부피와 무게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물품을 운반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통행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
◆서로가 풀기 어려운 현재 상황
개별 배송을 하지 않는 택배 물품은 아파트 입구에 밤늦은 시간까지 놓여 있었다. 입주민들이 택배를 찾으러 오면 직접 물품을 전달해줘야 하기 때문에 택배기사들과 노조 관계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 앞에서 오랜 시간 택배를 지키고 있던 택배기사 김 모 씨는 "하루종일 택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다"며 "그래도 배송을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물품을 전달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현재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입주민들 역시 대단지 아파트를 가로질러 직접 택배를 받아야 하므로 부피가 큰 물품을 수령하는 경우에는 막막하다고 이야기 했다.
여성 입주민 C 씨는 "늦은 시간에 택배를 수령하러 먼 거리를 왔는데 부피가 큰 물품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걱정이 크다"며 현재 상황에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입주민들이 택배를 모두 찾을때까지 택배노조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손수레를 끌고 나와 직접 택배물품을 수령해가는 입주민들. |
부피가 큰 택배물품을 직접 수령해 가는 입주민. |
◆아파트 측과 택배노조, 상생은 가능할까?
언제까지 개별 배송을 중단할 수는 없다. 개별 배송 중단으로 인해 택배기사들은 큰 손해를 보고 있으며 입주민 역시 고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는 만큼 하루빨리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이처럼 택배 갈등이 계속되자 상생하는 법을 찾은 세종시의 한 아파트가 주목받고 있다. 세종시 호려울마을 10단지 아파트는 소형택배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고 대형차량은 아파트 측에서 구입한 소형 전동카트에 물건을 옮겨 배송하고 있다.
아파트 내 대형 택배 차량 통행을 금지했지만, 택배기사들의 배송과 업무환경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단순한 사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세종시의 이 아파트는 아파트와 택배회사와의 끊임없는 소통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고덕동의 아파트 택배 대란도 입주민 측과 택배노조가 하루빨리 대화를 이어나가 양측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늦은시간까지 이어지는 택배 분류 작업. |
택배노조 관계자들이 남아있는 택배물품 배송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
밤 9시가 지나자 상하기 쉬운 생물 택배는 직접 배송하기로 결정했다. |
아파트 측에서 권고한 손수레를 이용해 생물 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들. |
생물택배를 제외한 나머지 택배는 다시 차량에 적재해 다음날 다시 아파트 입구에 놓을 예정이다. |
'계속되는 택배 논란'...하루빨리 원활한 해결책이 나오길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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