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공항시장'에서 점포를 재정비하는 상인 박 모씨(사진 위)와 지난해 10월 25일 손님 없이 텅 빈 거리의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셔터 내린 상점들과 '임대'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이덕인 기자 |
영화 '국제시장'의 활기는 옛말, 설 대목에도 '썰렁'
[더팩트ㅣ이덕인 기자]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격변기를 담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덕수(황정민 분)의 명대사다. 덕수는 '시끌벅적 한 국제시장' 중심에 있는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땀흘렸다. 비록 땀은 흘렸지만 대가는 있었다.
영화의 배경으로부터 약 60년이 흐른 현실의 국제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취재진의 눈으로 본 국제시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바람소리가 느껴질 만큼 고요한 국제시장은 손님 발길이 뜸했고, 곳곳에 '점포정리'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설 대목을 앞두고 한창 어수선해야 할 오후 시간에도 취재진을 스쳐 지나가는 건 손님이 아닌 상인들이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 뒤로는 셔터 내려진 상점과 '임대' 문구만 펄럭였다. 반면, 국제시장 일대에 있는 대형마트들은 인파로 가득했다.
국제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 모씨는 취재진을 보자 "사진 좀 예쁘게 찍어서 여기(국제시장) 홍보 좀 많이 해달라"며 근심을 애써 감추며 말을 걸었다. 주변 상인들 또한 지친 일상을 달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서로 사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도떼기시장'으로 피난민들의 안식처였던 국제시장은 현재 기계 공구·전기 전자·주방 기구·의류를 파는 도·소매 시장으로 1~6공구로 이뤄져 있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식용품·농수축산품·공산품 등의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한창 활기를 띨 시기에는 약 650개 업체, 1,500여 칸의 점포가 있었지만 현재 점포가 계속 줄고 있다.
한 상인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텅 빈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
상인 이 모씨는 먼지가 내려앉은 상품을 털며 씁쓸한 표정이 지었다. |
'점포정리'와 '임대' 상점의 수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
반면 국제시장을 둘러싼 크고 작은 마트에는 인파로 가득하다. |
'시끌벅적' 해야 할 시장 속 점점 작아지는 상인들의 목소리. 춥고 더운 날씨에는 손님이 더 없다. |
국제시장을 지키는 상인들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국제시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초량시장'도 손님들에게 외면받은 지 꽤 오래다. 2015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돼 비전선포식을 개최했지만, 인기는 금방 시들었다. 부산역 맞은편에 위치해 관광객 접근이 쉽고 인근 차이나타운과 초량 이바구길 등 명소도 인접해 최적의 조건을 갖췄지만, 대형마트를 이길 특장점이 마땅히 없어 손님 발길을 잡기는 부족했다.
마트의 대량 판매와 다양성, 저가상품 행사 등 철저한 상업 전략에 밀리고 있는 전통시장들. 다양한 물건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대형마트에 비하면 없는 상품이 많다. 초량시장 또한 수산물, 축산물은 물론 청과, 채소, 떡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종합 전통시장이지만, 146개나 있던 점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초량전통시장에서 한 상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스마트폰 거치대가 되어버린 채소들. |
한 상인은 "(점포) 빠진지 오래됐다. 누구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팔짱을 낀 채 텅 빈 거리를 응시하는 상인. |
늘어나는 거미줄과 그 뒤로 보이는 상인의 깊은 한숨. |
서울 서쪽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 재래시장이었던 공항시장. 공항시장은 2000년대까지 소위 '잘 나가는' 시장이었지만 2020년 취재진이 본 시장은 지방 재래시장들과 다를 바 없이 인적이 드물었다.
공항시장 상인과 인근 주민들은 큰 기대를 갖고 시장의 부흥을 꿈꿨지만, 그 꿈을 짓밟은 건 김포공항 일대 복합쇼핑몰과 대형마트의 등장이었다. 현재 공항시장은 시공사가 정해져 재개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아직 착공 시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통시장'들은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를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하며 국가 전체적으로 20조원의 매출과 35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반면, 전통시장을 살릴 방문객은 점점 줄고 미래를 이끌 청년 상인들은 정부와 자치단체의 '반짝 지원'이 끝남과 동시에 점포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둘씩 시장을 떠나고 있다.
3일 서울 강서구 공항시장역에 있는 '공항시장'은 섬뜩할 정도로 적막이 흘렀다. |
을씨년스러운 공항시장 초입 골목. 취재진을 반긴 건 길고양이뿐이었다. |
곳곳에 영업을 하는 상점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점포정리 후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
먼지로 가득한 공항시장 내부. 불이 켜진 점포도 있었지만 손님이 찾아올지는 의문이 들었다. |
운 좋게 만난 한 상인은 "점포 내부를 손보러 나왔다. 좋은 일도 아닌데 뭐 하러 찍나"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
현재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는 공항시장 점포들. 상인들은 신속한 재개발을 원하고 있다. |
급변하는 도심 속에서 전통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재래시장들. 한 번쯤은 '사라지는 전통시장'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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