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한 인형 리페인터 중 한명으로 꼽히는 김태기 작가가 27일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기성 인형의 얼굴을 지우고 생동감 있게 다시 페인팅...대상 인물을 다양하게 재해석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인형 리페인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평범한 인형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인형으로 재탄생시키는 인형 리페인터(Repainter). 일반적 방탄소년단(BTS) 인형을 살아있는 듯 숨을 불어넣은 명품 BTS 인형으로 생동감 있게 탈바꿈시키는 신비의 세계다.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이 리페인터를 직업으로 가진 남자가 있다. 국내에서 유명한 인형 리페인터 중 한명으로 꼽히는 김태기 작가가 바로 그렇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대학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한 김 작가는 6년 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종종 인형에 얼굴을 그리며 취미로 했던 일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직업이 됐다. 그는 출시된 기성 인형의 얼굴을 지워내고 다양한 얼굴을 그려낸다. 그는 특히 미국 유명 완구업체 마텔의 ‘바비인형’에서 유명배우나 영화 캐릭터의 얼굴을 본 따 출시한 기존 인형을 더욱 생생하게 바꿔내며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가 최근 유명해진 이유는 BTS 인형을 리페인팅하면서다. 그의 작업실 곳곳에 아미들이 의뢰한 BTS 인형이 자리하고 있다. |
"제가 사람 얼굴을 좋아해요. 특히 예쁜 얼굴 보는 걸 좋아하는데, 소유욕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 대상을 가질 수 없지만, 조그맣게라도 만들어서 내가 갖게 되는... 그런 부분이 인형과 잘 맞아 떨어진 거죠. 입체적인 인형 얼굴에 3D로 표현되니,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리던 것 보다 만족도가 커지게 됐어요."
대학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한 그는 6년 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
김 작가는 작업할 인형의 얼굴을 그리기에 앞서 그 인물의 여러 사진을 합쳐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를 찾아낸다. |
같은 인물이어도 사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아이돌은 특히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에 따라 더욱 그렇다. 김 작가가 뷔의 여러 사진을 겹쳐 다양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
김 작가가 기존 뷔 인형 얼굴의 절반을 지워 자신의 스타일로 채색하고 있다. 인형의 오른쪽 얼굴면이 그가 수정한 뷔 인형의 얼굴. |
기존의 BTS 바비 인형(왼쪽)은 그의 손에 의해 생생한 뷔의 얼굴로 재탄생된다. |
김 작가가 그린 뷔의 얼굴과 사진 속 뷔 얼굴을 다중노출로 비교해봤다. |
그가 최근 더 유명해진 데는 방탄소년단(BTS) 인형이 한몫을 더했다. 지난해 바비인형은 BTS의 글로벌한 인기에 힘입어 BTS 인형을 출시했는데, 인형의 얼굴이 실물과 닮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가 바꿔낸 BTS 인형은 아미(BTS 팬클럽)들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그의 손을 거친 인형은 기존 인형의 몇십 배 이상 가치를 지닌 명품인형으로 인정받으며 ‘인형 리페인팅(REPAINTING)’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됐다.
김 작가가 리페인팅한 지민의 얼굴. |
세계 각지에서 그에게 리페인팅을 의뢰한 BTS 인형들. |
뷔 외에도 정국, RM, 지민(왼쪽부터)이 BTS 인형 중 가장 인기가 많다. |
그는 BTS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을 재현한다. 김 작가가 의뢰 받은 영화 캐릭터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사에서는 영화 출시나 프로모션에 맞춰 그에게 다양한 굿즈를 의뢰하기도 한다. |
그가 작업한 영화 캐릭터들이 작업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연예인만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단순히 닮게만 그리면 메리트가 없죠. 인형의 헤어나 의상까지 신경 써 다양하게 해석해요. 요즘은 자신의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그려 달라는 문의가 많이 와요. 고인을 추모하며 인형에 그려달라는 문의도 종종 있어요."
'인형 리페인팅'을 통해 인형이라는 소재가 마니아를 넘어 대중화되길 바라는 그는 현재 몇 명의 작가들과 팀을 꾸려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인형으로 캐릭터 사업에도 뛰어들 생각이다. 누구나 각자의 개성으로 인형 얼굴을 리페인팅할 수 있는 키트도 판매를 앞두고 있다.
진지한 표정의 김 작가. |
유명 가수들의 컴백 시기에 맞춰 다양한 주문이 들어오는데, 아이유는 인기 많은 아이템이다. |
그는 인형의 얼굴만 단순히 닮게 그리는 게 아니라, 헤어와 의상도 제작해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힘쓴다. |
같은 인형이라도 채색과 얼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인형이 된다. 사진은 바비의 남자친구 '켄' 인형(왼쪽)으로 작업 중인 '개통령' 강형욱 인형. |
김 작가가 목각(위)과 바비인형(가운데), 자체 제작한 인형(아래) 등 다양한 오브제에 표현한 인물들. |
"이 일을 너무 마니아적인 취미로 보는데, 사실 굉장히 전문적이에요. 또 재밌는 분야이기도 하죠. 모든 취미의 종착점은 자신이 해 보는건데, 여기도 모으는 걸로 시작해요. 모으다 보면 나만의 걸 만들고 싶어하고, 처음에는 작가의 손을 빌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만들게 되죠."
그는 자신의 일을 음식점에 비유해 "단기간 내에 성공해 이슈가 되는 프랜차이즈점 보다는 ‘오래가는 국밥집’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컴퓨터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데이터 베이스가 저장돼 있다. 그가 공개한 사진(왼쪽)에서 자신을 닮은 특별한 인형을 선물 받은 여성이 활짝 미소짓고 있다. |
인형에 사용하는 도료는 아주 다양하다. 다채로운 색감을 위해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
자체 제작한 인형 키트 얼굴에 색을 입히는 작업. |
'인형 리페인팅'을 통해 인형이라는 소재가 마니아를 넘어 대중화되길 바라는 그는 현재 몇 명의 작가들과 팀을 꾸려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자체 제작 중인 인형을 통해 캐릭터 사업에도 뛰어들 생각이다. |
'인형 리페인팅' 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킨 그는 마니아를 넘어 대중들에 인정받는 인형 사업가가 되길 꿈꾼다. |
자신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인형들과 인형 케이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태기 작가. |
김 작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다채로운 얼굴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구나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돼죠. 현대판 '제페토(동화 속 피노키오를 탄생시킨 목수 할아버지)'는 바로 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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