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인천국제공항=사진기획부] "설마, 내 차는 괜찮겠지."
이런 생각으로 차를 맡겼다면 자신의 운을 믿는 수밖에 없다. 기록적인 폭염을 피해 여름 휴가에 나선 여행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 인천국제공항 불법 사설 주차대행 업체들의 고객 차량 관리가 부실의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맡겨진 차량은 주차장이 아닌 '땡볕'의 공터에 주차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키를 차량 내부에 방치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 용도로 활용하는 일도 수시로 목격됐다. 대부분의 차량은 지정된 주차장에 주차되고 있었지만 수백에 달하는 상당 수의 차량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주차장 사진과 달리 어디에 주차될지 모르는 '복불복'인 셈이다.
일부 사설 주차대행의 무분별한 관리 부실로 인해 차량 파손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고 차량 절도 등 범죄 위험성에 무방비로 노출돼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더팩트> 취재진은 해외 여행객이 집중적으로 몰린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 한달 간 일부 인천국제공항 사설주차대행 업체들의 불법 영업 행위를 밀착 취재했다.
본격적인 휴가철에 들어간 지난 7월 13일 인천공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사설주차대행 업체 직원들이 3층 출국장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
단속반의 눈을 피해 고객의 차량을 인수하는 사설주차대행 직원./이덕인 기자 |
◆편리함 뒤에 숨은 사설 주차대행의 불법 영업..."설마, 내 차가..."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 지난 7월 13일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로 붐비는 인천국제공항. 공항 공식주차대행 업체가 있지만 비교적 싼 비용과 예약 없이 맡길 수 있는 이점을 내세운 사설주차대행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들로 붐볐다. 사설 업체들은 온라인을 통해 미리 예약을 받거나 현장에서 바로 차량을 접수 받아 차량을 보관한 뒤 차량을 맡겼던 장소에서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여행을 마친 뒤 주차 된 자리를 찾아가는 공식 주차대행과 비교해 차량을 되가져다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게다가 주차 대행료를 받지 않아 이용객들은 증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
1일 오후 여행객들의 차량 이동이 많은 3층 출국장. 도로에는 조끼를 입고 속칭 ‘삐끼’ 영업을 하고 있는 사설 주차대행 직원들이 여럿 눈에 띈다. 차량이 멈추면 현장에서 주차 대행 영업을 하거나 미리 예약한 고객들을 위해 안내를 한다. 3층 출국장 도로에서 대행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사설주차대행 업체 직원들이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대부분의 사설 업체들은 고객들에게 인도 받은 차량들을 공항 인근의 건물 주차장 등으로 이동해 관리했다. 또 다른 업체는 공항에서 10km이상 멀리 떨어진 곳으로 차량을 이동한 뒤 주차 공간에 차량들을 보관하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일부 업체들은 주차장도 없이 공터에 차량을 방치한 뒤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영업을 하는 사설주차대행 업체는 무려 60여개에 달하고 있다. 이중 2곳만이 공식 지정 업체이고 나머지는 사설주차대행이다. 사설주차장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여서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가운데 불법으로 운영되는 업체의 경우에는 배상책임보험 등에도 가입 되지 않아 사고 시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인천공항자기부상열차 용유역과 공항인근 공사장 입구에 주차된 고객들의 차량이 방치되거나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이새롬·이덕인 기자 |
◆고객 차량으로 집에 가고...잠금 조치도 없이 공터 방치
해외 여행객으로 붐비는 1일 오후 공항 3층 출국장에 정차를 한 아우디 차량에서 여행객이 가방을 챙겨 공항 내부로 이동했다. 공항 내부에 이를 지켜보던 한 업체 직원이 재빠르게 아우디 차량에 올라탔고 차량은 공항을 빠져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고객이 맡긴 아우디 차량은 공항 단기 주차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사설주차대행업체는 시동을 켜 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십 여분의 시간이 흐른 뒤 차량으로 한 중년의 여성이 다가와 조수석에 탑승했다. 공항을 빠져나온 차량은 한참을 달려 10여km 떨어진 한 주택가 앞에 멈춰 섰다. 고객이 맡긴 차량에서 내린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간 뒤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여행 기간 업체를 믿고 맡겨진 차량이 한순간에 개인 용도로 변했다.
지난 7월 26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주변 한 호텔 인근 공사장 입구에도 차량들이 즐비했다. 인적이 전혀 없는 공터에는 십 여 대의 차량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가 저물자 공터로 차량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새로운 차량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공터의 자리를 하나 씩 채워갔다. 새로운 차량 뒤에는 항상 운전자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 역할을 하는 차량이 함께 했다.
