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직장인 밴드 다카포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 개원식 부대행사로 열린 마포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 멋진 공연을 펼치고 있다. 남녀 6인으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로 3명의 남성은 모두 시각장애인이고 3명의 여성은 모두 일반인이다. /상암동=이새롬 기자 |
‘흰지팡이의 날’에 대해 아시나요? 시각장애인들이 활동하는데 보조기구로 사용되는 지팡이가 바로 '흰지팡이' 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상징이기도 하며 독립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오늘(15일)은 바로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밴드 다카포는 '남셋여셋' 청춘남녀 6인으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다. 교사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남성 구성원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이력을 지녔다.
밴드의 맏형이자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필우 서울 정민학교 특수교사(35)는 어려서부터 앓던 선천성 녹내장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고3 진학을 앞둔 겨울,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시력이 떨어졌다. 사회복지과를 전공했지만, 남들처럼 직업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이십대에 뒤늦게 맹학교에 진학해 시각장애인으로의 삶을 다시 배우고, 사범대 특수교육학과에 들어가 2013년 9월 중등 특수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됐다.
'밴드의 맏형이자 기타와 보컬' 밴드의 맏형인 김필우 서울정민학교 특수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 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과학과 사회, 음악 과목을 가르친다. |
가을을 주제로 한 음악 시간, 학생들에게 기타 연주로 노래를 가르치는 김 선생님. 학생들의 생일에 각 교실을 찾아가 기타 연주로 축하 노래를 선물하는 그는 이미 학교에서 유명 인사다. |
김 선생님은 탁현지 업무보조원과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업무보조원은 수업 준비에서 진행까지 늘 함께하며 김 선생님의 눈이 되어 준다. |
김 선생님이 점자정보단말기로 수업 자료를 살피고 있다. 점자정보단말기는 일반 문서 파일을 전자 점자 형태로 출력해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을 돕는다. |
베이스의 김헌용 서울 구룡중학교 영어교사(32)는 다섯 살 때 외부 충격으로 인한 망막 손상(망막박리)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도 좋아하는 영어와 교사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 교사를 꿈꿨다. 사범대 특수교육과에 들어가 영어교육을 복수 전공하고 2010학년도 서울시 중등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됐다. 그는 서울에서 일반 학교 교사가 된 첫 시각장애인이다.
'일반학교 교사가 된 첫 시각장애인' 서울의 일반학교 재직 중인 김헌용 선생님이 유창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는 첫 일반학교 선생님이다. |
김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좋아한 영어와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 교사가 됐다. |
점자정보단말기로 수업 준비와 수업 진행을 하는 김 선생님. |
드러머인 하지영 점역교정사(31)는 태어날 때부터 망막변성과 시신경위축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한 그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대학에서 점역교정사(시각장애인용 문자인 점자를 교열·검열하는 직업군)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지난해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내 장애인도서관에서 점역교정사로 근무하고 있다.
남들보다 끊임없는 투지와 노력으로 각자의 자리에 이른 세 사람에게 음악은 시련과 좌절을 겪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해준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악기 연주 역시 남들보다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점역교정사 근무'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 내 장애인도서관에서 점역교정사로 근무하는 하지영 씨가 프리트된 점자 인쇄물을 교열하고 있다. |
하 선생님이 매일 교열하는 점자의 양은 최대 100페이지에 달한다. |
지영 씨의 책상에 놓인 탁상달력에 인쇄된 점자가 눈길을 끈다. |
국립중앙도서관 내 곳곳에 설치된 점자안내판을 소개하는 지영 씨. |
지영 씨는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출신이다.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딴 동메달을 소개하는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
'음악이 유일한 여가 생활'이라는 헌용 씨는 2012년 밴드의 창립 멤버다. 그가 악기를 처음 잡았을 때를 회상했다. "초보일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악기 숙련도가 떨어질 때는 무식하게 코드를 다 외우거나 보고 따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그게 어렵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여전히 세 사람은 밴드 활동 중에도 틈틈이 개인 레슨을 통해 핸디캡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고 있다.
밴드 결성 초기부터 지금의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5년이 걸렸다. 풀밴드로만 공연을 계속해오던 밴드가 한때 드러머의 탈퇴로 인해 밴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적도 있다. 이때 필우 씨를 필두로 한 어쿠스틱을 준비했고, 이를 계기로 거리 공연(버스킹)까지 도전했다. 그 사이 헌용 씨와 맹학교 동기인 지영 씨가 새로운 드러머로 밴드에 합류했다.
'시각장애인의 상징, 흰 지팡이' 시각장애인에게 흰 지팡이는 나를 알리는 지표이자, 나홀로 보행에 있어 더없이 소중한 도구다. 김헌용 선생님이 교실 복도를 이동하고 있다(위). 수많은 사람들에 치이는 출퇴근길이 지영 씨에게 하루 중 가장 어려운 일과이다. |
동행자가 있을 때는 한결 수월하다. 합주가 있는 날, 밴드 내 여성 멤버들이 자연스레 이들의 안내자가 된다. |
밴드 멤버들이 퇴근 후 서울 홍대의 한 합주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교사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매주 이곳에 모여 연습을 한다. |
메인 기타인 필우 씨(오른쪽)와 베이스의 헌용 씨가 합주를 하고 있다. |
드럼을 쓰기 어려운 거리 공연에서 지영 씨(오른쪽)는 다른 타악기를 연주한다. |
멤버의 탈퇴 등으로 위기를 겪은 밴드는 지난해 1월 '다시 처음'이라는 뜻의 악상기호를 따 '다카포'로 밴드명을 새로 짓고 이름처럼 하루하루 새롭게 재정비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서울거리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는 매달 선정되는 우수 팀에 꼽히며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후 멤버들은 다양한 거리 공연에 초청되며 한층 바빠졌다.
장애인들에게는 직업 생활도 어렵고, 게다가 여가 생활까지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장애·비장애 구성원으로 이뤄진 밴드는 그런 면에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활동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며 화합하는 문화의 장을 이루고 싶은 큰 포부도 가지고 있다.
'희망을 노래하는 시각장애인 밴드'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 개관식의 부대 행사인 마포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초청을 받은 밴드 다카포가 멋진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보컬인 김필우, 배은지 씨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른 여성 멤버인 서윤정 씨를 따라 무대를 내려오는 지영 씨와 필우 씨. |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의 장을 밴드는 만들고 싶다. |
밴드 다카포, 앞으로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공연 후 김필우 씨와 서윤정, 하지영, 배은지, 김헌용 씨(왼쪽부터)가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마음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요. 잘 하고 싶지만 (장애라는 핸디캡으로) 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남들보다 많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희망으로 비춰지면 좋겠어요"
saeromli@tf.co.kr
사진기획팀 photo@tf.co.kr