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토기획] '낡은 타자기'에 빠진 20대 청년의 '연가'
입력: 2019.02.28 00:00 / 수정: 2019.02.28 15:27

편리함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고수하는 20대 청년이 있다. 수동 타자기 수리판매점을 운영하는 ‘레트로 케이’ 대표 김재홍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새롬 기자
편리함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고수하는 20대 청년이 있다. 수동 타자기 수리판매점을 운영하는 ‘레트로 케이’ 대표 김재홍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새 물건을 만들고 파는 사람은 엄청 많지만, 옛 물건을 팔고 수리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편리함 보다 ‘느림의 미학’을 고수하는 20대 청년이 있다. 이제 구시대 산물이 되어버린 수동타자기 수리판매점을 운영하는 ‘레트로케이’ 대표 김재홍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해 26살, 서울의 한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하던 김 씨는 수동타자기의 매력에 빠져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레트로 케이’는 복고를 뜻하는 영어 단어와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지었다.

김 씨의 수리점에는 타자기 외에도 브라운관TV나 턴테이블, 카세트·비디오 플레이어 등 추억의 기계들이 즐비하다. 그 중 20-30대 층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타자기는 매출의 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수동타자기 수리점을 운영하는 김 씨. 가게 문에도 타자기가 달려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수동타자기 수리점을 운영하는 김 씨. 가게 문에도 타자기가 달려 있다.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 활발하게 사용되던 타자기는 지난 2011년을 끝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20대 청년이 낡은 타자기에 빠지게 된 걸까.

"컴퓨터는 다양한 기능이 있어 여러가지를 하다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도 있는데 타자기는 오로지 글 쓰는 기능 밖에 없어서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죠. 카메라나 시계처럼 타자기도 원래 기능을 가진 물건인데 골동품처럼 ‘죽어있는 상태’로 방치된 경우가 많아요. 하면 되게 좋겠다 싶었죠."

김 씨는 매일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4평 남짓되는 작업실에서 타자기를 수리한다.
김 씨는 매일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4평 남짓되는 작업실에서 타자기를 수리한다.

타자기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이 그의 주 업무이다.
타자기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이 그의 주 업무이다.

김 씨가 처음부터 타자기 수리에 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기계 만지고 수리하는 걸 좋아했지만, 타자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그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타자기를 일일이 분해해가며 독학했다. 뜯어가면서 구조를 머릿속에 넣고 익혔다.

그렇게 그가 고장 낸 100여대 이상의 타자기는 수리점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아직 적자"라며 멋쩍게 웃는 김 씨, 그래도 그가 이 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매일 오전 10시에 작업실에 나와 밤까지 나와서 타자기를 만지고 있어요. 아마 적성에 맞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못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요?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타자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그는 수차례 타자기를 뜯어보고 분해해가며 구조를 익혔다.
타자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그는 수차례 타자기를 뜯어보고 분해해가며 구조를 익혔다.

타자기에는 양각으로 새겨진 금속활자가 촘촘히 나열돼 있다.
타자기에는 양각으로 새겨진 금속활자가 촘촘히 나열돼 있다.

자음과 모음, 특수기호 등이 각인된 타자기의 활자는 자판을 누르면 위로 올라가 종이를 타격한다.
자음과 모음, 특수기호 등이 각인된 타자기의 활자는 자판을 누르면 위로 올라가 종이를 타격한다.

가지런히 배열된 활자는 피아노 건반을 연상케 한다.
가지런히 배열된 활자는 피아노 건반을 연상케 한다.

활자 너머로 수리에 열중하는 진지한 눈빛.
활자 너머로 수리에 열중하는 진지한 눈빛.

탁! 탁! 활자의 기계 관절이 종이를 강타하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탁! 탁!' 활자의 기계 관절이 종이를 강타하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뚕은 된소리와 모음 받침이 모두 들어있어 김 씨가 활자 교정을 볼 때 선호하는 글자이다.
'뚕'은 된소리와 모음 받침이 모두 들어있어 김 씨가 활자 교정을 볼 때 선호하는 글자이다.

작업실 곳곳에 놓인 분해된 타자기, 그가 뜯어보고 익히며 고장낸 타자기만 해도 100여대에 달한다.
작업실 곳곳에 놓인 분해된 타자기, 그가 뜯어보고 익히며 고장낸 타자기만 해도 100여대에 달한다.

타자기의 캐리지 더미가 작업실 한 켠에 쌓여 있다. 캐리지는 용지를 이동하고 줄바꿈 하는 역할을 한다.
타자기의 캐리지 더미가 작업실 한 켠에 쌓여 있다. 캐리지는 용지를 이동하고 줄바꿈 하는 역할을 한다.

타자기 캐리지의 레버를 밀어 줄을 바꾸고 문단을 조절할 수 있다.
타자기 캐리지의 레버를 밀어 줄을 바꾸고 문단을 조절할 수 있다.

타자기 하단에는 종이 들어있어, 한 줄의 맨 끝까지 타자하면 줄바꿈을 알리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타자기 하단에는 종이 들어있어, 한 줄의 맨 끝까지 타자하면 줄바꿈을 알리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전국 각지에서 온 타자기는 그의 손을 통해 기능을 되찾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타자기는 그의 손을 통해 기능을 되찾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1911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 타자기는 김 씨가 보유한 타자기 중 가장 오래됐다.
1911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 타자기는 김 씨가 보유한 타자기 중 가장 오래됐다.

한 세기를 넘긴 이 타자기에는 공장 부지의 모습이 새겨져, 당시 타자기 생산 공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한 세기를 넘긴 이 타자기에는 공장 부지의 모습이 새겨져, 당시 타자기 생산 공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타자기 케이스에는 그동안 사용자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타자기로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타자기 케이스에는 그동안 사용자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타자기로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기능을 되찾은 타자기는 레트로케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출발을 준비한다.
기능을 되찾은 타자기는 '레트로케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출발을 준비한다.

낡은 타자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남자, 당신도 타자기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낡은 타자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남자, '당신도 타자기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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