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정유라는 뭐한대?"…정윤회 찾으려다 만난 '뜻밖의 마필관리사'
입력: 2018.01.16 00:00 / 수정: 2018.01.16 00:00
괴한 피습 사건 이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정유라 씨(오른쪽)와 마필관리사로 알려진 이 모씨가 지난 11일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나와 다정한 모습으로 이동하고 있다. /압구정동=이덕인 기자
'괴한 피습 사건' 이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정유라 씨(오른쪽)와 마필관리사로 알려진 이 모씨가 지난 11일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나와 다정한 모습으로 이동하고 있다. /압구정동=이덕인 기자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그래서 정유라는 뭐하고 지낸대?"

항상 사람들을 만나면 숱하게 듣던 질문이었고, 정유라(22) 씨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 갔다.

지난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지 1년 3개월이 흘렀다.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들어선 격동의 지난 세월 동안 국정농단 수사의 중심에 있는 정유라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이화여대 학사 비리, 국정농단 등으로 최순실 씨와 함께 국민의 공분을 산 정유라 씨는 어머니가 구속된 뒤에도 계속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벌이다 지난해 1월 덴마크 올보르 현지에서 체포돼 5월 31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정유라 씨는 최순실 씨와 함께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점 특혜를 공모한 혐의, 삼성에서 지원한 말을 다른 말로 바꾸는 '말 세탁' 과정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두 번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모두 기각돼 구속을 면했다.

이후 정유라 씨는 어머니 최순실 소유의 미승빌딩에 거주하며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사실 <더팩트> 취재진은 아버지 정윤회 씨와의 접촉이 있을까 싶어 지난해 10월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정윤회 씨의 강원도 평창 집 취재도 여러 차례 했고 이렇다할 소득이 없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정유라 씨의 아버지인 정윤회 씨가 지난 2014년 12월 10일 국정개입 문건 의혹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해 10시간 넘게 진행된 조사를 마치고 자정이 지나서야 검찰청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윤회 씨를 태운 차량이 11일 새벽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취재차량을 따돌리고 있다(위). 당시 본인의 차량에서 내려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정 씨의 모습./배정한 기자
정유라 씨의 아버지인 정윤회 씨가 지난 2014년 12월 10일 국정개입 문건 의혹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해 10시간 넘게 진행된 조사를 마치고 자정이 지나서야 검찰청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윤회 씨를 태운 차량이 11일 새벽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취재차량을 따돌리고 있다(위). 당시 본인의 차량에서 내려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정 씨의 모습./배정한 기자


지난해 10월 26일 정유라 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앞 거리를 홀로 걷고 있다. /이새롬 기자
지난해 10월 26일 정유라 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앞 거리를 홀로 걷고 있다. /이새롬 기자

취재 첫날, 기자는 미승빌딩을 나서는 정유라 씨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다. 장기 취재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첫날부터 마주쳤기 때문이다. 정 씨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을 뿐 자유롭게 동네를 활보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로 돌아온 정유라 씨는 이번엔 한 남성과 동행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정유라 씨와 이 남성은 미승빌딩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 등 평범한 20대 남녀의 모습이었다. 종종 음식점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두 사람은 꽤 친분이 있어 보였다. 회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 등 비슷한 옷차림은 흡사 커플룩을 연상케 했다.

지인들과 시간을 더 보낸 두 사람은 택시를 이용해 다시 미승빌딩으로 돌아왔다. 정유라 씨가 현금으로 계산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순실 모녀는 계좌 추적 등을 피해 주로 현금을 사용한다는 내용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미승빌딩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정 씨와 함께 있던 남성은 지난 6월 정 씨의 두 살배기 아들과 보모와 함께 도피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마필관리사 이 씨였다. 이 씨는 정 씨의 해외 도피 행각을 도왔으며,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 씨의 뒷정리도 도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한 아들과 보모가 정 씨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마필관리사의 등장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두 사람은 미승빌딩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나는 등 평범한 20대 남녀의 모습이었다.  지인과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미승 빌딩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이덕인 기자
두 사람은 미승빌딩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나는 등 평범한 20대 남녀의 모습이었다. 지인과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미승 빌딩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이덕인 기자


현금 사용하는 정유라 정유라 씨가 2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미승빌딩 자택에서 택시비를 가지고 나오고 있다. /이덕인 기자
'현금 사용하는 정유라' 정유라 씨가 2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미승빌딩 자택에서 택시비를 가지고 나오고 있다. /이덕인 기자

이후 한 달 만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정 씨는 다시 화제가 됐다. 11월 25일 정 씨가 거주하는 미승빌딩에 택배 기사로 위장한 괴한이 침입해 같이 있던 남성이 흉기에 옆구리를 찔리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피습을 당한 남성은 서울 행당동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이 남성은 공교롭게도 마필관리사 이 씨였다.