하지만 공터로 들어오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차량 잠금 조치를 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방금 주차 된 차량에 다가가 문을 열어봤다. 공터에 주차 된 차량들은 모두 문이 열려있었다. 또한 차 키는 차량 내부에 있거나 앞바퀴 타이어 위에 놓여져 있었다. 공사장 입구와 용유역 일부 주차 구역은 불법 사설주차대행 업자들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열차역인 용유역 주차장 진입로는 불법 주차 된 차량으로 가득했다. 전날 맡겨져 주택으로 갔던 아우디 차량도 용유역 주차 공간에 이동 주차돼 있었다.
용유역 앞 도로는 흰색 실선과 황색 실선으로 구분돼 있다. 흰색 실선은 주차가 허용된 구역이다. 이 흰색 실선 주차 구역은 불법 주 정차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곳으로 사설 주차 대행 업체 관계자가 자리를 전부 선점했다. 또한 개인 차량이 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주차 간격을 조정했다. 보관 차량이 많을 때에는 앞뒤 차량 간격을 좁혀 차량을 더 주차했고 없을 때에는 간격을 넓혀 구역을 사용했다.
취재중에 만난 용유역 직원은 "용유역 주차장은 막차 운행 이후에 주차된 차량들에 한해 주차 경고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이를 아는 불법 사설주차대행 업체들은 역사 내 주차장에 주차 하지 않는다. 대신 주차장 입구 흰색 실선에 주차를 하고 있다. 매일 같이 (용유역) 진입로 흰색 실선에 차량을 주차하는 업체 직원이 있다. 이 차량들의 주차로 인해 차장 진입로가 혼잡해 졌고 대형 버스등 차량 진출입이 안되고 있다” 며 하소연 했다.
여행객으로 부터 받은 차량에서 주차대행 업체 직원과 가족으로 보이는 여성이 공항 인근 주택가에 차량을 세운 뒤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이덕인 기자 |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열차 용유역 진입로를 불법 점유한 사설주차대행 업자들이 창문도 닫지 않은채 차를 방치하고 있다./이새롬·이동률 기자 |
◆하루 온종일 열려있던 창문과 차문...사실 알고 황당한 차주들
본격적인 휴가 시즌을 맞은 1일 아반떼 차량을 용유역으로 가져온 업체 직원은 익숙하게 차량을 주차한 뒤 서둘러 주차 장소를 떠났다. 취재진이 방금 주차한 차량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역시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차량 조수석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블랙박스는 제거 되어 있었다. 차키는 눈에 잘 띠는 변속기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변에 함께 주차 된 차량들을 확인한 결과 모든 차량의 문이 잠겨있지 않았고 차키는 차량 내부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 고급 수입 차량은 운전석 문이 반 쯤 열려 있기도 했다. 주차 시설이 아닌 공터에 차량을 방치 하는 것도 모자라 차량내에 차키를 두고 창문까지 열어 놓는 등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차량에 부착된 전화번호를 통해 용유역 앞에 주차된 차량의 차주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 했다. 취재 내용을 들은 차주들은 한결같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업체였고 버젓이 주차장 사진까지 등록 해놓았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제 차가 주차장이 아닌 역 앞 도로에 주차 되어 있었다고요? 어이가 없네요...”라며 황당해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은 많이 봤지만 내가 이렇게 당할 줄을 상상도 못했다”며 화를 참지 못한 차주도 있었다. 정상 영업을 하는 대행업체도 있지만 불법 영업을 하는 업체에 당할 수도 있다는 게 현실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불법 사설주차대행 업체들의 빗나간 도덕성이 차량 도난은 물론이고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강력한 법적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한편 인천공항공사는 사설 주차대행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불법 영업 단속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항시설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항시설법 제56조 개정에 따라 국가경찰공무원 또는 자치경찰공무원도 공항 내 불법행위에 대해 제지 및 퇴거 명령이 가능하다. 또 8월 하순부터는 공항 내 불법행위에 대한 제지 및 퇴거 명령 불이행시 기존 과태료 처분에서 벌금 부과로 처벌 수준이 강화된다. 이에 따라 불법 영업 단속의 실효성도 제고될 전망이다.
<취재·사진·영상=사진기획부 2팀> 임영무·이새롬·이덕인·임세준·이동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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