국내로 송환되면서 정유라 씨의 승마 선수 생명은 사실상 끝났고 국내에는 말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마필관리사가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활을 돕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정 씨는 흉기에 찔린 이 씨가 이송된 한양대 병원 면담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괴한의 피습에 충격을 받은 정 씨는 이 씨가 치료를 받는 병원을 지키면서도 향후 발생할 지도 모를 테러 위험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11월 25일 정유라 씨가 흉기에 찔린 마필관리사 이 씨가 이송된 한양대 병원 면담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지난해 11월 25일 정유라 씨가 흉기에 찔린 마필관리사 이 씨가 이송된 한양대 병원 면담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후 정 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당시 경찰은 정유라 씨의 요청에 따라 경찰관 3명을 투입해 정 씨 집 근처에서 대기하며 외출할 때마다 경호하는 등 신변을 보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정 씨의 자택 주변 인근을 지구대에서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있다"며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통해 위급상황 시 곧장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습사건 두 달여 만에 취재진은 이 씨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양대학교병원 측에 문의했으나, 병원 측은 환자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이 씨의 퇴원 여부에 대해 함구했다. 오히려 미승빌딩 건물에 상주하는 주차관리원으로부터 이 씨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매일 미승빌딩 입구에서 차량을 관리하며 두 사람을 자주 목격했다는 주차관리원은 이 씨가 피습 사건 이후 일주일여 만에 퇴원해 건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종종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두 달여가 지난 미승빌딩 앞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승빌딩 인근 음식점은 손님들로 붐볐고, 주차관리원들이 분주히 빌딩 앞 차량을 정리했다. 간간이 순찰차가 미승빌딩 골목을 순찰하는 것 외에 삼엄한 경비도 없었다. 정유라 씨가 거주하는 미승빌딩 6층으로 종종 배달음식이 들어갔다. 피습사건 이후 종종 정 씨의 아버지 정윤회 씨가 집으로 찾아와 만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으나, 취재 기간 동안 정윤회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피습 사건 두 달여가 지난 1월 정유라가 머무는 미승빌딩 6층에 불이 켜져 있다. 6층으로 종종 배달음식이 들어갔다.
피습 사건 두 달여가 지난 1월 정유라가 머무는 미승빌딩 6층에 불이 켜져 있다. 6층으로 종종 배달음식이 들어갔다.

결국, 정유라와 아버지 정윤회 씨의 연결고리를 캐내려는 취재의 시작은 마필관리사 이 씨에게 초점이 옮겨갔다.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괴한의 피습 사건 이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정 씨는 지난 11일 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이 씨를 비롯한 지인들과 자택에서 나와 멀지 않은 음식점을 찾았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웃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피습 사건은 다 잊은 듯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 씨 역시 밝은 표정이었다.

정유라 씨는 식당에서도 입구가 먼 구석 자리에 착석했고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 식사를 마친 정 씨와 이 씨는 지인들과 인사 후 지인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사건 이후에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승빌딩 건물 골목에 들어서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일정 거리를 두고 순차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들의 관계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일고 있는 세간의 소문을 다분히 의식한 듯한 태도였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1~2m 뒤에서 정 씨와 보폭을 맞추며 정 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덕인 기자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덕인 기자


이 씨는 1~2m 뒤에서 정유라를 보필하며 보폭을 맞추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 씨는 1~2m 뒤에서 정유라를 보필하며 보폭을 맞추고 있다. /이새롬 기자

해외 도피시절부터 피습까지 지난 1년 3개월 동안 '파란만장'한 생활을 경험한 두 사람의 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워졌다.지난해 10월만 해도 팔짱을 끼지 않았으나 피습 사건이 있고난 뒤에는 거리에서도 팔짱을 꼈다. 특히 어머니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들의 관계는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최근 최순실 씨는 딸 정유라 씨를 상대로 모녀가 소유한 평창 땅을 못 팔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평창 땅은 모녀가 절반씩 공동 소유한 것으로, 실 거래가가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땅이다. 이에 법원은 "정씨에게 손해가 생길 수 있으니 담보를 제공하라"고 명령했고, 최 씨가 담보를 내지 않아, 각하 결정이 확정됐다.

아버지 정윤회 씨와 떨어져 지내며 어머니 최순실 씨와도 재산 문제로 멀어진 가운데, 의지할 곳 없는 정유라 씨에게 이 씨는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는데, 청춘남녀의 감정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saeromli@tf.co.kr / thelong0514@tf.co.kr

사진기획부 phot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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